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6:27 (금)
세월이 지난만큼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법
세월이 지난만큼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법
  • 문영찬
  • 승인 2018.05.23 13: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영찬의 무술 이야기] <30> 시간이 알려주는 것들

어릴적부터 체구가 작고 잔병치례가 많았다. 툭하면 친구들에게 맞고 놀다 다치고 울면서 집에 왔던 기억이 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혼내시곤 했다. 다치면 다쳤다고 혼내셨고 친구들과 싸우고 들어오면 싸웠다고 혼났다. 다쳐서 아픈 건 난데 왜 어머니가 나를 혼내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 마음을 조금씩 이해 할 수 있었다.

쿵후 전단지를 보고 중학교 시절부터 소위 운동이라는걸 시작했다. 영화에서 보던 그 멋진 폼, 잘 싸우는 영웅호걸의 모습이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시작된 운동은 지금껏 도복을 입고 지내는 모습으로 나를 만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운동 외엔 별관심이 없었다. 대표선수도 해보고 아무 준비없이 시합에 나갔다 쳐 맞고 들어오기도 했다. 쳐 맞고 온몸에 멍이 들어 어머니가 찜질을 해주며 속상해 하던 모습이 이해가 안됐다. 나중에야 그 마음을 조금씩 이해 할 수 있었다.

군대도 일부러 특수부대에 부모님 모르게 지원을 했다. 부모님 막도장을 몰래 파고 병무청에 친구들과 함께 5년짜리 하사관에 지원을 했다. 입영통지서가 집으로 배달된 후에야 집에서는 그런 곳에 왜 가냐며 또 혼났다. 가서 고생도 내가 할 일이고 위험도 내가 감수할텐데 역정을 내시는 부모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 아이가 어릴 적 나처럼 사고를 쳐서 다치거나 아프면 내 마음이 아팠다. 어릴적 어머니께서 역정내시던 모습이 기억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그 마음을 조금씩 이해 할 수 있었다.

처음 아이키도를 시작할 때 제주에는 전문 도장이 없었다. 서울을 매월 찾아가서 10시간 가까이 배우고 왔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때는 한참 다른 운동을 매일 하고 있을 때라 '제주면 금방인데 제주가 아닌 서울을 찾아가야 되니 약 6개월이면 다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고 찾아갔다.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하고 나니 기술은 많지 않지만 그 변화 무쌍하고 감각적인 모습과 느낌에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는 무술이 아니며 내가 한참 잘못 생각을 하고 접근했다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보기에는 쉬워 보였지만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게 진짜구나 !'

무술은 마냥 따라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키도는 15년째 매일 수련하고 있다.

고류검술인 가토리신토류를 만났다. 처음 접하는 일본 정통 검술은 나의 혼을 쏙 빼놓기 충분했다. 내가 알고 있던 무기술은 전부 장난이었다. 선생의 움직임은 공포 그 자체였다. 선생이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가토리신토류는 현재 교사면허(지도를 해도 좋다는 면허)를 사사받고 회원들과 매일 훈련하고 있다.

도장에서 지도하며 훈련하다 보면 가끔 언제까지 연습해야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아이키도든 가토리신토류든 형태를 외우고 익히는 것은 금방 할 수 있다.

그러나 1년을 수련하면 1년만큼의 감각적 형태가 나오고 10년하면 10년 만큼의 감각적 형태가 나온다. 5년 한 사람이나 10년 한 사람이나 겉모습은 그리 차이가 없지만 기술 교류가 시작되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그 맛을 알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맛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성인부 훈련 모습.
성인부 훈련 모습.

이제는 나이도 마흔 중반을 훌쩍 넘겼다.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인생이 이런 것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시간이 지나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알려주는 것들.

간혹 열정과 자신감에 취해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을까? 주변을 좀더 살펴야겠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 않도록. 물론 그것 또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테지만.

 

문영찬의 무술 이야기

문영찬 칼럼니스트

(사)대한합기도회 제주도지부장
제주오승도장 도장장
아이키도 국제 4단
고류 검술 교사 면허 소지 (천진정전 향취신도류_텐신쇼덴 가토리신토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