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8 21:23 (목)
“퇴행하는 제주, 전방위적 경보음 공유해야”
“퇴행하는 제주, 전방위적 경보음 공유해야”
  • 미디어제주
  • 승인 2018.05.2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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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 도민·언론·지식층, 분골쇄신의 각오로 투신해야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 양심 세력의 몸사림 행보의 축적, 사회 정체를 가속화한다

- '존재 이유' 보여준 美경제학자들의 '백악관에 보낸 편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경제를 잘했다”는 응답이 4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임 100일(54%), 취임 6개월(52%)에 비해 더 떨어졌다. 주류 경제학자들로부터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득주도 성장’이란 이름으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논란투성이 정책들을 밀어붙인 데 대한 국민들의 의문, 좌절, 피로감이 확산된 결과일 것이다. 경기 둔화를 알리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자리와 생산·설비 투자 등 각종 지표들은 적신호 일색이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학계의 기본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권력을 향한 쓴소리는 부담스러워 하면서 정치권 동향에는 귀 기울이는 ‘폴리페서’형 학자들이 적지 않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소신을 정책에 반영되도록 적극 노력하는 경제학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15명을 포함한 미국 경제학자 1140명이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보호무역주의를 공개 비판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1930년대 대공황이 심해진 배경에는 미국발(發) 관세 인상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경제학자들의 사명과 역할, 존재 이유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아도 무방할 듯하다. 최근 한 언론의 보도한 내용을 발췌했다.

요즘처럼 '내 편'과 '적'의 이분법적 프레임의 성향이 강해지는 살벌한 세상 속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향해 경보음을 울리는 일은 잘해야 본전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양심 세력인 학자들은 자신의 소신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고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려 대안까지 제시하는 그런 용기를 보여야 한다. 경보음은 건강 이상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등과 같다. 무시하고 작은 병을 큰 병으로 키우면 백약이 무효일 수 있다. 사회 구석구석에 공유되는 경보음이야말로 위기를 막는 최상의 방패인 셈이다. 경보음을 울려야 할 양심 세력의 몸사림 행보의 축적은 사회를 정체시켜 후진적 사회로의 전락을 가속화시킨다.

1990년 후반 외환위기 때 김영삼 정부는 “펀더멘털은 문제 없다”며 위기 경보음을 줄곧 외면하다 경제주권이 IMF로 넘어가는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을 자초했다. 이 정부는 어떤가. 대부분 나라가 글로벌 경제 호황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데도 우리만 유일하게 성장과 투자가 위축되고 고용 빙하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숫자로 말하는 성과는 내놓지 못한 채 “공정 경제, 소득 주도 성장의 틀을 갖췄다”고 자화자찬 뿐이다.

위기 경보음을 외면할 때 진짜 위기로 찾아온다. 위기는 글로벌 경제상황의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받는 우리의 소규모 개방경제엔 타고난 운명과도 같다. 경보음을 신호 삼아 끊임없이 경제 근육을 키워놔야 진짜 위기 때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전방위적 경보음 작동체제를 구축하고 구조 개혁과 체질 개선의 처방전을 제시해야 할 때다.

요즘 제주에는 지식인 등 양심의 소리는 몸사림 하느라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고 이들 인사들의 일부는 아예 권력자의 호위세력으로 나서고 있다. 권력의 횡포에 포획된 언론에는 재갈이 물리고 그렇게 길들여진 언론은 정론직필의 언론 사명을 저버리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여론 왜곡을 서슴치 않고 한 방향으로만 달리며 제주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제왕적 권력의 일탈 행위에 경보음을 울리지는 못하고 멀거니 쳐다보기만 하거나 오히려 일탈 행위에 동조까지 하는 제주 양심 소리의 민낯이다.

권력의 유혹과 압력 때문에 양심 소리의 경보음이 사라지면 견제와 균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권력의 일방적 독주 위험이 크다. 양심 세력이 이대로 허무하게 주저앉아 버리면 제주 도민은 영원히 고통과 번민의 나락에서 헤어나질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양식과 분별력을 지닌 세력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선거 후보자들의 자질과 공약에 대해 객관적이며 엄격한 방식으로 검증을 해야 한다. 내부 에너지의 응축을 통해 제주를 성숙한 선진사회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 6.13 선거 앞두고 이전투구 내홍에 빠져드는 제주 사회

제주 도민은 경제는 저성장, 정치 산업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하는 절박하고 암울한 제주 상황에서 6.13 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또 다시 제주 정치가 무책임과 이전투구의 늪에서 요동치고 있다. 응축됐던 적폐들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민생은 온데간데없고 정쟁만이 판을 친다. 후보 진영 간 논쟁에서 보듯이 현안의 본질은 사라지고 저질 공방만 난무한다. 제주 정치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을까. 치유하기 힘든 고질적인 난치병에 걸렸기 때문이 아닐까?

