최종편집 2024-04-25 17:37 (목)
이 시대에 착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이 시대에 착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 김명숙
  • 승인 2018.07.30 1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 처방전] <13> 이토록 고고한 연예

소설 작가와 시리즈 작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 둘은 기억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장편소설가는 하나의 작품을 끝내고 나면 소설 속 등장인물과 시대와 이야기를 떠나보내야 한다. 그것도 말끔히, 온전히 떠나보내야 하는 반면, 시리즈 작가는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전작을 완벽하게 되살려야 한다. 시리즈물은 이야기의 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다리를 건너서 네 번째 골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던 주인공이 아무런 언급없이 다리를 건너지도 않고 세 번째 골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생긴다면? 변고가 생긴 것이다. 시리즈물인데 주인공이 동일인물인지를 의심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시리즈물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집필할 때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지는 만큼 기억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작가가 만전을 기한다고 하지만 망각의 동물, 사람의 일이 어디 그런가. 연속성에 어긋나는 대목이 독자에게 발견되어 작가를 곤혹스럽게 만들곤 한다고,

홈즈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작가 코난 도일은 그의 홈즈 시리즈 8번째 작품인 『마지막 사건(The Final Problem)』을 쓴 후 시리즈 집필을 그만두려 했다. 작가는 주인공을 폭포 속으로 밀어 넣어 연재를 끝냈으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탐정을 독자들은 떠나보내려 하지 않았다. 홈즈를 살려내라는 수천 통의 항의 편지가 빗발쳤고, 홈즈 시리즈를 연재하던 잡지의 구독을 중단하는 독자가 2만여 명에 달했다. 결국 8년 후인 1901년, 코난 도일은 홈즈 시리즈의 걸작 중 하나인 『바스커빌 가의 개』를 발표하며 마무리되었던 홈즈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바스커빌 가의 개』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홈즈가 폭포 속으로 떨어지기 2년 전….” 이렇게 독자들의 청원으로 되살려낸 홈즈 시리즈는 1927년까지 꾸준히 발표되었고, 장편 4편과 56편의 단편을 통해 견고한 홈즈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제주에서 열린 김탁환 작가의 장편 <이토록 고고한 연예> 출판 기념 북콘서트 마지막 날 처음을 장식한 이야기다. 제주 애월읍 고내리에 새로 생긴 꽃도 팔고 책도 파는 서점 ‘디어마이블루’ 의 오픈을 겸한 행사였다. 이날 작가는 18세기 백탑파 시리즈 작가이며 영화 <조선 명탐정1, 2, 3>의 원작자로서 애환을 담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는 18세기 조선에 실존했던 ‘달문’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수록된 ‘광문자전’의 장본인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죄를 지어 귀양 갔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달문은 우는 아이도 뚝 울음을 그칠 정도로 흉측한 몰골에 청계천 수표교에 사는 거지들의 왕초 재담꾼에 조선 최고의 춤꾼으로 한 시대를 주름 잡은 예인이었다. “걸인들 사이에 식중독이 돌자 제 입을 찢는 대가로 돈을 빌려, 그들을 위해 죽을 쑤어 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대책없이 착한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좋은 사람으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했는데, 이런 메시지도 의미있지만 이야기를 밀고나가는 힘과 경쾌함이 대단한 소설이다. 나의 경우 오늘은 100쪽만 읽으리라 계획했지만 계획과 달리, 달리고 달려 3일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읽고 난 후에도 달문의 행적을 좇는 매설가 모독과 조선 체제 전복을 꿈꾸는 혁명가 해송, 기생 운심과 매독, 달문의 삼각관계 그 이후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600쪽이 좀 아쉬운 장편으로 여겨졌다.

디어마이블루 야외 무대에서 우리는 작가가 심장을 바꾸어 달 정도로 친근했던 존재 ‘달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이 산고의 고통을 동반한 출산에 비유한다면 그렇게 탄생시킨 인물을 온전히 떠나보내는 일도 출산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의식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상머리에서 좀처럼 상이 잡히지 않던 달문을 구체화한 건 세월호 이후 거리에서 만난 한없이 착한 사람 덕분이라고 작가는 고백했다. 강연장 야외 무대로 석양이 깔리고 은은한 달빛을 받은 별이 하나 둘 떠올랐다. 세월호로 촉발된 분노가 촛불혁명으로, 다시 <이토록 고고한 연예>로 수렴되는 과정은 마치 매설가의 이야기를 책쾌의 입을 통해 청중의 공감을 얻고 또다른 이야기로 탄생되는 과정처럼 여겨졌다. <목격자들1, 2> <거짓말이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 이 책들은 작가가 소명을 가지고 다룬 세월호 관련 저작물들이다. 그리고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평범한 촛불인 우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위안과 자부를 해도 될 것 같은 밤, 저 별의 끝에 한없이 착한 사람 ‘달문’을 만난 것 같았다.

 

김명숙 칼럼

김명숙 칼럼니스트

충북 단양 출신
한양대 국문과 졸업
성미산공동체 '저해모(저녁해먹는모임)' 회원
성미산공동체 성미산택껸도장 이사
나무발전소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