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더 워
더 워
  • 홍기확
  • 승인 2018.07.23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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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3>

지구에서 태어난 후 꼬박 156번째 맞는 환절기다. 본래 지구인에게는 여러 가지 숫자가 중요한데, 나이나 생년월일 등이 그렇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숫자는 몇 번째 환절기를 맞느냐다. 태어난 후 14,202번째 날인데 하루하루를 세기에는 너무 길다. 게다가 월별로 표현하기에도 468개월째는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39살이란 나이는 왠지 초등학생이 산수를 하는 느낌이라 품격이 떨어진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156번째 환절기를 맞고 있다. 뿌듯하다.

환절기는 유독 대한민국에서 중요하다. 사시사철이라고도 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각 계절의 길목에는 병이 하나씩 생긴다. 가을의 길목에서 만나는 환절기는 고독. 겨울과의 만남에는 감기. 봄을 맞이하는 순간에는 춘곤증.

그렇다면 여름이 엄습하는 환절기에는 무슨 병이 걸릴까?

바로 ‘서(暑)’라는 병이다. 낯선 단어일 것이다. ‘서’가 무슨 병일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여름에는 누구나 이 병에 걸린다. 한글로 풀자면 ‘더위 먹은 병’이다.

허균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총 25책으로, 5편으로 나뉘어 전체 106개의 항목을 다루고 있다. 이 중 하나로 더위 먹은 병을 ‘서(暑)’라고 하여 106개 항목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이 말은 뭘까? 예로부터 더위 먹은 것이 심각한 병이라는 것이다. 증상은 무엇일까? 혹시 당신의 얘기는 아닌가? 『동의보감』의 설명을 보자

“더위에 상한 증상(상서증[傷暑證])은 얼굴에 때가 끼고 저절로 땀이 나며 몸에서 열이 나고 잔등이 시리며 안타깝게 답답하고 몹시 갈증이 나며 몸이 나른하면서 기운이 없고 솜털이 일어서면서 오한이 나고 혹 머리가 아프거나 설사가 있거나 팔다리가 싸늘하며, 다만 몸이 아프지 않다.”

사실 나는 여름철 내내 이런 증상이 있다. 얼굴에 기름기. 조금만 움직여도 땀남. 심한 갈증. 기운 없음. 다만 몸살기운 느낌은 아님.

전염병은 아니지만 전원이 걸리는 병이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증상을 지니고 있을 듯하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여름에 이 병을 피해 도망 다녔다. 이른바 ‘피서(避暑)’다. 최근에는 여름휴가나 하계휴가라고도 불린다. 이 시기에는 더워 죽겠는데도 전 국민이 여기저기 더위 먹는 병을 피해 도망 다닌다. 그런데 희한하게 피서랍시고 움직여 봤자 더 덥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참고자료는 더위 먹은 선비, 정약용(丁若鏞)의 시 8부작, 『소서팔사(消暑八事)』이다. 지금말로 ‘더위를 없애는 8가지 방법’이란 자기계발서이다. 그 중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는 ‘달밤에 발 씻기’와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기’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더위를 없앨 수 있으며, 꽤나 낭만적이다. 물론 이 시를 쓰면서 정약용도 약간 더위를 먹은 것 같긴 하다. 심지어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도 하나의 피서법으로 제시하는 데 좀 아닌 듯싶어서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병(重病)에 걸렸다. 더위라는 병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만나는 이들에게 서로 썰렁한 농담을 건넨다면 잠깐쯤은 상대방에게 피서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서로에게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는다면 대한민국의 온도가 낮아져서 선선한 밤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은 안다. 더위 먹어서 그런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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