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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뭐해, 나눠줘야지”
“내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뭐해, 나눠줘야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5.05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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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천사 더스틴 ㈜김녕미로공원 대표, 하늘의 품으로
​​​​​​​기업의 수익을 전부 내놓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프레드릭 더스틴 김녕미로공원 대표이사. 5일 어린이날 하늘의 부름에 답했다. 미디어제주
프레드릭 더스틴 김녕미로공원 대표이사. 5일 어린이날 하늘의 부름에 답했다.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벽안의 나눔천사가 어린이날 하늘나라의 품으로 떠났다. 바로 ㈜김녕미로공원의 대표이사인 프레드릭 H. 더스틴(89)이다. 그는 5일 오전 9시 52분께 숙환으로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다. 1930년생 미국 국적인 그는 늘 세상을 위해 나눠주기만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더스틴 대표는 제주대 교수를 지내다가 김녕미로공원을 설립한 뒤 벌어들인 돈은 이웃을 위해 기부해왔다. 지난 2003년부터 제주대에 외국인 기금교수 재원으로 9200만원, 외국인 유학생과 교류학생 장학금, 외국인 교수 연구비 등으로 6억3076만원을 전달하는 등 지금까지 총 7억7000여만원을 제주대에 지원하고 있다.

그가 제주와 첫 인연을 맺은 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이다. 22세의 젊은 청년인 더스틴은 민간인 신분이 아닌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제주를 밟았다. 미8군 제7연대 소속 연합군이던 그는 총을 든 군인은 아니었다. 클라리넷을 든 군악대 신분으로 참전을 하게 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서울과 고향 미국을 오가던 그는 다시 제주를 밟는다. 1958년 아시아원조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다시 제주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제주에 완전 정착을 한 건 1971년이다. 제주대 교수로도 자리를 지켰고, 제주도청 국제통상협력실에 근무하며 3명의 도지사를 만났다.

그가 미로공원을 구상한 건 “제주대 교수를 그만두면 뭘할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미로공원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1987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사계절 푸르른 ‘렌라디’라는 나무를 하나 둘 심었고, 그렇게 해서 2300그루의 렌라디는 김녕미로공원을 미로처럼 꾸미는 일등공신이 됐다.

생전의 더스틴 김녕미로공원 대표이사. 그는 나눔을 실천한 기업가다. 수익을 내놓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느냐"고 했다. 미디어제주
생전의 더스틴 김녕미로공원 대표이사. 그는 나눔을 실천한 기업가다. 수익을 내놓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느냐"고 했다. ⓒ미디어제주

더스틴 대표의 땀이 녹아든 김녕미로공원은 1995년 오픈을 하게 되고, 1997년부터 아주 저렴한 입장료를 받고 있다. 동북아시아 첫 미로공원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다. 수익금을 쓰지 않고 전부 사회에 내놓았다. 생전에 그는 기부하는 이유에 대해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느냐”고 했다.

그의 철칙은 사회환원으로 이어졌다. 제주대학교에만 기부를 하는 건 아니다. 김녕초등학교와 김녕중학교에도 매년 지원을 한다. 그 가운데 제주대 기부가 많은 이유는 그를 키워준 곳이기 때문이란다.

기부천사 더스틴 대표의 빈소는 제주대병원 1분향실에 마련됐다. 일포는 5월 6일이며, 발인은 7일 오전 6시 30분이다. 조의금은 받지 않으며, 화장후 김녕미로공원에 안치한다는 계획이다. 연락처는 김녕미로공원 김영남 이사(☎ 010-3693-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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