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6 17:57 (화)
푸른 눈의 신부, 자신이 기적 일궈낸 땅에 영원히 잠들다
푸른 눈의 신부, 자신이 기적 일궈낸 땅에 영원히 잠들다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8.04.27 14: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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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맥그린치 신부 장례미사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엄수
강우일 주교 “바위같은 믿음으로 굳건히 사신 분”
故 맥그린치 신부를 떠나보내는 장례미사가 27일 오전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엄수됐다.
故 맥그린치 신부를 떠나보내는 장례미사가 27일 오전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엄수됐다.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60여년 동안 사제로서의 삶을 온전히 제주를 위해 바친 故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가 자신이 직접 터를 일군 한림읍 금악리 이시돌 목장 내 글라라수녀원에 영원히 잠들었다.

27일 오전 10시 장례미사가 엄수된 삼위일체대성당도 도내 신자들과 함께 그가 지난 2001년 건립한 곳이었다.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집전한 이날 장례미사에는 제주교구 내 사제들은 물론 맥그린치 신부가 소속돼 있던 성골롬반선교회 사제들, 그리고 금악리 주민들과 도내‧외 천주교 신자 등 수백여명이 참석해 노사제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강우일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맥그린치 신부에 대해 “임피제 신부님은 사제로서 평생을 혼자 사셨지만 이 제주 땅에서 줄줄이 포도알에 달린 포도송이처럼 엄청난 열매를 맺으시고 할 일을 다 하신 분”이라고 고인의 삶을 회고했다.

또 강 주교는 “임 신부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도 전부터 약해지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슬픔에 젖지 않았다”면서 “임 신부님이 천수를 다 누리고 가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멋진 생애를 살다 가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당신이 24살의 나이로 처음 오셨을 때 이 땅은 전쟁의 광풍 속에서 온 국민이 너무 가난하고 고통스러온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면서 임 신부님이 한림성당에 처음 왔을 때 성당이라고는 조그만 초가집이 하나 있었고, 신자들은 어린 아이들까지 합쳐서 24명밖에 안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임 신부님은 무려 60년 동안 한 곳에 머물면서 선교활동을 펼친 고집스러운 분”이라면서 “그의 옹고집을 통해 성사시키고자 했던 하느님의 섭리가 있었을 거다. 그런 고집스러운 임 신부님이 아니셨으면 신축교안으로 어려웠던 제주 지역 사회에서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고 도민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고인이 큰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

강 주교는 마지막으로 “임 신부님은 맨 손이라도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면 반드시 이뤄주신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사신 분”이라며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이 덩치 큰 불굴의 사나이, 바위같은 믿음으로 어떤 도전과 시련도 이겨낸 이 파란 눈의 사나이를 통해 이 땅에 위대한 일을 펼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뒤 “주님 대전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평안히 쉬시라”는 마지막 배웅의 인사를 건넸다.

강우일 주교가 故 임피제 신부를 떠나보내는 장례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강우일 주교가 故 임피제 신부를 떠나보내는 장례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192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故 맥그린치 신부는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사제로 서품을 받은 뒤 1953년 한국으로 파견, 광주 순천성당에 있다가 제주 한림성당으로 옮긴 후 줄곧 제주에서 사목 생활을 했다.

한림성당과 금악성당 주임신부를 지낸 그는 65년이라는 세월 동안 제주의 지역 개발, 특히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과 교육, 복지를 위해 헌신해 왔다.

돼지 한 마리로 시작한 그는 성이시돌 목장과 한때 전국 최고의 명품으로 각광을 받았던 한림 수직을 설립한 것을 비롯해 한림 신협, 한림 성이시돌 병원, 성이시돌 양로원과 요양원, 유치원과 어린이집, 성이시돌 젊음의 집(청소년 수련원), 성이시돌 복지의원(호스피스) 등 다양한 사회 공헌사업에 이바지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4년 한국과 아일랜드 양국 정부로부터 각각 국민훈장 모란장과 대통령상(봉사 부문)을 받기도 했다.

4.3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제주도민들이 가장 궁핍한 시절 제주에서 시작된 그의 사제로서의 삶 자체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기적을 직접 드러내 보여준 삶이었다.

강우일 주교가 이날 강론 중에 고인이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소개한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어요. 모두 하느님이 해주셨어요”라는 고인의 말이 큰 울림으로 와닿는 장례미사였다.

故 맥그린치 신부를 떠나보내는 장례미사가 27일 오전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엄수됐다.
故 맥그린치 신부를 떠나보내는 장례미사가 27일 오전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엄수됐다.
故 맥그린치 신부를 떠나보내는 장례미사가 27일 오전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엄수됐다.
故 맥그린치 신부를 떠나보내는 장례미사가 27일 오전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엄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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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 2018-04-28 07:58:48
P.J Mcglinchey 신부님께서 세상 떠나셨지만, 신부님의 개척자 정신, 말씀을 행동화 하시는 모습,
지역사회 발전에 무한대로 봉사하시는 성심, 이 모든 것은 저희들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계시는
성자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