관권 선거 등 불거지는 각종 의혹에 괸당 정치, 패거리 정치에 의한 이합집산이 가속화되면서 제주 사회는 비방과 음해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아사리판이다.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지면서 정책 선거는 소멸되고 포퓰리즘 공약과 가짜뉴스와 흑색선전 등 각종 네거티브 선거행태만 활개친다. 어설픈 마타도아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음을 모르는 듯 하다. 여기에 더해 정체성 없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회주의적 철새 후보들이 정치판을 분탕질하고 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지휘를 해야 할 이들의 거짓말, 편법, 술수, 꼼수와 협잡은 제주 사회를 더욱 저급한 세계로 전락시킨다. 도민의 여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군림과 이익투쟁 정치에 함몰은 결과적으로 패거리 짓기와 줄서기의 첨예한 대립구도를 형성해 제주 사회의 파편화 현상을 심화시킨다. 제주의 경쟁력이 자랄 토양이 크게 훼손될 뿐이다. 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피어 올린 흙먼지를 맨 먼저 뒤집어 쓰며 피해 보는 건 바로 제주 도민이다.

이러한 퇴행적 상황의 가속화 과정에서 도민은 패거리 정치의 선수와 구경꾼으로 각자도생하는 모습이며, 지식인들은 관용과 침묵으로 몸을 사린다. 관료 집단은 후보자들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며 줄타기를 하는 관료사회 특유의 생존본능이 발동한다. 언론은 권력의 나팔수를 자임하며 제주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몸사림과 각자도생 속에서 퇴행하는 제주의 민낯이다.

지도자의 리더십과 도민의 폴로우십의 엇박자 속에 이처럼 제주 도민은 끝없이 부딪치며 갈등과 분란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괸당 정치와 진영의 논리에 빠져 사생결단의 싸움에만 익숙하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국민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대화와 타협의 문을 걸어 닫은 채 둘, 셋으로 갈려 서로가 이를 악물고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 모두가 '보고 싶은 것' 유혹에 빠져 '함께 봐야 할 것'을 외면하며 무조건 상대를 배척하고 있다. 상대의 잘못은 확대하고 업적은 무조건 지워버리려 한다. 자신은 선, 상대방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회색이 아름다워야 선진사회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선거가 가열되면서 폭로와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 관계 확인보다 일단 폭로부터 한다. 도민 이익을 위해 '배제의 정치'를 타파하고 '공존의 정치'를 실현해야 할 정치인들이 불구대천 원수 대하듯 서로 굴복시키려는 모습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제주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거짓말이 범죄로 연결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대표적인 거짓말 범죄라 할 수 있는 사기·무고·위증 사범 발생률이 일본보다 수십 배에서 수천 배까지 높은 게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러한 연유로 제주는 어느 한 쟁점에서도 여론을 제대로 모으질 못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란은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해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결국에는 서로에 대한 험한 꼴이 부메랑이 돼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내부의 긍정 에너지는 거의 다 무너져 내리고 그 자리에는 불신과 불통, 반목과 갈등이 새로이 똬리를 틀고 있다. 긍정 에너지의 붕괴는 각자도생 모델을 확장시켜 사회의 근본가치를 파괴하게 된다.

제주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게 보이는데 우리 내부의 견해 차이, 이해 다툼이 그 길을 막고 있다. 제주 사회의 갈등은 대부분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분쟁이 장기화하는 악순환 구조까지 갖고 있다. 제주 정치의 위기는 제주인 삶의 위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대로 방치하면 성장 엔진이 멈추고 제주호는 좌초할 것이 자명하다. 제주호는 다시 설 만큼 복원력이 큰 사회가 아니다. 제주호가 이렇게 추동력을 잃고 있는데도 제주 정치가 난치병을 치유하지 않고 어제도 그제도 지나갔던 항로를 향해 관성적으로 운항한다면 퇴행적 정치로 4등분되었던 제주 사회가 더 쪼개질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선거 때만 되면 제주 정치권은 끊임없이 혁신을 한다고 목청껏 외쳤지만 실패했다. 반드시 해야 할 혁신은 하지 않고 혁신의 시늉만 내며 사익추구 정치만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도민이 심판을 해야 할 때다. 투표권을 행사한 후 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구도가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6.13 선거에서 환골탈태의 각오로 퇴행적 정치를 완전히 뜯어고쳐 제주 정치를 정상화해야 하는 이유다.

# 부도난 기업의 어음처럼 나뒹굴고 있는 사기 선거공약 그만 두어야

선거전이 뜨거워지면서 후보들이 이런저런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 보따리를 풀고 있다. 화려한 포장지로 치장되었지만 내용이 건성건성 대충인 무수한 ‘사기성 날림 공약’들이 선거판을 휘젓는다. 실효성과 예산이 검증된 공약보다는 표를 의식해 급조되거나 부풀려진, 이른바 포퓰리즘에 편승한 일탈적 선심 공약들이다.

이는 도민 혈세로 선물을 돌리겠다는 얌체성 약속이나 다름없다. 함량 미달 패거리들의 유유상종 관행이 한몫을 하며 의기투합한 결과다. 이들의 염치없는 탐욕이 저지르는 말잔치와 정치 놀음으로 제주 사회가 온통 정치꾼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풀뿌리 포퓰리즘을 보는 듯 하다.

