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햇빛도 못 봤을텐데 전시를 해줘 너무 고마워”
“햇빛도 못 봤을텐데 전시를 해줘 너무 고마워”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5.14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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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윤경노 어르신, 민속자연사박물관에 감사 뜻 전해
7월 31일까지 ‘윤경노씨 집안의 옛 생활을 보다’ 전시 개최
​​​​​​​“제주사람들의 옛 생활모습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윤경노 어르신은 명석한 기억력으로 옛일을 회상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윤경노 어르신은 명석한 기억력으로 옛일을 회상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윤경노 어르신. 올해로 아흔 일곱이다. 백세를 일컫는 상수(上壽)도 눈앞이다. 그는 다리에만 기력이 덜할뿐 말하고 듣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명쾌한 기억력은 젊은이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윤경노 어르신은 10년 전인 지난 2006년과 2007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제주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생활유물을 기증했다. 지난 2015년에도 기증은 이어졌다. 입었던 옷과 옹기, 궤, 서적이나 문서 등을 박물관에 넘겼다.

어르신이 내놓은 생활유적은 무척 중요하다. 제주사람들이 살아온 삶을 보려면 생활유물을 들여다봐야 하고, 요즘은 그런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에 어르신이 내놓은 생활유물은 값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윤경노 어르신의 정성에 보답하려고 작은 전시회를 마련했다. 박물관내 수눌음관 특별전시실에서 ‘강정마을 윤경노씨 집안의 옛 생활을 보다’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회를 직접 본 이들이라면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게 있다. 마치 갓 지은 옷감을 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전시회에서 만나는 두루마기 등의 복식은 얼마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당시엔 흔치 않은 재봉틀을 사용해서인지, 더 그런 느낌이다. 강정마을에서는 유일한 재봉틀이었고, 윤경노 어르신의 어머니의 솜씨라고 한다. 윤경노 어르신은 그걸 궤짝에 소중하게 보관했고, 수십년이 지났지만 새것처럼 남아있는 이유이다.

박물관에서 값진 전시를 할 수 있었던 건 어찌됐든 윤경노 어르신 덕분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민속자연사박물관의 정세호 관장 등과 함께 강정마을로 이동, 어르신을 직접 만나게 됐다.

윤경노 어르신은 “햇빛도 못 보고 썩을 것들이었다”면서 “(박물관에서 전시를 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내가 쓰던 것들이고, 장가갈 때 입었던 옷이다”고 되레 박물관에 고마움을 전했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이 '강정마을 윤경노씨 집안의 옛 생활을 보다' 전시를 하고 있다. 사진은 반닫이. 미디어제주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이 '강정마을 윤경노씨 집안의 옛 생활을 보다' 전시를 하고 있다. 사진은 반닫이. ⓒ미디어제주
강정마을제 순서를 써 둔 '홀기'. 미디어제주
강정마을제 순서를 써 둔 '홀기'. ⓒ미디어제주

그가 내놓은 생활유물 가운데는 강정마을제 순서를 기록해둔 홀기도 있고, 마을목장의 매매현황이 담긴 문서도 있다. 마을의 귀중한 역사들이 그의 손을 거쳤고, 그의 기억에 온전히 저장돼 있다.

어르신은 특히 제주도내 윤씨종친회 일도 많이 해왔다고 한다. 문중재산을 불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윤경노 어르신은 “입도선묘 옆에 있던 밭을 알선수수료를 받으면서 돈을 불렸다. 그걸로 892평짜리 땅을 47만원에 주고 샀다. 지금은 몇백억원이 된다. (제주도종친회가) 그것 하나로 굴러간다”고 말했다.

윤경노 어르신이 집안에서 배웅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윤경노 어르신이 집안에서 배웅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윤경노 어르신은 강정마을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었던 ‘논 다루는 소리’의 창작자이기도 하다. 한라문화제에서도 그 노동요를 선보이기도 했고, 2000년에는 한국민속예술제 민요경연에 제주도 대표로 출전해 문화관광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그 노래는 이제 끊기고, 그 노래를 부르던 어르신도 백세를 바라보지만 그가 남겨준 게 있기에 제주사람들의 삶을 오롯이 들여다본다는 점이 반갑다.

한편 ‘강정마을 윤경노씨 집안의 옛 생활을 보다’ 전시는 오는 7월 31일까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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