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5권인 '4.3은 말한다'는 7권으로 마무리할 것"
"현재 5권인 '4.3은 말한다'는 7권으로 마무리할 것"
  • 이겸
  • 승인 2018.06.2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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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의 기록자들] <3> 김종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대표③
​​​​​​​글쓴이 : 이겸(사진심리상담사, 여행과치유 대표)

1. <4.3은 말한다> 후속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연재를 시작하며 제주 4.3에 관한 텍스트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 중에서도 ‘4.3은 말한다’는 일순위에 드는 중요한 자료였다. 신간은 구할 수 없었고 중고 책도 이빨이 빠진 채로 구할 수 있었다. 수요가 드물거나 없으면 책은 절판되기 마련이다. 후속 출판물은 이어지지 않는다. 책을 찾는 과정에서 제주도의 4.3은 많이 잊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제주도 사람이라고 말하는 주변인들이 많다. 제주도를 말할 때, 제주도를 이해하려 할 때, 4.3을 빼놓고는 거론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보면 4.3에 대한 공부가 되어있지 않아서 인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듣기란 힘들었다. 부정확하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옮기는 수준이 많았다. 어렵게 구한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 해주면 믿을 수 없다거나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냐? 처음 듣는 이야기다. 어느 자료에서 근거한 것이냐? 등 다양한 반응을 했다. 대학교에 4.3의 전문적인 연구와 연구자가 있을 법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후학들이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미래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3을 제주도민들 마저 소홀히 대하는 것은 아닌지? 제주도에는 국립대학도 있다던데……. 도의회도 있다던데……. 모두 때마다 제주도의 아픔을 이야기 하던데 말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록이다. 아픈 기록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희망이 될 씨앗이다. 이겸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록이다. 아픈 기록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희망이 될 씨앗이다. ⓒ이겸

향후 출판될 후속 작업에는 초토화 작전이 벌어진 배경에는 이승만 정권과 미군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김종민 대표로부터 받은 미 출간 내용 중 극히 일부이다. 아직 출판되지 않은 ‘4.3은 말한다. 6권’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래의 내용은 이미 출판된 '4․3은 말한다' 제4권 후반부와 제5권에 게재된 ‘초토화 작전’의 완결편이다. 1948년 11월경부터 1949년 2월경까지 약 4개월간 벌어진 초토화 작전은 그 이전이나 이후와는 뚜렷한 차별성이 있다. 4․3사건 전 기간에 걸쳐 무분별한 총살이 곳곳에서 벌어지긴 했지만, 초토화 작전 때 벌어진 무차별 학살극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기간에 토벌대는 중산간 마을을 덮쳐 온 가옥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4․3사건의 전개과정 중 가장 참혹하고 무자비한 학살극이 벌어진 것이다. 학살극의 정점에는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정부 수립 이후에도 작전통제권을 여전히 쥐고 있던 미군이 있었다.

…….중략……. 제6권에 해당하는 아래의 글은 한림면(翰林面, 한경면 포함), 애월면(涯月面), 제주읍(濟州邑)의 실상을 다룸으로써 초토화 작전 상황을 마쳤다. 향후의 전개과정에 관해서는 한 권으로 묶어 전(全) 7권으로 '4․3은 말한다' 연작을 마칠 예정이다.”

‘4,3은 말한다’는 현재는 5권까지 출판이 되었지만 총 7권으로 계획되어 있다.

6권의 마지막은 아래와 같이 마무리 되어있다.

“이에 대해 미군보고서는 이승만의 결정에 따라 과격한 반공주의자로 주목받고 있는 서청단원을 경찰로 만들었으며, 지원자를 늘리기 위해 단원 20명을 모아오면 그중 1명을 경사로, 50명엔 경위 1명을, 2백 명에는 경감 1명을 특채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주한미군사령부, 「G-2일일보고서」, 1948년 12월 6일자). 정용철은 바로 이런 방침에 따라 경위로 특채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서북청년회를 제주에 파견한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이북에서 혈혈단신으로 내려와 의지할 곳이 없는데다가 공산주의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던 서북청년회의 처지를 이용한 것이었다. 한 학자의 표현처럼 ‘저기 빨갱이가 있다’고 속삭여주기만 하면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달려들 사람들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서청단원들도 어쩌면 역사의 희생자일지 모른다. 궁극적 책임자는 군통수권자인 이승만이라 할 것이다. 역사는 이승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2.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하여?

“나는 그동안 믿기지 않는 증언들을 많이 들었다. 도대체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증언들을 들어야만 했다. 4.3 피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로부터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인간이 왜 그랬을까?”

