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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가 행복한 이유
‘작은 학교’가 행복한 이유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6.22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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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초등학교 양효순 교장을 만나다
“아이들 위해 직접 중국어 방송 녹음해요”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제주도에는 '작은 학교'가 많다. 제주 지역 곳곳에 소박하게 자리한 보물같은 작은 학교들.

교장 선생님의 중국어 방송으로 아침을 시작한다는 서귀포시 안덕면의 '작은 학교', 사계초등학교를 찾았다.

'작은 학교'라서 행복하다는 사계초 양효순 교장을 만나보자. [편집자주]

사계초등학교 전경. 오른편에 산방산을 끼고 있다.

 “찌엔따오 니~ 헌 까오씽.”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라산의 뚜껑(?)이라 불리는 산방산의 웅장한 자태와 묘하게 어우러지는 위치에 소담한 작은 학교가 있다. 바로 사계초등학교다.

사계초등학교의 화요일, 목요일 아침은 활기찬 중국어 듣기 방송으로 시작된다.

5분에서 7분 내외의 시간 동안 진행되는 중국어 방송에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사계초의 아침 중국어 방송을 책임지는 기분 좋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양효순 교장이다.

양 교장이 중국어 아침 방송을 시작한 것은 지난 4월부터다.

“직무연수를 통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중국어를 배운 지는 2년 정도 되었어요. 제가 배운 중국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중국어 아침 방송’을 생각해냈죠.”

그녀는 중국어 능력 시험 중 공신력이 가장 높은 시험으로 꼽히는 HSK의 5급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다. 1급부터 시작해 6급이 최고 단계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녀는 상당한 실력자(?)다.

바쁜 업무 중에 중국어 공부까지 하려면 하루가 모자랐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떨까?

“평소 외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금도 매주 화요일 저녁 외국어학습문화원에서 하는 직무연수에 참여하고 있고요. 외국어는 쓰지 않으면 금방 잊게 되니까,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계초등학교 양효순 교장.

그녀는 매주 일요일, 아이들을 위해 직접 중국어 방송 대본을 쓰고 녹음한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제주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인터넷방송국에서 영어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때 경험했던 대본 쓰는 법이나 녹음 방법 등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죠.”

아침마다 중국어 방송을 듣는다는 것. 때로는 아이들에게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중국어 방송을 ‘억지로 하는 공부’로 만들지 않으려 해요. 그래서 따로 쓰기 수업은 하지 않고 있어요. 방송의 내용도 기본적인 회화를 중심으로 하고, 문장 중간마다 아이들의 이름이나 사연을 넣어서 방송하니까 ‘공부’가 아니라, ‘놀이’로 흥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실제로 아이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한 학부모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를 집에서도 노래처럼 흥얼거릴 정도로 즐거운 마음으로 중국어를 익히고 있다.

양 교장이 학교 복도를 지나갈 때면, 아이들이 먼저 “니하오~”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외국어를 익히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흥미’와 ‘자신감’이에요. 아이들의 중국어 실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중국어 방송의 궁극적인 목표는 ‘흥미’와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함이죠.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사계초 아침 방송을 통해 접했던 중국어를 떠올리며 외국어를 쉽게 생각하고, 자신 있게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사계초등학교 양효순 교장.

중국어 아침 방송을 시작한 지 어느덧 3달째에 접어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 1년간의 수업 내용을 모두 계획한 뒤 시작했지만 얼마 전 계획이 수정되었단다.

“회를 거듭할수록 방송을 통해 소개하는 중국어 회화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는데요. 혹시 어려운 점은 없을까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내용이 어려워서 처음부터 다시 복습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더군요. 그래서 최근에는 이전 방송을 다시 들으며 복습하고 있답니다.”

사계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유치원을 포함해 총 100명 내외인 작은 학교다. 제주 시내, 혹은 수도권의 큰 학교와 비교했을 때. 작은 학교이기에 불편한 점은 없을까?

“불편한 점보다는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모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사계초에서는 한 학기 동안 모든 아이와 함께 일대일 대화의 시간이 있는데요, 지난주에는 4학년 아이들과 대화를 했는데 서울에서 전학을 온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서울에서는 학생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이 관심을 덜 주시는데, 여기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이 끝까지 남아서 알려주신다고요.”

그녀는 “자신이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아이들도 다 느끼고 있다”라며 아이 하나, 하나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자존감과 직결된다고 했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를 적은 게시판. '친구에게 하루에 한 번씩 칭찬을 하겠다'는 아이의 다짐이 눈에 띈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를 적은 게시판. '친구에게 하루에 한 번씩 칭찬을 하겠다'는 아이의 다짐이 눈에 띈다.

사계초가 작은 학교라서 좋은 점은 또 있다. 사계초의 명물, 오케스트라에 모든 아이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하는데요. 전교생이 참가해요. 사계초에 입학하게 되면 1~2학년 아이들은 예비 단원으로 플루트과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고, 3학년부턴 각자 잘하거나 하고 싶은 악기를 정해서 6학년 때까지 자신만의 악기로 연습하게 됩니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였다면 연주를 잘하는 아이만 대표로 뽑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뽑았을 텐데, 우리 학교는 실력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가 무대에 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공부방, 모래내 카페의 입구.

사계초에는 카페가 하나 있다.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는 아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다.

“사계(모래 사沙, 시내 계溪)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모래내’ 입니다. 그래서 ‘모래내 카페’라고 이름을 지었는데요. 카페에 마련된 보드게임이나 책을 읽기도 하고, 학교 숙제를 할 수도 있는 자유공간이에요.”

학교에 대한 불만 사항을 아이들에게 물을 때마다 “없어요”라고 말하기에, ‘우리 학교에 위험한 곳은 어디일까?’, ‘어떤 시설이 생기면 좋을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써오라는 숙제를 냈다는 그녀.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철봉에 매달리는 부분의 긴 봉이 헛돌아서 위험하고, 불편하다는 것. 어린이집에 있는 놀이터처럼 초등학교 놀이터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 세면대의 수도꼭지가 오래돼서 교체했으면 좋겠다는 것. 체육관의 천장이 낮아서 공을 던지기가 힘들다는 것. 아이들의 시선이 아니면 알아채기 힘들 건의사항들이 나왔어요.”

모래내 카페의 내부. 보다 많은 아이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평상을 마련했다.

사계초는 아이들의 건의사항을 듣는 데 그치지 않았다. 헛도는 철봉은 금세 보수되었고,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7월 중 건설할 예정이다. 신설될 체육관 역시 예산 확보가 완료된 상태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교직원 모두가 존중받는 학교를 만들려면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야 해요. '무엇을 더 보완하면 좋을까?'하고 말이죠. 작은 불만도 허투루 들으면 안돼요. 사계초를 더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 저 뿐만 아니라 이원용 교감선생님, 교직원분들, 학부모님들,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 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양 교장의 바람은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녀의 바람은 어쩌면 이미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녀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노력하는 까닭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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