관심 끄는 공약들 앞에는 어김없이 ‘무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실제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공짜’라는 말만큼 유혹적인 언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짜 공약은 시간이 지나 다른 곳에서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럼에도 공짜·선심 공약이 판치는 것은 너나 가릴 것 없이 ‘이기고 보자’는 승리 지상주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도민을 호도하는 포퓰리즘 공약들은 일단 후보의 당선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경솔한 공약엔 무리한 재정 투입이 뒤따른다. 그래서 포퓰리즘의 환상에 빠졌던 공동체는 선거 이후 각종 불화와 갈등이 확산되면서 상당 기간 비싼 대가를 치른다. 선거가 과열되면 정치인들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방 선거에서의 무지갯빛 사기성 날림 공약은 필연적으로 해당 자치단체에 치명상을 안기게 된다. 용인 경전철, 인천 월미 관광철도, 태백 오투리조트,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등 자치단체 부실사업의 대표적 사례는 대부분 선거 과정에서 돌출한 인기 영합 및 치적 쌓기용 엉터리 공약 때문에 생긴 것이다. 원 지사는 세금 주도로 공무원 일자리 1만개를 창출하겠다는 제1호 선거공약을 내세웠다. 명색이 1호 공약부터 사익추구 포퓰리즘 정치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모양새다.

선거에 있어 공약 이행을 위한 재정소요 및 조달 방안을 명확히 밝힐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공약 부풀리기 경쟁은 심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빚더미는 다음 세대에 넘겨지기 때문에 그 빚을 쓴 현 세대의 귀엔 쓴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낙선 후보는 공약 실천의무가 자동적으로 소멸되기 때문에 공약 불이행 시비는 당선자에게로 국한되며 시간이 흐르면서 유권자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 간다. 선거 때마다 사기성 날림 공약이 남발되며 고질화되는 이유이다. 부도난 기업의 어음처럼 나뒹굴고 있는 자신들의 선거공약을 보고 있는 도민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이들은 제대로 헤아리고나 있을까?

지금과 같이 포퓰리즘 공약이 유권자와 선거를 포획해 제주 사회를 갈등과 혼란, 재정위기로 끌고 가는 퇴행적 관행을 반복하게 둬서는 안된다. 포퓰리즘 공약이 이전 선거 때보다 더욱 확산되는 것을 보면 선거 문화가 4년 전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이 아닐까? 공짜 좋아하다 집안 거덜날 수 있다. 재정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결국 우리들이 내는 세금이기에 달콤한 공약이 세금 도둑이 되지 않게 유권자가 눈을 부릅떠야 한다. 지금이라도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들이 매니페스토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 공약은 도민과 약속의 교환,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소통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약속의 준수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민주 사회에서 선거 공약은 약속의 교환을 의미하며 신뢰의 최소요건을 이룬다. 상황과 유불리와 편의주의에 따라 말 바꾸기를 거듭하며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다면 그 사회는 불신의 늪으로 빠져 퇴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정직함이 빛을 잃고, 거짓말쟁이가 대접받으며 악명(惡名)조차 자산이 되는 사회로 흘러가도록 방기해서는 안된다. 이는 국민이 거짓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건전하고 튼튼한 새로운 DNA로 무장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공약 실천이 불가능한 상황을 알고도 약속했다면 이는 허위 또는 사기 계약이 된다. 국민의 기억을 우습게 아는 행위다. 결국 자신도 정상배 정치꾼으로 전락돼 끝없는 고통과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자신의 선거 공약을 헌신짝 버리듯이 내던진다면 제주 사회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제주 상황에 대한 낙관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 인해 도정에 대한 기대 심리도 낮아질 것이다. 최근 제주의 위기가 그 많은 대책에도 먹혀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도정과 정책의 신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주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제시한 공약부터 지켜야 하는 이유다.

# 후보와 공약에 대한 철저한 검증으로 도민 권리 챙겨야

고객 중심주의란 고객들의 뜻을 무시하고 그들과 소통을 거부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제활동의 기본적 원칙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유독 정치와 선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2014년 6·4 지방선거로 뽑힌 민선 6기 단체장과 지방의원 중 130여 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선출직 공무원의 중도 하차는 행정 공백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공약은 휴지 조각이 되고 유권자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정책 및 행정 서비스를 포기해야 했다. 유권자들을 우습게 보는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 자신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선 철저한 후보 검증과 선거 감시가 필요한 이유다.

