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책 만드는 기쁨과 괴로움
책 만드는 기쁨과 괴로움
  • 김명숙
  • 승인 2018.07.02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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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처방전] <12> 해혼후-지워진 황제의 부활

최근 나무발전소출판사는 중국책 관련 도서를 한꺼번에 펴냈다. <중국 핵심 강의-최소한의 중국 인문학> <중국사 인물과 연표-너무 재미나서 한눈에 읽히는> <해혼후-지워진 황제의 부활>이다. 혹자는 중국 역사 전문 출판사로 자리를 굳히기로 했냐고 묻기도 하는데, 라인업이 이렇게 짜여진 것은 뒷강물이 앞강물을 밀어낸다는 장강만큼이나 긴 사연이 있다.

<해혼후>는 중국 내륙에 위치한 장시성(江西省) 난창(南昌)에서 열리는 도서전에서 소개받은 책이다. 한나라 시대 난창에는 해혼후라 불리는 제후국이 있었다고 한다. 제1세 해혼후인 유하는 27일 간 황제에 올랐다 쫓겨난 인물로, 한나라 시대 제위기간이 가장 짧은 황제라 시호도 없이 ‘한폐제’라 불린다. <중국사 인물과 연표>에도 서기전 74년 ‘광곽이 창읍왕을 폐하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그렇게 역사에서 지워진 유하의 무덤이 2,000년 시공을 가로질러 발견되었다. 강서성 고고학팀은 5년여의 발굴 작업을 거쳐 연구성과를 언론에 발표했고 2016년 3월 중국에서 가장 큰 국가 행사인 ‘양회(兩會)’ 기간에 특별전이 열렸다. 북경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는 5,000매가 사전 예매되는 등 큰 성황을 이루었다. 이후 다양한 해혼후 관련 서적이 발간되었고, 판매 부수도 어마어마했다.

나는 중국 고대 유물의 고고학적 성과를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다룬 <마왕퇴의 귀부인>, <구룡배의 전설>과 같은 책을 알고 있었기에, <해혼후>를 꼭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다.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 출간을 문의하니 중국측에서 번역비 지원까지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이보다 좋을 수는 없는 일, 당장 계약서에 사인하고 번역비가 완납되면 선인세를 지불하기로 하고 한국에 돌아온 것은 6월. 그해 8월에는 북경에서 열린 국제 도서전 기간에는 원저자와 번역자 양국 출판사 관계자들이 만났다. ‘해혼후’ 에 관한 양해각서(MOU)도 작성했다. 보통 번역 출판을 하더라도 당사자간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보다 에이전시를 통해 계약이 성사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번 책에 관해서는 좀 특별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만큼 중국측에서 적극적이었다. 그날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계약서상의 목표는 그해 말까지 한국판을 출간하는 것이었으나 출간은 하염없이 늘어졌다.

솥과 불과 물이 다 준비되어도 정작 중요한 쌀이 없으면 밥을 지을 수 없는 일, 번역계약서, 저작권계약서에 상의 출판사는 늘 ‘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번역자의 원고가 들어오질 않았다. 하염없이 늦어지는 번역 원고를 기다리며 출판사는 번역비를 확보하고 원고를 독촉하기 위해 계약서상 ‘병’인 에이전시 관계자와 의논하고 중국측과 다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중국식 일처리 방식을 ‘만만디’라고 하는데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의 늑장으로 2년 만에 한국판 <해혼후>가 출간되었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 어디를 들쳐보더라고 이런 숨은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던가. 하나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누구는 발로 뛰고 누구는 치장을 하고 누구는 설거지를 한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매순간 기술과 예술 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그들을 떠올리는 날이다.

 

김명숙 칼럼

김명숙 칼럼니스트

충북 단양 출신
한양대 국문과 졸업
성미산공동체 '저해모(저녁해먹는모임)' 회원
성미산공동체 성미산택껸도장 이사
나무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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