마주 앉은 내게 피해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전할 때 마다 멈추었다. 깊어지고 소리가 낮아지는 숨을 곁에서 느껴야 했다. 이겸
마주 앉은 내게 피해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전할 때 마다 멈추었다. 깊어지고 소리가 낮아지는 숨을 곁에서 느껴야 했다. ⓒ이겸

나는 김 대표에게 당시의 사건과 잔인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한없이 먹먹해졌다. 그러니 피해 당사자들과 직접 마주한 김 대표의 심정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기록은 모진 세월을 견딘 희생자들과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온 기록자들이 이룬 결과이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되고, 해서는 안 되는 잔인한 행위들이 실제로 무수히 벌어졌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발생했다. 가해자들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당위성이 있었을까? 자기기만 행위조차 정당화 할 수 있게 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조장하고 부치긴 세력은 있었을까?

김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 할수록 수렁에 빠져들었다.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피해자들의 치유에 관하여

“허접한 메모 한 장이 가장 좋은 기억보다 낫다." 김 대표가 필자에게 한 말이다. 기록의 중요성이 함축된 문장이다. 허접하다고 말했지만 그의 기록은 귀한 것이다. 큰 파도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는 과정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잔혹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는다. 깊은 상처가 남는다. 사라지지 않는 트라우마는 당사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당사자의 가족들, 주변인들, 이를 전해들은 사람들, 그리고 넓게 부서진 상처들이 트라우마의 대상자들을 만든다.

“트라우마 치료의 최우선 대상자는 그 당시 10세 이하의 어린아이들 이예요. 자기방어를 할 수 없었던 아이들이요. 마음의 방어막이 생기기도 전에 무차별적으로 현장에서 직접 겪어야했던 사람들이죠.”

올해는 4.3 70주년이다. 추념식에 국가를 대표해서 문제인 대통령이 참석했고 이 자리에서 국가폭력에 대해 깊이 사과를 했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희생자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중략……. 유족들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중략……. 국가트라우마센터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여러 차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4.3치유 센터 설립의 중요성을 주장해 왔다.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국가트라우마 센터’를 언급이 할 때, 매우 반가웠다. 당연한 일임에도 4.3 70주년이 되는 해에 대통령의 발언으로 공식화 한 것이다.

잘 웃지 않는 남자. 웃을 줄 모르는 남자는 아니다. 지금은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치유의 대상은 피해 당사자와 가족, 이를 기록한 기록자들도 포함 한다. 나는 이들의 웃음을 보고 싶다.  이겸
잘 웃지 않는 남자. 웃을 줄 모르는 남자는 아니다. 지금은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치유의 대상은 피해 당사자와 가족, 이를 기록한 기록자들도 포함 한다. 나는 이들의 웃음을 보고 싶다. ⓒ이겸

“당시 10살 아이는 이제 80살이 되었어요. 7살 아이는 77살이 되었죠. 살아있는 동안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치유가 필요합니다. 죄 없이 숨죽여야 했던 세월의 트라우마를 우리가 조금이나마 덜어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김 대표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다. 제발 그렇게 하자고 말이다.

4.어떤 호칭으로 불리길 바라나?

오랜 시간 동안 4.3 하나에만 천착해서 연구를 해왔음에도 필자에게는 자신을 소개하는 명함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직함이나 호칭을 무어라 불러야할지? 어떤 호칭으로 불리길 바라는지 듣고 싶었다.

“나는 4.3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불리는 게 가장 걸맞다고 생각한다.”

빼곡히 꽂힌 자료들은 그가 공부하는 사람임을 대변한다. 이렇다 할 장식을 찾아 볼 수 없는 공간엔 책 냄새만 가득하다. 이겸
빼곡히 꽂힌 자료들은 그가 공부하는 사람임을 대변한다. 이렇다 할 장식을 찾아 볼 수 없는 공간엔 책 냄새만 가득하다. ⓒ이겸

담백한 대답이었다. 더 붙일 것도 뺄 것도 없는 말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았던 시간과 현장답사 동행, 그리고 강연을 들으며 느낀 것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갖가지 사건들과 참혹한 일들이 벌어진다. 또한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과 시간을 통틀어 보자면 모두 ‘사람의 일’이다. 드물지만 ‘꼭 필요한 사람’을 우린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외면하는 사건들이 있다,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 바로 ‘꼭 필요한 사람’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엔 김종민 대표는 꼭 필요한 사람이다. 제주도에 국한된 인물이 아니다.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인물이 아니다.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보편적인 인류애와 인권을 이야기 할 때 김종민 대표의 역할은 적지 않다. 제주 4.3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기에 우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꼭 필요한 사람, 4.3의 기록자 김종민 대표와 같은 귀한 사람들이 있기에 우린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김 대표를 만나며 기록의 가치를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4.3 역사 공부를 함께 하는 그룹이 여럿 만들어지고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김종민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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