첫째, 지금까지의 제주 지사 후보들의 공약들을 보면 대부분 단기적인 현안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집중돼 있다. 도정 운영에서 단기적 문제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특별자치도를 4년간 이끌 지사 후보들이라면 당선된 후 4년 간 변화시킬 제주 사회의 위상에 대한 중장기적 비전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공약은 도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약을 잘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공약은 도민이 믿을 수 있어야 하며 생생하고 현실감이 있어야 한다. 일방적인 공약 제시가 아니라 도민과의 협의와 참여를 통해 공동체 현실에 부합하는 공약 및 실천전략을 구성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도민 사회의 참여와 몰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고 합의된 절차에 따라 실천이 이뤄어져 성공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셋째, 무지갯빛 날림공약을 차단해야 한다. 지사 후보가 공약을 내놓을 때 그저 화려하고 솔깃한 사탕발림 청사진만 두루뭉술하게 공개할 게 아니라 자금조달 방법 등 구체적인 공약 실천 방안이 담긴 견적서를 먼저 내놓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토대로 학계, 사회단체 등 중립적인 전문․검증기구에서 공약 평가 및 이행 점검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넷째, 최근 날림 공약이 지방 재정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지자체 파산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날림 공약을 막기 위해선 파산제도의 도입과 함께 도민들이 단체장의 책임을 직접 물을 수 있도록 주민소환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후보들이 주민 세금을 허투루 쓰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됨을 인식하여 보다 신중한 현장 접근과 재정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날림 선거 공약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의 공약들도 예외없이 토목 건설과 복지 공약이 단골 메뉴로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공약으로 금방이라도 지역 경제가 활활 타오르게 될 것으로 호도하고 오도하는 후보가 적지 않다. 지상 낙원을 만들겠다는 공약만 풍년이고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전 공약의 재탕 삼탕의 날림 공약(空約)이 아닌 미래를 먹여 살릴 실천 가능한 공약(公約)을 내놔야 한다.

세계 각국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응하기 위해 몸무림치고 있지만 제주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다. 후보 모두 중앙 정부에서 보조금을 더 타내다가 외형만 그럴싸한 공사판을 벌이려고만 한다. 제주를 먹여 살릴 콘텐츠가 없이 새 도로가 뚫리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도시의 겉모습만 바뀌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선거의 개혁은 유권자의 자각에 달렸다. 제주 도민은 금번 6.13 선거를 계기로 날림 선심성 공약의 남발 등 제주 정치인의 일탈 행위에 끝을 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철저한 검증을 통해 엉터리 후보와 가짜 공약을 가려내야 한다. 정치인들에게서 제주 공동체에 제시할 미래비전과 공약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의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의 비전이나 가치관을 묻지 않고 표를 주는 것은 신성한 주권과 미래의 포기나 다름없다. 정체성 없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회주의적 철새 후보와 날림 선심성 공약의 남발을 일삼는 엉터리 정치인들에게 당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지 말자.

과거에 머물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놓쳐 제주의 경쟁력이 무너지면 제주는 녹슨 도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제주 가치와 미래 성장을 위한 탈바꿈이 선거 공약과 후보의 자질 검증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6.13 선거는 제주 잠재력의 개조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선거판으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면피와 몸사림이 팽배한 사회, 발전 커녕 퇴락할 뿐이다

요즘처럼 '내 편'과 '적'의 이분법적 프레임의 성향이 강해지는 살벌한 세상 속에서 권력과 기득층을 향해 쓴소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양심이 살아있는 공동체원이라면 면피와 몸사림 행보를 지양하고 오롯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소신과 용기를 보여야 한다. 제주 사회의 언론, 지식층, 도민들의 건설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많아져야 제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 공동체원이 행동해야 할 때를 맞은 것이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견제자는 바로 공동체의 도민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과거의 역할과 기능에 심취해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견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들은 선출직이라는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둔갑해 자기들만이 곧 도민의 대표인 듯 거들먹거리고 자기들을 뽑아준 도민에게까지 안중에 없는 듯 군림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이처럼 도민을 우습게 여기는데도 괸당 정치에 인질이 된 도민은 그런 사람들을 또 뽑아주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 도민들은 정치인들이 제 잇속 챙기기에만 몰두하며 안하무인의 권력으로 변질돼 가고 있음을 개탄만 하고 있으면 안된다. 지금처럼 정치인들이 ‘무능집단’ ‘불임집단’으로 전락해 본연의 임무를 하지 못한다면 도민들이 팔을 걷어붙여야만 한다. 이들이 높은 경각심을 갖고 쇄신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도민들이 선거에서 표를 통해 응징하는 수밖에 없다. 구태 권력들이 민생을 구해낼 비전과 의지를 도민 앞에 내놓고 행동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도민들은 낙후된 정치와 함량미달의 정치인을 ‘분리수거’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이들에 대한 도민의 반감은 새로운 정치인의 등장을 기대케 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기성 정치집단만으로는 더 이상 제주사회 발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퇴행적 현상이 축적되는 상황에선 개혁과 융성의 길을 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주를 이끌어갈 동력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제주지역 구석구석에 성장의 뜨거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혁신적 인물을 발굴해 제주를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

