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잊지 않고 기억하기, 4.3 원혼 진혼하는 유일한 방법”
“잊지 않고 기억하기, 4.3 원혼 진혼하는 유일한 방법”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8.04.27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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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현기영, 제주4.3항쟁 70주년 전국 문학인 제주대회 기조강연
“기억운동이 설득력 가지려면 정교한 창작 전략 있어야” 강조하기도
소설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 선생이 27일 한라리조트 제주에서 개막된 제주4.3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소설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 선생이 27일 한라리조트 제주에서 개막된 제주4.3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4.3문학은 지배권력이 행사한 망각의 정치, 즉 은폐‧부정(不定)‧왜곡에 대한 저항이어야 했고, 일반인들의 무관심과 냉소에 대한 투쟁이어야 했습니다”

군사정권 하에서 침묵을 강요 당하던 시절, 소설 ‘순이삼촌’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4.3을 기억해달라고 외쳤던 소설가 현기영 선생이 제주4.3항쟁 70주년 전국 문학인 제주대회 기조연설을 통해 작가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현기영 선생은 27일 한화리조트 제주에서 개막된 전국 문학인 제주대회에서 ‘레퀴엠으로서의 문학’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우선 3만명에 달하는 4.3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오랜 세월 동안 한국 현대사에서 배제돼 왔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역대 독재정권들이 대물림해가면서 강압적으로 은폐해왔기 때문에 억울한 죽음이 진혼이 안된 채로 허공 중에 떠돌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가해 세력이 저지른 제노사이드의 범죄들은 철저한 금기의 영역이었다”면서 거기에 도전하는 시민들은 용공분자로 낙인찍힌 채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투옥되는 등 희생이 끝없이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민중의 기억이 철저히 부정되고 그 기억에 대한 사소한 언급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민중은 ‘어쨌든 살기 위해서’ 스스로 그 기억을 지워야 했다는 게 그가 생각하는 오랜 세월 4.3에 대한 침묵을 강요당해온 과정이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른 채 죽어간 그들이, 살아서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그들이 죽어서 공산주의자가 된 셈이었다”면서 ‘빨갱이가 아니면 왜 죽였겠느냐’고 강변해온 ‘망각의 정치’의 이면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는 “변변한 무기도 없이 억제할 수 없는 분노만 가지고 봉기한 200, 혹은 300명의 젊은이들을 무찌르기 위해 무고한 양민 3만여명을 소탕한 것이 바로 4.3사건의 골자”라고 설명했다.

당시 양민 백을 죽이면 그 중에 게릴라 한 명쯤은 끼어있게 마련이었다는 뜻의 ‘백살일비(百殺一厞)’라는 말이 있었다면서 “그래서 게릴라 200~300명을 죽이기 위해 양민 3만을 소탕했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사건 이후에도 독재정권은 대물림되고 공포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태의 진상이 무엇인지 알려는 노력이 위험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침묵과 망각의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는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4.3 문학이 어렵사리 탄생했지만 체포, 고문, 투옥이 잇따랐다”면서 4.3 문학이 이같은 ‘기억운동’의 한 형태로 시작된 것임을 강조했다.

“4.3에 대한 민중의 기억이 철저히 부정되고 사소한 언급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왜곡된 기억을 부인하고 민중의 망가진 기억을 복원해 내는 작업이 ‘기억운동’이었으며, 그 운동의 선두에 문학인들이 있었다”고 강조한 그는 “가슴을 짓누르는 두려움 속에서 진행된 4.3문학은 대지 밑으로 파묻힌 한 시대의 전설을 발굴하는 문학이었으며, 타버린 마을들과 죽은 자들을 되살리는 문학이었다”고 4.3문학의 역할과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지난 40년 동안 자신의 소설 <순이 삼촌>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작품 속에 묘사된 참상들이 극히 일부분일 뿐인 데도 너무 충격적이라는 이유로 읽기를 꺼려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참사의 경우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 진상이 무엇이든 간에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덮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4.3은 국가 폭력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기 때문에 ‘민중을 보호하는 대신 도리어 민중을 파괴해 버린다면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의문을 품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4.3문학은 지배권력이 행사한 망각의 정치에 대한 저항이어야 했으며, 일반인들의 무관심과 냉소에 대한 투쟁이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단 한 가지, 인류가 그것을 잊는 것이다’라는 경구가 쓰여 있다는 점을 들어 “잊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반복해서 새롭게 재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미체험 세대들이 대물림하면서 그 기억을 계승하는 일, 즉 재기억이 바로 기억운동”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문학의 기억운동이 소비향락주의 사회에서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교한 창작 전략이 있어야 한다”며 정통 리얼리즘만 고집하지 않고 환상, 코미디도 아우를 수 있어야 하며 모더니즘의 방법론을 차용하는 새로운 리얼리즘을 찾아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분노의 둔탁한 표현인 종전의 슬로건 예술, 포스터 예술을 넘어서는 절실한 예술적 언어의 발견을 기대한다”며 탄식하고 분노하고 외치는 글이라 할지라도 ‘시(詩)’를 잃지 않는 리얼리즘의 예술을 보여달라는 문학인으로서의 간절한 소망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죽은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마땅한 도리이거늘, 3만명 조상의 통한의 죽음을 어찌 공동체가 무심할 수 있겠는가. 원혼은 섬기면 보살펴 주고, 푸대접하면 해코지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작가는 그 진혼굿을 주재하는 무당이어야 한다”는 그의 기조연설은 어쩌면 그 자신이 살아온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했다.

‘동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를 주제로 한 전국문학인 제주대회는 베트남 소설가 바오 닌, 대만 시인 리민용, 오키나와 소설가 메도루마 슌 등 국내‧외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제1섹션 ‘역사 속 나의 문학적 저항’, 제2섹션 ‘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로 나눠 진행된 뒤 종합토론 순서까지 이어졌다.

전국문학인 대회 이틀째인 29일에는 ‘역사의 상처, 문학의 치유’를 주제로 소설가 한림화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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