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솟아난 세 사람은 제주의 시작점이어서 중요
땅에서 솟아난 세 사람은 제주의 시작점이어서 중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5.30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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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1> 삼성신화

탐라순력도 이야기를 끝내고 새로운 기획으로 독자를 만나려 합니다. 제주도는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섬입니다. 하지만 사료로 남은 게 극히 적습니다. 때문에 제대로 된 이야기를 구성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기존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재구성하기도 하고, 현 시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도 싣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어린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세상의 시작은 혼돈이다. 그걸 애써 다른 말로 한다면 ‘카오스’가 된다. 혼돈은 어느 나라의 신화에서나 찾을 수 있는 키워드이다. 제주에 등장하는 신화에도 이런 혼돈은 있다. 그런 혼돈시대에 해와 달을 만든 이야기가 제주에서는 천지왕본풀이가 된다. 이 시간은 신화를 뜻하는 본풀이를 읊으려는 게 아니라, 제주의 시작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제주의 시작은 ‘삼성신화’이다.

삼성은 3가지의 성씨를 말한다. 고씨, 양씨, 부씨를 일컫는다. 줄여서 고·양·부라고도 하지만, 양·고·부라고도 한다. 고씨와 양씨, 혹은 양씨와 고씨간의 서열다툼이 여기에서 읽힌다. 그런 서열다툼은 법정 분쟁까지 부르기도 했다. 현재 삼성사재단 명칭은 ‘고양부 삼성사재단’으로 돼 있다. 양씨종친회는 ‘고양부’가 아니라 ‘양고부’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성씨 순서가 중요할까. 세 성씨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으나 제주라는 땅을 딛고 사는 사람입장에서는 그보다는 ‘삼성신화’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삼성신화는 세 성씨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제주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인연 있는 다른 신화와 달리 ‘땅’ 접목된 유일한 신화
고씨 가계 다룬 ‘성주고씨가전’에 삼성신화 가장 먼저 등장
정사로는 <고려사>에 이어 <세종실록지리지>에 내용 수록

사실 신화는 황당한 이야기를 담는 경우가 많다. 믿으려도 해도 믿을 수 없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더 우습다. 신화는 신화에 담긴 글자를 그대로 읽는 게 아니다. 거기에 담긴 생각을 읽어가야 한다.

삼성신화 얘기가 나왔으니, 그와 비교될 수 있는 신화를 찾아보자. 바로 단군신화가 아닐까. 단군신화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모두 중요하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시작점이 되는 이야기여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삼성신화가 가지는 위치는 매우 크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섬성신화는 세 성씨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주도 탄생이라는 점에서 봐줘야 맞는 말이다.

삼성신화는 삼성혈에서 시작된다. 삼성혈은 사적 제134호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국가 소유가 아니라 고양부 삼성사재단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삼성혈은 3개의 구멍이 나 있다. 거기에서 세 성씨가 출현을 했다고 삼성신화는 이야기한다. 물론 여기를 향해 제사도 지낸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삼성신화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눈 내렸을 때의 삼성혈. 평상시는 구멍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눈이 내리면 삼성이 나왔다는 구멍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김형훈
눈 내렸을 때의 삼성혈. 평상시는 구멍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눈이 내리면 삼성이 나왔다는 구멍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김형훈

“본주(本州)는 전라도의 남쪽바다 가운데 있다. 그 주(州)의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는 사람과 물건이 없었는데 신선 세 사람이 땅으로부터 솟아나왔다. 지금도 주산(主山) 북쪽기슭에 모흥이라는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곳이다. 첫째는 양을나(良乙那), 둘째를 고을나(高乙那), 셋째를 부을나(夫乙那)라고 하였다. 하루는 자주 색깔로 칠해서 봉한 목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 가서 열어보니, 목함 속에 석함이 있었다. 붉은띠에 자주색 옷을 입은 사자(使者) 한 사람이 있어서 석함을 열었는데,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망아지·송아지와 오곡 종자가 나왔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에 등장하는 삼성신화와 관련된 이야기의 일부이다. 삼성이 땅으로부터 나왔고, 세 성씨를 뜻하는 ‘고·양·부’가 등장한다. 아니 여기서는 ‘양·고·부’로 등장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국가가 편찬한 기록물이다. 단종 2년(1454) 때 간행물이다. 삼성신화 이야기는 국가 편찬물로는 <세종실록지리지>보다는 <고려사>가 앞선다. <고려사>는 문종 1년(1451) 때 나온 기록물이다.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의 삼성신화 내용은 똑같다. 다르다면 <고려사>는 ‘탐라현’으로 시작을 하고, <세종실록지리지>는 ‘본주(本州)’로 시작하는 건 뿐이다.

국가편찬물 외에는 ‘성주고씨가전(星主高氏家傳)’이 삼성신화 이야기를 담은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이다. ‘가전’에서보듯 고씨의 가계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다. 응당 고씨 중심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성주고씨가전’은 한성부 판윤을 지낸 고득종이 개입돼 서술됐다. 고득종은 26세에 과거에 급제를 하게 되는데, 그가 28세 때 정의오라는 인물에게 ‘성주고씨가전’을 부탁하게 된다. 태종 16년(1416) 때의 일이다. ‘성주고씨가전’은 이후 간행되는 <동문선>에 그 내용이 실리고 있다.

삼성신화 이야기는 이밖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기언>(1689년), <남환박물>(1704년), <영조실록>(1729년), 안정복의 <동사강목>(1778년) 등에 실린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기언>과 <남환박물>을 제외하고는 세 성씨 순서를 양고부로 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저술이나 정사 위주의 역사에서는 ‘고양부’가 아니라 ‘양고부’임을 알게 된다.

그나저나 중요한 건 앞서 설명했듯이 세 성씨가 아니다. 누가 우선 순위인 것은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삼성신화를 잘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하다.

땅에서 솟아났다는 이야기는 무척 중요하다. 우리나라 건국신화는 하늘과 인연이 많다. 단군신화부터 그렇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많다.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혁거세, 가야의 수로 등이 그런 계통의 신화이다. 또한 이런 부류의 신화는 태양과 결합된다. 어찌 보면 국가 탄생의 이야기는 대게는 하늘과의 인연이 닿아야 성립되는 게 정설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삼성신화는 이질적이다. 하늘이 아니고 땅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한반도라는 전체를 놓고 볼 때 땅에서 솟아나서 국가를 이룬 이야기는 삼성신화가 유일하다. 왜 그럴까. 다음 이야기에 계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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