제주 동력을 업그레이드하거나 혁신적 인물을 발굴하더라도 지금처럼 투표권을 행사한 후 정치인과 관료 등 기득세력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구조로는 제주사회의 지속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기득세력의 퇴행성을 노상 개탄하면서도 때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찍어주는 관계적 투표행위가 지속되는 한 제주는 삼류 변방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주사회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공약을 검증하고 정치인을 바로 뽑아 질을 높이는 일은 제주 도민의 몫이며 제주 도민의 시민의식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제주 정치는 도민 스스로가 고치야 하는 것이다. 이는 도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도민들이 퇴행적 사고를 바꾸지 못하면 제주 가치의 창조는 요원하며 궁극적으로 제주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도민은 결국 그 도민의 수준에 맞는 정치를 가질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는 절대왕정 비슷한 행태의 통치 스타일이 사태의 주범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일탈행위를 감시할 경보·견제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고장나 누구도 경보음을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제주의 경우도 중앙 정부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제주사회 내부 전반의 허술한 도정 운영 시스템을 감시할 경보·견제 시스템부터 뜯어고쳐야 하는 이유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확고한 인식이다. 그 길목에서 조그만 실수들이 쌓이고 쌓이면 머지않아 사회가 무너지는 큰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회 전방위적으로 울리는 경보음이야말로 큰 재앙을 막는 첩경이다.

# 도민들, 인질정치에서 벗어나 시민정신 발휘해야

제주 지도자와 패거리들이 제왕적 권력을 악용하여 제주 사회를 사유화하며 공동체를 위해(危害)하고 훼손시키는 일탈이 비일비재해지고 있다. 하지만 도민들은 제왕적 권력으로 비대화한 지도자 폭력의 트라우마로 점철된 굴레에 갇혀 이들의 일탈에 속수무책이다. 이들이 정상적이라면 등 돌린 민심을 달래기 위해 치열한 자기반성과 혁신을 꾀하는 흉내라도 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집단은 이것을 바로잡기는 커녕 사익편취에 목을 매며 제주 사회를 분열시키에 바빴다. 도민의 삶은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기에 그저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자신들만의 나팔을 불어댄 것이다. 이러한 이들의 일탈 행위는 도민의 가슴에 염장을 지르고, 적반하장의 변명은 도민의 기를 막아 아연실색케 했다. 이들의 뻔뻔함과 당돌함은 자신들이 수퍼갑(甲)이고 도민을 졸(卒)로 만든다. 이들은 이것도 모자란지 괸당문화를 '정치 인질'로 붙잡아 정치생명을 이어가며 제주를 퇴행시키기까지 한다.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살 방도를 찾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은 두 발로 일어서 스스로 살 방도를 찾기보단 괸당들의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늘어지며 자신들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들이 도민을 향해 자신들 선택을 강요하는 건 제주 도민들을 정치적·정신적으로 고문을 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제주의 퇴행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일탈 행위를 방기하는 도민 책임이 크다. 그동안 도민들이 어떻게 처신했기에 이들이 도민들을 이처럼 우습게 여기는 것일까? 얼마나 도민들을 깔보았기에 저렇게 오만방자와 방약무인일까? 탐욕의 제왕놀이에 함몰된 몰염치한 자를 만들고 이들이 활개 치도록 만든 것도 결국 도민 수준 아닌가?

문제의 근본은 이들을 대하는 제주 사회가 너무 관대했거나 굴종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쌓아 놓은 견고한 성벽과 사회적 폐쇄성에서 나오는 현실 안주의 나약함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저렇게 오만방자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제주 사회에 정치 인질로 붙잡아 둔 괸당 패거리 세력이 많다는 그 나름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시민의 참여와 헌신 없이는 국가가 모든 일을 독점하며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이를 증명하였다. 우리 사회는 근대화를 거치면서 눈부신 경제적 성장을 이뤘지만 정치나 시민의식은 경제에 비견하는 성장을 구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참여하고 헌신하려는 시민의식이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민주사회의 주춧돌이 되어야 할 교양의 형성, 자기 성찰과 반성의 문화는 착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똑같은 사건과 사고가 반복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오직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만 배웠을 뿐, 공동체를 위해 시민으로서 자신이 지켜야 할 행동과 직업윤리에는 해태했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회는 결국 성숙한 개인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것이다. 투표권을 행사한 후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지금의 구조와 방식으로는 제주 가치 창조와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도민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제주 공동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도민들의 몸사림 행보의 축적은 제주 사회를 정체시켜 후진적 공동체로 전락시킬 뿐이다. 갈등과 분란의 일상화로 매듭 하나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지금의 제주 사회에 절실한 것은 바로 최소한의 시민정신이다. 정상이 아닌 권력에 비판을 가하며 바로잡아 나가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주인의식으로 무장해야 할 때이다. 제주 성장을 위해 시민의식과 주인의식으로 무장된 도민들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지식인들, 몸사림 행보 벗어나 정의로운 사회 구현에 앞장서야

