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교수 “항쟁적 측면 간과해서는 4.3 제대로 이해 못해”
서중석 교수 “항쟁적 측면 간과해서는 4.3 제대로 이해 못해”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8.07.0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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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열린 한국현대사 국제포럼 ‘한국 현대사에서 제주4.3의 의미’ 특강
박찬식 센터장 “4.3 희생자들, 의미와 가치 있는 죽음으로 재해석돼야”
서중석 교수가 3일 제주KAL호텔에서 열린 한국 현대사 국제포럼에서  ‘한국 현대사에 있어 4.3의 의미’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서중석 교수가 3일 제주KAL호텔에서 열린 한국 현대사 국제포럼에서 ‘한국 현대사에 있어 4.3의 의미’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한국 현대사 연구의 대표적인 석학 중 한 명인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제주4.3 당시 주민집단학살을 불러온 가장 큰 책임이 이승만 대통령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서중석 교수는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1948년 12월 서청 총회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제주도에 내려온 한 서청 단원이 “이 대통령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재판도 없이 민간인들을 많이 죽일 권한이 있겠습니까”라고 한 증언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이 1948년 늦가을 서청 단원을 대거 제주도에 투입해 섬을 초긴장 상태에 몰아넣었으며 1949년 4월 9일 제주도를 방문, 잔존 폭도들을 완전히 소탕하라고 지시했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서 교수는 3일 제주KAL호텔에서 열린 한국 현대사 국제포럼에서 ‘한국 현대사에 있어 4.3의 의미’를 주제로 한 특강에서 이같이 밝혔다.

1948년 12월 14일 중산간 마을에서 옮겨온 표선면 토신리 주민 157명이 9연대 병력에 의해 포박당한채 백사장으로 끌려가 집단 살해된 일, 1949년 1월 17일 군인들이 조천면 북촌마을을 포위해 400여채의 가옥에 불을 지르고 주민 1000여명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시켜 그 중 300여명을 인근 밭에서 학살하고 다음날 함덕해수욕장으로 이들을 끌고 가 100여명을 학살한 일 등을 소개했다.

이같은 주민집단학살로 100명 이상이 희생된 마을이 45곳이나 되고, 150곳이 넘는 마을에서 희생자가 나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남편이 산에 올라갔다는 이유로 아내를 죽이거나 자식이 입산자라는 이유로 부모를 죽이는 등 나치나 일본군이 자주 저지른 ‘대살(代殺)’도 빈번히 발생했다고 끔찍한 학살의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그는 이같은 집단학살이 발생한 데 대해 일본 군국주의의 인명 경시 사상과 일본의 군대문화, 군경 및 미군정 내부의 친일파와 극우세력이 해방 후 반공주의와 결합됐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 우익 청년단체, 특히 서북청년회와 4.28 평화회담을 깬 미 군정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특히 그는 1990년대 4.3 관련 초기 연구자료들이 ‘희생’을 중심으로 증언을 받아 기록하면서 4.3의 ‘항쟁’적 성격과 의미를 물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그는 “지금 ‘항쟁’의 의미를 연구하려고 하니 핵심적인 인물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물어볼 수도 없다”면서 “그렇더라도 항쟁적 측면에 대해 여러 각도와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항쟁의 측면을 간과해서는 제주.3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듭 ‘항쟁’의 의미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현대가 국제포럼에서 ‘제주4.3 70주년과 통일 비전’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는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 ⓒ 미디어제주
한국 현대가 국제포럼에서 ‘제주4.3 70주년과 통일 비전’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는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 ⓒ 미디어제주

이어 ‘제주4.3 70주년과 통일 비전’을 주제로 특강에 나선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 센터장은 “4.3 정신과 4.3 해결과정에서 이뤄낸 가치체계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면서 4.3 치유의 제주 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박 센터장은 이 4.3 치유의 제주 정신에 대해 “화해와 공동체적 관용, 공존의 정신으로 요약된다”면서 과거의 갈등이 재연되지 않도록 지역 내 과거의 이념과 현재의 계층·세대·정당 간에 높은 수준의 협력과 공존을 달성했다는 점, 그리고 4.3의 해결 과정에서 민과 관 사이의 긴밀한 협의와 협치가 이뤄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에 그는 “냉전시대 이후 세계 분쟁지역과 갈등 경험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거사 극복의 모범 사례로 세계화, 보편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4.3 당시 희생자에 대한 인식과 관련, “그들의 희생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죽음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면서 ‘후대의 공동체 발전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대신 죽어간 죽음’ 또는 ‘순국에 버금가는, 못지않은 죽음’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4.3은 외적 탄압에 대한 제주도 공동체의 정서적 자치 지향의 저항운동이었다”면서 “단독정부 수립을 거부한 통일운동으로서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4.3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진전 과정에서 진정한 자치공동체의 건설과 통일 지향의 현대사 키워드로 기록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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