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북한을 너무 모르고 있다
우리는 북한을 너무 모르고 있다
  • 김명숙
  • 승인 2018.05.15 1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 처방전] <9> 조선자본주의 공화국

최근 서점에서 갔다가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냉큼 집어들었다. 이 책의 발행일은 지난해 8월. 로이터 통신 서울 주재 특파원인 제임스 피어슨과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터가 썼다. 이들은 기자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작금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상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의견, 북한 사회의 상이한 계층에 속하는 정보원,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로 된 자료를 참조했고 세 명 이상의 신뢰할 만한 취재원을 통해 확인된 주장만을 실었다고 한다. 삼자의 시각에서 쓴 글이라 한국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예리한 지적과 통찰도 눈에 띈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기이하지만 북한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메스게임 화보 사진에 대한 설명이다.

“아리랑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데는 참가자의 오랜 야간 훈련과 노동이 요구된다. 이때 북한 아이들에게 부과되는 수업 외 요구 사항은 한국 입시준비학원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매스게임과 한국의 입시학원은 몸부림을 치면서도 그 안에서 공통의 목적과 공동체를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 유사하다.”

뒤통수가 뜨끔해지는 대목이다. 남한과 북한은 분단 이후, 서로 체제경쟁을 하면서 서로 다름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음에도 외국 기자의 눈에는 ‘도긴개긴’ 한 틀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책의 영문판 발행일은 2015년, 한국판 발행에 2년이라는 시차가 있는데 우리가 북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기에 생긴 시차가 아닌가 싶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이란 오래전 헤어졌으나 말썽만 피워서 집안의 골칫거리가 된 형제쯤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북한이라는 아이템은 어느 분야에서나 비인기 종목인 것이다. 무관심은 오해를 부르고 오해는 분쟁의 씨앗이 되기 쉽다.

틀에 박힌 설명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흔히 북한에서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에게 동정심을 갖고 접근한다. 하지만 그런 설명들은 또 북한 주민에게서 주체성을 박탈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 몇 년 전 탈북민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은 북한에 남아 있는 아들에게 탈북을 준비시켰단다. 아들은 탈북 당일 날 고심 끝에 탈북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 주민 누구나 기회만 주어지면 ‘엑소더스’를 감행할 것이라는 것도 남한인이 가지고 있는 오해가 아닐까.

저자는 지금 북한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즉, 장마당 경제라고 진단한다. 북한의 일반 임금 생활자는 공식 일자리는 국영공장에 두면서, 뇌물을 주고 일터에서 빠져나와 개인사업을 할 수 있고 중국을 통한 무역 거래도 가능하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1990년대 중반에 발생한 대기근에 있다. 두 차례에 걸친 풍수해를 통해 20만~30만 명에 이르는 아사자가 발생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조선시대 발생한 임진왜란과 같은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양반 중심의 계급체제의 균열과 조선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이데올로기 해체와 같은 변혁을 몰고온 것처럼 북한 주민들은 대기근을 겪으면서 국가의 우산 밖에서 각자 도생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여성의 삶도 달라졌다. 주부는 주부 이상의 역할을 떠안고 있다. 많은 여성이 북한 가정을 실질적으로 부양하고 있다. 장마당에 좌판을 내고 음식을 팔고 영세한 수출입 사업에 종사하거나 가정집을 시간제로 연애 커플에게 임대하는 것도 대부분 여성의 일이다. 7~10년 가까운 복무 기간을 들어 북한을 군사 국가로 여기기 쉽지만 북한 병사는 군사 훈련보다 민간 건설사업에 동원되는 경우가 더 많다. 만일 북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면 김정은을 호위하는 집단은 정규군이 아니라 특수부대일 가능성이 높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체제로 북한을 일인지배체제로 여기고 있지만 경쟁적 분파로 구성된 연합체인 조직지도부가 권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다. 궁극적인 권력은 300명의 조직지도부를 통해 흘러나온다. 이런 국가 시스템의 설계자는 김일성이 아니라 김정일라는 것, 미국 CIA는 1976년 이미 김일성이 최고 실권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평양에서는 대다수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고 중국에서 들여온 저장 매체를 통해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청이 가능하다.

북한 지도층이 ‘고난의 행군’으로 미화하는 대기근의 참사를 겪고도 국가가 유지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에는 한 장을 할애해서 북한 내에서 범죄와 처벌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이 대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북한인의 내면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정권은 여전히 사회를 통제할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시장화로 북한 체제가 바로 멸망하지도 않을 것 같다.

우리 시대 중요한 철학자인 슬라보에 지젝은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혼하다.’고 예견했다.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등장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결국 자본주의와 결혼한다는 것은 역설이지만 지금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동유럽, 중국, 베트남도 자본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 소설가 장강명은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서 통일 이후에 디스토피아 세상을 다루고 있는데, 정말 무서운 것은 북한에 공산주의 이후에 오는 ‘자본주의’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이혼한다’는 지젝의 가설을 인용하면 더욱 그러하다. 4월 27일 남북 정상이 만나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주었듯 6월 12일 북미 정상의 만남에 거는 기대 또한 남다르다. 남북 상호 모순을 큰 용광로에 녹여낼 대담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명숙 칼럼

김명숙 칼럼니스트

충북 단양 출신
한양대 국문과 졸업
성미산공동체 '저해모(저녁해먹는모임)' 회원
성미산공동체 성미산택껸도장 이사
나무발전소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