개방화 시대를 맞이하며 축적된 다양한 모순과 갈등구조가 중층적 모순구조로 심화되면서 제주의 위기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단편적 정책지식들만 난무할 뿐이다. 통합적 거시적 관점에서 해법을 제시하는 제주의 ‘지식 권력자’는 어디에도 안 보인다. 이러다 변방의 섬 신세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세속적인 세상에 대해, 그리고 서슬 퍼런 제왕적 정치권력에 대해 대쪽같이 경보음을 울려줄 수 있는 지식 권력이야말로 지금 제주에 가장 필요한 존재이다. 지금 제주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의 근원에는 지식 권력의 붕괴라는 위기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사회에 대한 도정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지식 권력은 점점 정치권력에 종속되어 간다. 도정으로 부터 용역을 발주 받은 학자들이 대놓고 도정에 싫은 소리 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다. 여기에 더해 제주의 싱크탱크 대부분이 도정 산하기관으로 소속돼 있어 학자들의 객관적인 지식 산출보다는 도정의 이념이나 정책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산출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시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 제주에는 어른거리는 불길한 그림자를 경고하는 지식인들이 안보인다. 양심의 소리는 몸을 사리느라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고 양심의 소리를 내야할 인사들의 일부는 아예 권력자의 호위세력으로 나서고 있다. 견제와 균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 체제는 권력 세력의 일방적 독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주사회 진영간 장벽이 더 높고 단단해지면서 도민 대부분이 '우리 편 저쪽 편' 하는 진영논리의 수렁에 빠진다. 진영의 골이 점점 깊게 패이면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내보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체득한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반대 편과는 소통을 거부하고, 반대 편의 목소리를 아예 담 너머 개 짖는 소리로 치부해 버린다. 용기와 양식을 갖췄던 제주 지식인들 대부분 이렇게 물들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결과 지식인들의 언어에는 우리를 성찰케 하는 새로운 관점이나 깊은 식견이 빠져있기 마련이다. 추종자들의 환호 속에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이들의 늘 똑같은 소리는 대신 제주 사회를 대결 국면으로만 몰고 갈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가 오로지 이것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양식을 갖고 과거를 올바로 보고 제주 공동체의 미래를 도모하려는 양심 세력이라면 이들의 탐욕과 주장의 허구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주의 양심 세력이 이대로 허무하게 주저앉아 버리면 제주 도민은 영원히 고통과 번민의 나락에서 헤어나질 못할 것이다. 퇴행의 세계로 떠밀려 가고 있는 제주의 양심 세력이 다시 일어나 건전하고 정의로운 사회 구현에 앞장서야만 하는 이유다.

나라를 위한 좋은 정책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정책을 생산하는 주체들이 다양해야 하고, 정책 관련 생태계 내에서 활발한 상호울림 작용이 있어야만 한다. 건강한 울림의 정책 생태계를 가진 나라가 민주적인 선진국이다. 대표적인 게 미국이다. 싱크탱크가 2만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정책지식은 싱크탱크를 통해 순환된다. 정부 용역시장은 싱크탱크 간 경쟁의 장이다. 이런 생태계가 미국의 힘이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직면한 것도 집단사고에 빠져있던 정치권과 관료 집단에 울림의 공론의 장이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정책지식 생태계는 과연 달라졌을까. 정책지식 생산을 주도하던 국책연구소의 우수 인력이 속속 떠나면서 위상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지금 국책연구소는 연구자들이 대학으로 옮겨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민간 경제연구소도 쪼그라들기는 마찬가지다.

퇴행의 세계로 떠밀려 가고 있는 제주를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는 제주의 대학도 기대난망이다. 양심의 목소리를 내며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교수들은 학회를 이리저리 쪼개 그들만의 놀이터 만들기에 분주하다. 폴리페서들이 설쳐대면서 정책 생태계까지 오염됐다. 오히려 이념으로 똘똘 뭉친 시민단체 연구소의 목소리가 드높다. 제주연구원과 제주의 대학들이 내부 개혁을 통해 건전하고 겸허한 울림의 정책생태계 구축이 필요한 이유이다.

# 제주연구원, 전면적 개혁하여 권력의 시녀에서 벗어나야

제주 도정의 정책 생산은 제주 발전연구원에서 주도하고 있지만 그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개별적 정책지식을 통합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나 적시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구원을 개혁할 기회를 놓치고 도정의 ‘맞춤형 용역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지적이 많다. 연구원들은 본연의 과제 수행보다는 대학으로 옮겨가는 징검다리로 이용하려 든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도정의 지나친 경영 간섭은 제발연의 정치화·관료화를 초래해 연구원으로서의 창의성, 자율성, 역동성, 업무 효율성 등 조직 가치창조를 위한 동인이 사라지고 있다.

그간 제주연구원 상층부 인사는 공모의 취지와는 달리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선거공신들을 요직에 임명함으로써 관료화·정치화를 심화시켜 연구원의 정체화·퇴행화 초래의 구실을 제공해 왔다. 이는 제주연구원의 정책 생태계를 오염시켜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타이밍을 놓치고 정치적 비용을 늘려 선택 불능 상황으로 내몰리게 한 주범이 되었다. 제주연구원이 제주 지역의 정책 싱크탱크라는 지위를 획득했지만, 제주도의 경제력 향상과 도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다양성 구축은 제주연구원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핵심 과제이다. 효율적인 정책 수립과 추진을 위한 창의적 조직이 되려면 생태계와의 건전한 소통 속에 다양성이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민간 부문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부족한 다양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민간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강력한 공공성의 담지자가 되어, 민간을 지원하고 활용하는 관계로 바꾸어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 사회와의 관계성이 넓어져 대중의 지식이 공유되고 융합됨에 따라 혁신의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결과적으로 보다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제 해결의 첩경은 민간 전문가를 중용해 민간부분 경영방식을 제주연구원에도 폭넓게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측근을 앉히기 위해 편법으로 악용되고 있는 공공기관장 공모제부터 혁신해야 한다. 공공기관장 자리를 전리품으로 전락시킨 지금의 공모제 최종 피해자는 바로 도민이다. 제주연구원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선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모든 것을 부정해보고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내부에서의 치열한 비판과 각성이 있어야 한다. 그저 대충대충 속에 퇴행하는 사회를 외면하고 몸사림 속에서 살길을 찾으려 한다면 제주 지식권력인 제주연구원의 미래는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 권력 지향적 편파 언론 단죄해 정론직필 정신 되살려야

