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0:45 (금)
단절과 연결
단절과 연결
  • 홍기확
  • 승인 2018.07.20 10: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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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2>

과정과 결과 중 중요한 것은?

쉬운 문제다. 둘 중에 찍으면 된다. 이른바 양자택일(兩者擇一). 하지만 문제가 쉽다고, 정답 찾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한 문제풀이를 통해 정답을 찾아보려 한다.

먼저 질문의 단어를 분석해 보면, ‘과정(過程)’은 결론이 나지 않은 일의 진행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과(結果)’는 어떤 원인 혹은 과정으로 인해 도출된 결과물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사실 과정과 결과에 대한 상대적 중요성은 의미가 없다. 여러 책에서 정의하는, 혹은 명언명구처럼 말장난이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멋들어질 뿐 해답이 되지는 못한다. 한 번 살펴보자.

“결과는 중요하다. 과정은 더 소중하다.”

“과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결과는 더 중요하다. 결과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언명구를 분석해보면 결국 과정은 결과에 포함되므로 결과가 중요하지만, 과정은 그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뭐가 맞는 것인지!

내 해답은 이렇다.

“과정과 결과 중(中)에서 중요한 것은 ‘단절과 연결’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과정이나 결과가 아닌, 삶의 편린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것에 대한 단절과 연결이다. 꾸준하고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기가 막힌 단절과 기가 차는 연결이, 과정과 결과 가운데(中)에서 가장 중요하다.

하버드 의대 정신학과 교수인 조지 베일런트의 저서, 『행복의 조건』은 70여 년에 걸쳐 친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의 성과를 정리한 책이다. 이 팀은 1938년부터 하버드 법대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과 저소득층 고등학교 중퇴자 456명, 그리고 중산층 출신의 아이큐 140이상인 여성 천재 90명의 평생을 추적 조사했다. 목표는 배경과 능력이 다른 세 집단이 어떻게 늙어가며, 성공과 실패를 하는가를 파악하여 행복한 인생의 조건을 도출하는 것이었다.

실험진은 실험자에게 매년마다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다.

“오늘 아침 당신을 설레게 하는 일이 있습니까?”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크게 두 부류로 나누었다. 즉 설레게 하는 일이 ‘있다’, ‘없다’로 나눈 후 매년 그들의 삶을 수많은 설문과 관찰로 분석해 나갔다. 무려 72년 동안! 그 결과 조지 베일런트가 얻은 행복한 인생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에게 일어났던 나쁜 일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결론에 대해 부연설명은 많지만 요지는 이렇다.

“과거의 나쁜 일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행복하거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만 적용된다. 왜냐하면 과거의 나쁜 일과 단절하거나, 스스로 긍정적으로 극복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밝은 미래를 살고 있다.”

지난 달 한자급수 중 가장 높은 ‘사범’급 시험을 응시하려고 맹렬히 공부했다. 기존에 두 번 떨어진 이력이 있어 공포감이 상당했다. 휴가까지 내고 공부를 했는데, 결국은 시험 전날, 자신감 상실로 응시를 포기하고 시험장에 가지 않았다.

엄청난 패배감을 맛보았다. 게다가 시험일 이후에 출제된 문제를 출력하여 풀어보니 외웠던 것들의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도 합격점과 몇 점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조금만 견디며 공부했으면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달에는 회사에서 하는 정책 경연에서 6개 팀 중 최하위권으로 순위 경쟁에서 탈락했다. 오랜만에 겪은 잇단 패배였다.

2연속 좌절로 자신감은 떨어지고, 자존감은 더 떨어졌다. 40대에 접어들며 머리가 점점 나빠지는구나하는 원초적인 원망도 해 보았다.

하지만 나름 긍정적이다. 지금은 한자사범시험 낙방 및 경연 최하위에 대한 과거와 단절하고 밝은 미래와 연결한 상태다. 물론 극복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먼저 단절과 버리기와 관련된 책 10여권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 중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에 있는 글귀인 ‘정리하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에 느낌이 와서, 보지 않는 책 50여권을 처분했다. 또한 다니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국어과를 자퇴했다.(살면서 자퇴는 처음 해보았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일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정했다.

과연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은 그간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선택의 역사를 정확히 말해 주는 것 같다. 나는 너무 많은 선택을 했고, 너무 많은 과정을 겪고 있고, 너무 많은 결과를 바랐던 것이었다. ‘단절’은 도외시한 채!

다음으로 커다란 책장을 구입하고 여기저기 널려 있거나 버림받은 오래된 책들을 한 데 모았다. 모아 보니 무언가 다시 ‘연결’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 과정에서 내 선택들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선택의 역사가 곧 내 인생의 역사였다. 몇 가지를 버리지 못했을 뿐 나는 충분히 과거, 현재, 미래를, 그리고 과정과 결과 사이를 끊임없이 ‘연결’하며 잘 살고 있었다!

단절과 연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결과는 이렇다.

첫째,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그래야 뭘 해도 좋다. 우울한 일을 극복하던, 즐거운 일을 증폭하던지 말이다.

자기개발서에 나오는 뻔한 얘기라면 더 간단한 논리를 제시한다. 부정적인 사고보다는 긍정적인 사고가 더 낫지 않을까? 우울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기보다는 유쾌한 사람과 밥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둘째, 인생은 이야기(story)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몇 개의 과정과 몇 개의 결과로 뚝딱 만들어지는 제품이 아니다.

이야기는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사건들은 긴밀하게 연결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많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 경험들이 연결되어 스스로를 만든다. 물론 이야기를 다시 쓰거나 고쳐 쓰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과감히 과거와 단절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야기의 저자 및 주인공은 자신이니까.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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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5 14:14:13
오랫만에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다시금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