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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 형태로 마을을 구성했다는데 사실일까
북두칠성 형태로 마을을 구성했다는데 사실일까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7.11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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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4> 칠성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하늘엔 수많은 별이 있다. 사람들은 그 별을 인간화시켰다. 그래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별은 친구가 되고, 동반자가 되기도 했다. 별자리는 방향이기도 했고, 시간도 됐다. 동양 별자리는 청룡·백호·주작·현무라는 네 방향을 만들어냈고, 서양 별자리는 황소자리와 처녀자리 등 귀에 익숙한 황궁12도를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별자리는 이야깃거리였다. 서양 별자리는 헤라의 질투 때문에 곰으로 변한 칼리스토의 전설을 하늘의 별자리로 대입시킨 큰곰자리가 있고, 동양에서는 바리공주가 낳은 일곱 아들이 죽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었다는 북두칠성이 있다.

왜 옛 사람들에게 별은 인간화가 되고, 이야기가 되었을까. 낮에는 태양이라는 방향지시등이 있었다면, 밤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건 바로 별자리였기 때문이다. 수천년간 학습되면서 대를 이어 내려온 지혜가 곧, 지금 하늘에 보이는 바로 그 별자리이다.

태평양 망망대해. 섬과 섬이 있다. 그들 섬과 섬간의 거리는 수천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카누를 타고 이동하며 비슷한 문명을 일궜다. 마이크로네시아 사람들은 나침반과 같은 항해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항해를 한다. 그게 바로 수천년 내려오는 그들의 지혜이다. 사실 마이크로네시아 사람들만 그러했던 건 아니다. 별자리로 방향을 알아내는 건 예전엔 누구나 그러했다. 단지 마이크로네시아 사람들만 지금도 그걸 가지고 있을 뿐이다. 특히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에겐 북극성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어쨌거나 예전엔 별자리를 찾고, 별에 기대는 삶은 흔한 일이다. 고인돌엔 북두칠성을 새겨 놓은 상판이 많이 보인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유물이다. 최소한 별자리를 탐색할 줄 알았던 시기는 청동기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역사서에서 만나는 고조선 당시의 사람들은 북두칠성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던 사람이다.

제주시 원도심에 있는 칠성도 석조물. 사진은 ‘제1도’이며 이같은 석조물이 제주시내에 모두 7곳에 설치돼 있다. 김형훈
제주시 원도심에 있는 칠성도 석조물. 사진은 ‘제1도’이며 이같은 석조물이 제주시내에 모두 7곳에 설치돼 있다. ⓒ김형훈

제주에도 물론 북두칠성이 있다. 그런 신앙은 분명하게 남아 있다. 문제는 ‘칠성도(七星圖)’이다. 현재 제주시 원도심 일대엔 ‘제1도’를 시작으로 ‘제7도’까지 별자리 7개의 위치를 세워둔 석조물이 있다. 그게 칠성도의 흔적이란다. 쉽게 설명하면 제주시 원도심에 커다란 단(壇), 혹은 대(臺) 7개가 있었는데, 그걸 연결시키면 밤하늘에서나 볼 수 있는 북두칠성의 모양이 된다는 것이다. 그걸 ‘칠성도’라고 부르고 있다.

과연 현재 조성돼 있는 칠성도가 맞긴 할까. 예전 사람들이 북두칠성을 땅에 박아두고 삶을 살았던 걸까. 정말 북두칠성 그 모습 그대로였을까. 답을 하자면, 알 길은 없다.

칠성도가 등장하는 첫 사료를 보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칠성도가 등장한다. “제주성 내에 돌로 쌓아올린 터가 있다. 고양부 삼성이 처음 등장하고 삼도(일도·이도·삼도)로 나누어 차지하고, 북두 모양을 본따서 대를 쌓고, 나누어 살았다. 그래서 칠성도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중종 25년인 1530년 출간된다. 그 당시 제주도엔 북두칠성 모양을 한 터가 있긴 했던 모양이다. 북두형이라는 건 곧, 북두칠성 모양이다. 지금 제주시내 석조물로 만들어진 그 모양이었는지, 또다른 모양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북두 모양을 본땄다”는 내용만으로는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를 만든 게 칠성도였는지, 아니면 7개 대를 쌓기는 했으나 한눈에 보일 정도의 크기였는지, 정말 그렇지 않으면 현재 제주시에 조성된 그런 모양의 칠성도였는지는 사료로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20세기에 오면 칠성도가 달라진다. 김석익이 <파한록>(1923년)이라는 저술을 통해 7개의 위치를 명확하게 하면서이다. 김석익은 향교 밭에 하나가 있고, 외전동에도 있고, 향후동에도 있고, 두목동에도 있다고 했다. 칠성동에는 3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일본사람이 평지로 만들어버렸다고 돼 있다.

하지만 1년 뒤에는 또다른 기록이 나온다. 국어학자인 권덕규가 제주도를 돌면서 기행문을 남기는데 <동아일보>에 소개가 된다. 그는 제주에 내려오는 과정부터 제주에 와서 본 것들을 ‘제주행’이라는 타이틀로 신문 1면에 연재를 하고 있다. ‘제주행’ 10번째 이야기는 ‘제주도의 미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걸 좀 소개하겠다.

“제주성내에 칠성도가 있으니 이는 고양부 삼성이 각 세 구역을 나누어 북두형으로 살았기 때문에 칠성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기는 어렵다. 칠성도는 하늘이나 북두에 제를 지내던 터가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칠성으로 믿는 뱀신에게 제를 하던 대(臺)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아무튼 칠성도는 별이든 어디든 제사를 지내는 터임은 분명하고, 삼성(三姓)이 북두형을 모방하여 살았다는 말은 당치 않다.”

김석익은 7개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서 얘기하고 있으나, 권덕규는 제사를 지낸 터는 맞지만 북두칠성을 모방한 건 아니라고 설명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김석익은 제주 출신이고, 권덕규는 그렇지 않기에 김석익의 말이 맞아 보인다. 과연 그럴까. 다음에 글을 이어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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