언론의 기본 사명은 정확한 사실 보도와 균형 있는 논평을 통해 독자들이 ‘지금 내가 머무는 공동체 안에서 무슨 일이 왜 벌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시대에는 어떤 일이 중요하며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론직필의 언론 사명은 어려운 언론 환경 속에서도, 도민의 슬픔과 고통을 공유하며 어떤 폭압적 권력 앞에서도 불의에 불굴하고 권력의 남용을 외면하지 않는 강직한 기개를 보여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 언론이 도민의 수호천사가 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본다. 제주 언론이 도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언론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제주사회 소통 부재의 책임이 도정 권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도민을 대신해 궁금증을 풀고, 의혹을 캐야 할 언론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제주 언론이 기본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데에는, 도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언론은 재정의 취약성 등으로 권언유착의 악습을 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레기 언론, 도정의 나팔수, 특정인 홍보지 등 많은 비아냥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언론의 존재 이유는 권력 비판과 민권 선양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요즘 제주 언론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책 실패의 문제는 권력이 무서워 못 쓰고, 사회 갈등이나 경제 문제는 사회단체가 무섭고 광고 수입 때문에 눈감아 버리는 퇴행성이 반복되면서 양심과 양식으로 저항하려는 기자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굴종과 타협, 좌절과 무관심에서 벗어나 말할 수 있는 마지막 혀뿌리가 남아있고, 글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손가락이 잘리기 전에는 모든 권력과 비리의 사슬을 끓고 감연히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주 언론이 도민의 수호천사로 거듭날 수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둔 언론의 보도 자세에 치열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권력에 기생해 권력의 나팔수를 자임하며 혹세무민하는 언론들의 과오를 철저히 밝힐 필요가 있다. 망각에 저항하고 기억을 보존해야 성찰과 반성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SNS가 여론을 주도하면서 인터넷 언론은 가히 '제5부의 권력'을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언론에서는 거대한 권력인 양 행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SNS 시대를 맞아 언론 권력의 남용 외에 또 다른 문제는 거짓 보도다. SNS 시대가 만개하면서 진실이 가공되고 사실은 조작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에만 집착해서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외면하며 국민을 오도하는 '거짓말 언론'은 어쩌면 '못 쓰는 언론' '잘못 쓰는 언론'보다 더 해악적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거짓 보도가 기승을 부리고 거짓말로 국민을 속인다. 공공성, 공익성, 공정성을 앞세우는 언론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거짓과 진실을 가려주는 판결사의 역할을 못하면 언론 존재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압축 성장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어 왔지만, 요즘처럼 단기간에 사회 시스템 전체가 혼돈 상태에 빠졌던 때는 없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집단·지역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며 정부 정책이 신뢰를 상실하고 사회 시스템 전체가 혼돈 상태에 빠져있다. 공무원, 의사, 변호사 등 집단의 이기적인 목소리가 점점 강해져 우리 사회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은 도외시되고 있다.

이렇듯 이익 집단들이 국가 여론을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언론의 여론선도 기능이 중요해 지는데 언론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노벨 경제학자 뮈르달(Myrdal)이 말하는 소프트 스테이트(soft state), 즉 연성국가가 된다. 연성국가는 령(令)이 안서는, 소위 질서가 안 잡히는 국가를 말한다. 뮈르달은 연성국가에서는 사회가 극도의 혼란으로 내몰리고 민생과 약자들은 더 궁지에 빠지게 되어 절대로 경제발전이 안 된다고 했다. 혼란의 시대에는 언론이 경제·사회발전에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내용이다. 갈등과 분란이 일상화되고 있는 제주 사회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에 관한 유명한 격언이 있다. '저널리즘은 역사의 초안(草案)(first draft of history)'이라는 것이다. 언론은 역사를 써나가는 데 기초가 되는 기록을 담당하는 직업이다. 그것은 쓸 것을 쓰는 것, 사실에 충실한 자세, 옳은 데에서 타협하지 않는 용기를 말한다. 도민과의 소통 결핍으로 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제주 언론에 많은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

도정 권력의 언론 장악 시도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도민의 항거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룰 수 있다.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정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하위권에서 맴도는 제주 청렴도 수준이 이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도민들도 언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도정이 공정한 경쟁의 법칙을 만들고 엄정한 집행자가 되고 있는지, 언론이 파수꾼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경계심과 의식을 가지고 냉철한 비평자와 조언자가 되어야 한다.

