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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계획서 쓰려고 1830만원 수의계약 용역, 과연 옳은가?"
"사업계획서 쓰려고 1830만원 수의계약 용역, 과연 옳은가?"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7.24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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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의 수의계약 용역을 살펴보며...<1>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사업 지원하기 위해 1830만원 용역 진행
진흥원측 “내부 인력으로 진행 불가능해 용역 발주”…직무 태만, 직원 능력 부족...?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수의계약(隨意契約). 계약할 때 경매·입찰 등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 적당한 상대방을 임의로 선택하여 맺는 계약을 말한다.

행정기관 및 공공기업에서는 사업을 진행할 때, 필요시 특정 업체를 선정, 수의계약을 맺는다.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만,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하지만 수의계약을 할 땐, 그 근거가 명확해야만 한다.

수의계약은 선정 업체의 경쟁상대가 없으므로 공정성이 떨어지고, 각종 비리에 이용될 소지가 높다. 잊을 만하면 제기되는 사회 문제인 ‘일감 몰아주기’도 수의계약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공개 입찰 등을 통한 계약을 지향한다.

기사 초반부터 갑자기 웬 수의계약이냐고?

이유는 있다.

바로 (재)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진행한 <제주콘텐츠기업 육성센터 조성사업 컨설팅 및 콘셉설계 용역>의 수의계약 때문이다.

진흥원의 수의계약서를 살피기 전 한가지 더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지난 7월 13일, 진흥원 설립 조례가 개정되며 (재)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은 (재)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으로 기관명을 변경했다.

따라서 5월 2일 당시 진흥원이 작성한 수의계약서에는 기관명이 (재)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 기재되어 있다.

아래 수의계약 공개 내역서를 참고하자.

(재)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이 공개한 수의계약 내역서. 사업장소는 당시 기관명인 (재)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 기재되어 있다.

진흥원은 지난 5월 2일, <제주콘텐츠기업 육성센터 조성사업 컨설팅 및 콘셉설계 용역>이라는 사업명의 수의계약을 진행했다. 계약 금액은 1830만원이다.

진흥원이 수의계약을 진행하면서까지 용역을 발주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아래에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4월 19일 게시한 ‘2018 지역 거점형 콘텐츠기업 육성센터 조성사업’ 공고 내용.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4월 19일 ‘2018 지역 거점형 콘텐츠기업 육성센터 조성사업’ 공고글을 게시했다.

국비로 진행되는 이 사업에 선정되면, 지역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한 시설 구축 비용 중 일부를 지원받는다.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대상은 수도권을 제외한 광역 지방자치단체로 진흥원도 이에 포함된다. 신청 기간은 4월 24일부터 5월 14일까지였고, 진흥원은 5월 2일 자로 수의계약을 진행, 5월 14일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진흥원은 이 사업에 지원하기 위해 용역을 실시했다고 한다.

진흥원 관계자는 “올해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부득이 용역을 진행했다. 이 사업이 내년에도 진행될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진흥원은 지난 4월 9일 개원식을 했고,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인력도 부족했다. 또한, 건물 리모델링 등 공간 관련 내부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자문이 필요했다”면서 용역의 필요성을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흥원은 이 사업에서 탈락했다.

사업에서 탈락했다는 것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이 국비사업에 지원, 탈락하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오히려 탈락할지라도 앞으로 다양한 국비사업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기관이 할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걸까? 기자가 비판하고자 하는 바는 따로 있다.

‘2018 지역 거점형 콘텐츠기업 육성센터 조성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용역을 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기관이 특정 사업에 지원할 때, 용역을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기관의 내부 인력을 활용해 기획하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큰돈을 들여 용역을 진행했는데, 사업에서 떨어지면 애먼 돈만 쓴 꼴이 되기 때문이다.

또, 일반적인 공공기관이라면 내부에 이미 관련 분야의 전문가 혹은 연구원이 포진해 있다. 진흥원 역시 그럴 것이다.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조직도. 각 조직은 다양한 전문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일은 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사업 전반에 걸친 업무다. 국비사업 관련 기획, 사업계획서 작성 등도 이에 속한다. 진흥원의 조직도 안 구성원들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된다면, 외부 업체에 돈을 주면서까지 용역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국비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용역을 진행했다는 것은 진흥원 본연의 업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는 어쩌면 ‘직무 태만’이다.

만약 진흥원 관계자의 말처럼 관련 전문 인력이 없어 자문으로는 사업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고, 부득이 용역을 써야 한다면? 이는 진흥원의 ‘능력 부족’이다. 능력이 미달한다면 더더욱 사업 진행에 심사숙고해야 한다.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전경.

진흥원이 용역업체에 낸 1830만원은 도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돈이다.

사업에 자신이 없다면, 돈을 들여 황급히 용역을 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미뤄두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제주문화예술재단(이하 재단)은 112억원을 들여 (가칭)한짓골 아트플랫폼 조성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히며, 6월 1일 재밋섬 건물 매입계약서를 작성했다. 1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쓰는데, 공론화 과정은 단 한 차례의 주민설명회뿐이었다.

이러한 재단의 행보에 제주 사회는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도지사까지 나서 현재는 건물 매입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미 계약금 1원과 1차 중도금 10억원이 지급된 상태지만, 계약 해지 시 20억원을 물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조항도 있지만, 어쨌거나 원 지사는 ‘일단 중지’시켰다.

일부 기관에서는 도민의 세금을 다소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를 기자 개인의 사견이라 하기엔, 객관적인 증거가 너무나 명백하다.

일부 기관들은 돈 쓰는 것을 너무 쉽게 안다. 세금이 재단의 기금으로 넘어간 이상, ‘내 돈’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진흥원이 맺은 이번 수의계약도 같은 맥락이다.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할 기간은 촉박하고, 진행은 해야 하겠고, 내부 인력은 부족하고… 그래서1830만원의 용역을 발주했다는 진흥원 관계자의 말은 알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에서 진행하기엔 버거울 것 같으니 전문 업체에 맡겨버리는 쉬운 방법을 택한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는 지난 4월 18일,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 출범, 제주 영화인의 목소리는 어디로?>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를 통해 밝혔듯, 김영훈 원장은 “진흥원 구성원들의 의견이 중요하고, 구성원들은 도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도민의 의견은 아마 ‘내가 낸 세금을 함부로 쓰지 말고, 신중히 꼭 필요한 곳에 써달라’는 것일 테다.

기자는 묻고 싶다.

이번 진흥원의 1830만원 용역이 ‘꼭 필요한 곳’인지. 도민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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