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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핀 구조’ 건축물”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핀 구조’ 건축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7.19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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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을 다시 생각하다] <7> 제주시민회관의 운명
운명의 날을 맞게 될 제주시민회관. 사진은 제주시민회관 측면이다. 미디어제주
운명의 날을 맞게 될 제주시민회관. 사진은 제주시민회관 측면이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자칫 하나의 역사적 건축물이 사라지는 운명을 맞을 수 있다. 건축은 시간과 싸움을 벌인다. 수천년을 이어오는 건축물도 있으나 그러지 못한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더 수명이 짧다. 100년을 넘은 건축물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30년만 넘어도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왜 그럴까. 자본 때문이다. 건축물 하나가 사라져야 그 건축물을 두고 돈이 오가는, 정치를 하는 이들이 말하는 ‘경제 활성화 논리’이다.

여기서는 그 논리가 맞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접고, 운명을 맞은 제주시민회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내일(20일) 제주시민회관에서 ‘시민회관 활용방안 타당성 조사 및 기본설계 용역’ 주민설명회가 열린다. 제주시민회관을 놔두고 리모델링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없애버리는 내용을 이 자리에서 갖는다. 어쩌면 자신의 운명을 두고, 남이 이야기를 하는 걸 제주시민회관은 들어야 한다.

20일 ‘제주시민회관 타당성 조사 및 기본설계’ 용역 설명회
리모델링으로 살아날지, 아예 부숴버리고 사라질지 갈림길
김석윤씨 “과학적이며 경제적 건축행위를 한 모더니즘 건축”
문화재청, 2016년 등록 추진해야 할 근현대체육시설로 꼽아

제주시민회관은 건축가 김태식의 작품이다. 김태식은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명이다. 일본에서 건축을 배웠고, 해방 후 우리나라에 등장한 첫 건축사사무소가 김태식건축사사무소이다. 해방을 맞은 그해 조선건축사협회가 만들어지는데, 김태식 그가 회장을 맡았다.

건축가 김태식의 작품인 제주시민회관은 1963년 7월 첫 삽을 떴고, 1년 후인 1964년 6월 준공됐다. 지어진지 54년이 넘은 건축물이다. 당시 제주시내엔 극장이 문화예술의 근거지였다. 하지만 대규모 공연이나 실내 스포츠 행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제주시민회관의 탄생은 그런 목마름을 해소시켰다. 교양강좌가 열렸고, 세미나, 연극, 음악회, 각종 예술제, 심지어는 단체 관광객을 위한 야간 레크리에이션 장소 역할도 했다. 어떤 이는 고(故) 추성웅의 모노드라마를 본 곳이라고 한다. 그만큼 추억과 기억이 있는 장소이다.

기억과 추억만 있으면 보존해야 하나. 그건 아니다. 제주시민회관은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담으려면 기둥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둥 없이 지붕을 씌우는 건 쉽지 않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넓을수록 내부 공간은 커진다. 지금이야 기술과 재료가 발달했기에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196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를 ‘경간’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스팬’이라는 이름을 다는데, 제주시민회관의 경간은 30m를 좀 넘는다. ‘그까짓 것’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제주시민회관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면 안된다.

제주시민회관은 과학적이며 경제적인 건축 활동의 산물이다. 제주시민회관은 콘크리트 기둥 위에 지붕을 씌웠다. 철골트러스 지붕이다. 지붕을 그냥 얹힌 게 아니다. 경간이 길면 지붕을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엄청난 무게의 철골을 써야 하고, 그렇게 되면 돈도 많이 든다. 제주시민회관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핀(PIN) 구조’로 만들었다. 콘크리트 기둥과 지붕을 핀으로 고정을 시켰다. 이런 형태의 건축은 우리나라에서 좀체 보기 힘들다. 이유는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설계된 건축물을 죄다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김건축의 김석윤 대표는 “30m 이상 거리를 두려면 투핀(tow pin)이 가장 경제적이면서 가장 이상적이었다. 제주시민회관은 모더니즘 건축이다. 모더니즘은 과학적 지식에 의해 가장 경제적이면서 효과적인 건축행위를 하는 것이다”며 제주시민회관의 가치를 설명했다.

그렇다. 제주시민회관은 철골트러스이면서 핀 구조라는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닌다. 여기에 역사성과 이곳을 이용했던 이들의 기억까지 포함된다면 남겨야 할 가치는 더 커진다.

그 때문일까. 제주시민회관은 정부로부터도 가치 있는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6년 우리나라 근현대 체육시설 가운데 문화재로 등록을 추진해야 하는 건축물로 제주시민회관을 꼽았다.

우리는 사라지는 건축물을 많이 봐왔다. 도시재생은 부수는 게 목적이 아님에도, 도시를 살린다면서 있는 걸 없애곤 했다. 그런 건축물이 대체 몇 개인지 모른다. 기억의 소멸이면서, 미래가치의 소멸이기도 하다. 놔두면 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음에도, 없애는 이유는 현재가 귀찮아서다.

운명의 날을 맞는다. 내일 제주시민회관은 살려달라는 목소리와 죽여달라는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테다. 운명을 다루는 이들은 인간이다. 도시재생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죽여달라’는 목소리 대신 ‘살려달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마련이다. 우리 곁엔 그렇게 해서 살아난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기억을 공유할 제주시민회관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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