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들은 1등 원희룡을 다시 선택하다
제주도민들은 1등 원희룡을 다시 선택하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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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그는 누구인가] 학력고사 전국 수석의 ‘향수’
​​​​​​​“중앙이 아닌 제주와 도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해야”
제주도민들은 '1등 원희룡'을 다시 한번 선택했다. 미디어제주
제주도민들은 '1등 원희룡'을 다시 한번 선택했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늘 1등만 하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은 전국 1등이 됐다. 그 친구는 대학 입학 이후 고향을 떠났다가 30년만에 귀향했다. 원희룡 도지사다. 그는 4년 전인 2014년 6.4 지방선거에 이어, 6월 13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번 제주도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원희룡이라는 이름 석자는 50대 중반을 넘긴 제주도민들에겐 추억으로 다가온다. 향수라기보다는 제주도민들에게는 ‘자긍심’이라는 알지 못할 뭔가를 심어줬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학 입학 시험에 변화를 맞는다. 예비고사를 치르던 시험 방식의 일대 변화였다. 체력장 점수 20점과 객관식 문항 320점을 더해 340점 만점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대입 고사였다. 이름은 ‘학력고사’였다. 그 시험 첫해 전국 수석이 나왔다. 그것도 제주에서 원희룡이라는 인물이 수석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서울대 법대 수석, 사법고시 수석의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정치에 입문해서는 서울시 양천구 갑 선거구에서 3선 국회의원, 제주에 내려와서는 두 번 연속 도지사 선거에 승리했다. 그러고 보면 시험이든, 정치든 그에겐 ‘1위’가 붙어다닌다.

하지만 1980년대라는 시절은 젊은 원희룡을 그냥 두진 않았다. 학생운동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자와 함께하기도 했다. 구금에 이어, 학교에서는 유기정학 처분까지 받는다. 그래도 그는 참았다. 낮에는 공장 노동자로, 밤에는 야학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사법시험에 수석합격을 하고, 4년여의 검사생활과 변호사 생활을 하던 그는 정계에 도전한다. 그때가 2000년이다. 한나라당이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젊은피를 수혈하려 했고, 원희룡은 적격이었다. 한나라당 소장파였던 그는 미래연대를 꾸미며 당을 개혁하는 선봉에 서기도 했다.

2004년엔 최연소 최고위원 자리에 올랐고, 최고위원을 물러선 뒤엔 대권 도전도 선언했다. 그러나 2007년 한나라당내 대선후보 경쟁에서는 3위에 머물렀다. 2012년 총선은 불출마하며 기회를 엿보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 다시 찾아온다. 이름이 바뀐 새누리당의 자치단체장 후보로 거론된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도지사 후보로 나서는지 여부는 그야말로 관심거리였다. 수석만 하던 원희룡이지만 고향에도 먹힐지는 미지수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장고를 거듭하며 결단을 내린 그는 관덕정에서 제주도지사 후보로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을 한다.

그는 또다시 선택을 받았다. 여전히 그에게 거는 기대는 높다. 그러나 앞으로는 난관이 더 많다. 4년에 대한 성과에 대한 비판에서도 자유롭지는 못하다. 개발이냐, 보전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와중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 더구나 제2공항은 아직도 깜깜이다. 갈등 소지만 안고 있다.

더구나 그는 무소속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하며 무소속의 위치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4년간 그에게 붙어다닌 건 제주를 바라보지 않고 중앙만 바라보며 정치를 한다는 것이었다. 대권도전에 대한 생각도 좋지만 제주에 더 애정을 가져달라는 주문이다.

제주도민은 앞으로 4년을 그에게 다시 맡겼다. 도민은 대권주자 원희룡보다는 제주도민 원희룡을 원하고 있다. 두 번 연속 도지사를 맡긴 건 내실을 튼튼히 하면서 대권도전에 나서달라는 기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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