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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은 4·19혁명에 앞서는 자주·통일운동”
“제주4·3은 4·19혁명에 앞서는 자주·통일운동”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6.28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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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 제주포럼서 ‘4·3, 국가폭력과 기억’ 세션 마련
​​​​​​​이만열 교수 “한국 근현대사의 위대한 운동선상에 자리매김”

“그는 일제하의 민족반역자인 경찰과 일제의 고관을 지낸 자들이 자기들의 죄상이 드러날까 두려워 미국 제국주의의 주구가 되어 해방된 조국의 제주도에서도 일제시대의 몇 배 되는 압정을 가하고 있으며, 특히 경찰은 무고한 도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살인 강간 고문치사 등을 일삼고 있다며, 폭동 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일일이 열거하였다. 또 만주와 이북에서 일제시대에 악질경찰이나 민족반역자 노릇을 하던 놈들이 월남하여 반공애국자 노릇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서북청년단을 조직하여 수백 명이 제주도에 와서 경찰과 합세하여 도민의 재산 약탈을 자행한다고 성토했다. 그래서 선량한 도민들은 견디다 못해 친일파와 일제시대의 악질 경찰들을 제주도에서 몰아내기 위하여 ‘무장의거’를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김익렬 회고록 중)

김익렬 회고록에 등장하는 ‘그’는 김달삼이다. 남로당 제주도당책인 그의 발언은 그가 공산주의자인지, 사회주의자인지, 민족주의자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바로 여기에 제주4·3의 정체성이 숨어 있다.

어떤 이들은 4·3이 남로당 제주지부 주도로 이뤄졌다는 사실만을 따진다. 과연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게 옳을까.

제주포럼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다. 제주포럼의 ‘4·3, 국가폭력과 기억’이라는 4·3세션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제주4·3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세션은 28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삼다홀에서 진행됐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는 ‘제주4·3, 해방공간의 희생양’이라는 기조강연에서 “오늘의 잣대로 남로당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며 운을 뗐다.

사실 남로당은 해방공간에서 정당한 활동을 한 좌파 정당이었다. 1946년 미군정청이 전국 845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드러난다. 대의정치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85%였으며, 사회주의 선호도는 무려 70%였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냈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제주포럼 마지막날 4.3 세션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냈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제주포럼 마지막날 4.3 세션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이만열 교수는 제주4·3을 자주적 성격과 연결시킨다면 민주화운동과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만열 교수는 “제주4·3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4·3이 갖는 존재양식이나 성격부터 규명해야 한다. 1차적으로는 친일세력과 육지세력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의미하는 자주적 성격과 연결시킬 수 있다. 여기에다 제주도민은 1948년 5·10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는데, 이는 제주4·3이 바로 통일에 대한 열망과 상통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주4·3에서 자주와 통일의 이념을 추출할 수 있다면 4·19에 앞서는 자주와 통일운동으로 개념화할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제주4·3은 동학농민혁명에서 일제강점기의 3·1운동을 거쳐 해방공간의 제주4·3,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주화운동 및 촛불혁명과 궤를 같이하는 한극 근현대사의 위대한 운동선상에 자리매김해 역사화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시해본다”고 강조했다.

제주4·3은 섬이라는 공간이지만 시대를 앞서 자주운동이었고, 통일운동이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만명의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만열 교수는 제주도민은 ‘희생양’이었다고 말한다. 냉전체제의 희생양이었고, 분단의 희생양이었고, 육지와 도서 사람의 차별에서 오는 희생양이었다.

이만열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해야 한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반쪽짜리 ‘4·3지방공휴일’을 질타하는 듯하다.

이만열 교수는 “4·3 관련 인사들과 기관들은 4·3을 어떻게 기억하고 전승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있으나 지방정부적 차원에서는 아직 ‘4·3절’이 제정되지 않았다면 주객의 본말이 바뀐 것이다. 4·3이 제주도에 대한 중앙정부의 홀대와 멸시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제주공동체는 4·3의 자기정체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4·3을 기억하고 전승하는 것이야말로 시대마다 4·3을 현재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그렇다고 그는 미군정을 놓치지는 않았다. 군정 책임당사자인 미국에 책임 소재를 분명히 묻고 따지는 것은 4·3의 역사를 정직하게 밝히는 중요한 계기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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