제주 언론이 올바른 보도와 공정하고 객관적인 논조로 도민의 눈과 귀를 여는 정론직필의 초심을 견지할 때 비로소 제주 도민의 수호천사가 될 수 있으며, 도민은 이러한 제주 언론을 가슴 깊이 보듬고 서서 미래의 희망을 맞게 될 것이다.

# 전방위적 경보음의 울림 속에 제주 미래비전 그려내자

지금 우리 앞에는 갈등과 반목으로 찢긴 사회, 성장과 분배의 공방 속에 표류하는 경제, 흔들리는 한·미 동맹과 핵전쟁의 공포라는 냉엄한 현실이 놓여 있다. 이로 인해 나라 상황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변방의 섬, 제주를 둘러싼 제반 상황도 결코 녹록치 않다. 앞으로 우리의 운명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복잡다난한 상황 하에서 제주 도민은 6.13 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새로이 출범하는 도정에 대해 꿈과 희망을 얘기하고 싶지만 마음은 무겁다. 성장은 둔화되고 개방화 시대를 맞이하며 축적된 중층적 모순과 갈등구조에 공동체적 유대감은 갈등의 덫에 갇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과 세대, 지역과 계층으로 갈려 심각한 갈등을 겪으면서 협상과 타협의 정치는 증발했고, 불통과 편가르기가 판친다. 문제는 갈등의 양상이 더 첨예화하고 양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와 있음을 인정하고, 제주 사회의 모순과 한계를 철저히 비판해야만 한다. 그래야 사회 전반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사회 균열을 아물게 할 처방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앞으로 제주 사회의 갈등과 대립 구조는 더욱 공고해지고 제주특별자치도의 신천지로의 여정은 더욱 힘들며 긴 터널이 될 것이다. 제주 사회 전방위적으로 경고음의 울림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6.13 지사 선거를 계기로 또 한번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제주 사회의 새로운 미래상을 그려내야 하는 엄중한 과제와 맞닥뜨려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체제, 새로운 비전과 공약에 대한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도민들의 참여와 공감 속에서 실질적이고 살아있는 대안을 담은 제주의 미래 비전을 그려내야 한다. 그래야 이를 기반으로 제주 도민들은 스스로의 역량으로 잠재된 제주의 미래가치를 극대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 미래 비전의 올바른 결정의 바탕에는 새 지사의 창의적인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새 지사의 창의적인 판단은 지속적인 소통과 끊임없는 통찰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는 6.13 선거에서 도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도민이 인질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관행대로 선거에 임한다면 제주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퇴행적 정치에 포획돼 피폐한 삶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지금까지 제주 사회를 지탱하며 이끌어 온 기존 질서를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하지만 흔들리는 기존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였던 제임스 윌슨은 그의 ‘깨진 창문(broken windows)’ 이론에서 ‘빌딩의 깨진 창문을 바로 수리하지 않고 놔두면 파괴자들이 나머지 창문들도 곧 깨뜨리게 된다’고 했다.

세계화 시대에 축적된 중층적 모순과 갈등구조 속에서 깨져가는 제주 사회의 창문을 조속히 수리하지 않으면 제주는 퇴락할 수밖에 없다. 어렵더라도 새로운 가치의 구현과 성장 동력의 발현을 위해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원리의 사회로 바꾸기 위한 혁신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 대책의 출발은 도민·언론·지식층 등 제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분골쇄신의 각오로 경보음을 울리며 온몸을 던지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몸을 사리는 행보만을 이어간다면 제주 사회는 변방의 이름 없는 사회로 전락할 뿐이다. 제주는 쓰러졌다가 다시 설 만큼 복원력이 큰 사회가 아니다.

또 한번의 제주 기적을 위해서는 제주 구성원들의 대오각성이 절실하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할 때의 절박한 마음으로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면 제주 도민의 역량으로 넘지 못할 산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6.13 선거는 우리 스스로 이뤄 낸 성취들이 갈등의 벽을 허물고 온 도민이 함께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로 변환되도록 모두가 힘을 모으는 중대한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 도민적 에너지의 결집은 도민의 시민정신 함양, 언론의 정론직필 사명 구현, 사회 지식층의 헌신적 투신의 폴로우십과 새 지사 리더십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번 선거에 임하는 도민의 자세와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결연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스웨덴 자살 예방 전문가 스벤슨 박사가 투신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다리라는 오명을 쓴 마포대교를 걷던 중 우연히 비상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5분도 안돼 구급차 3대, 해상구조선 2척 등 20여명의 소방관이 출동해 자살시도자를 수색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비상벨이 울린지 5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정말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이러한 경보 시스템이 생명을 살리고 자살률 1위 나라에서 벗어나게 해 국격을 높이게 된다. 제주 가치의 구현과 성장 동력의 발현을 위해 새로운 원리의 사회로의 탈바꿈 과업에 임하는 제주 도민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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