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소외되어 홀로 아픈 이에게 조명을 비추는 한마디 ‘위드유’
소외되어 홀로 아픈 이에게 조명을 비추는 한마디 ‘위드유’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4.06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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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들의 외침 “위드유”] <5> 파파사이트 홍영주 대표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우리 사회를 넘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미투(Me Too)’ 운동을 응원하는 마음이 제주의 동네 책방에 닿았다. 공감의 취지를 넘어 ‘너와 함께 하겠다’는 ‘위드유(With You)’라는 이름으로.

<위드유X제주동네책방> 프로젝트로 뭉친 책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파파사이트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의 초입에 위치한다.

# 조명이 꺼진 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들어서기 전, 얼핏 지나치기 쉬운 길 한가운데 거대한 이젤(easel. 그림 그릴 때 캔버스를 안정시키기 위한 받침대)이 시선을 끈다. 이젤에는 ‘난쏘공 40주년 특별전’이란 글자가 새겨 있다. 무얼 하는 공간일까? 입구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파파사이트 입구, '난쏘공 40주년 특별전'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

파파사이트를 처음 방문하는 이라면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 싶다. 제주동네책방이라 하기엔 다소 넓은 정원 때문인데, ‘당연히’ 들어가도 된다. 그 증거로 대문이 없는 입구에는 정낭 세 개가 모두 내려져 있다.

정낭은 제주 전통 가옥 고유의 특징으로,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주는 나무다. 정낭이 다 내려져 있으면 집에 사람이 있다는 것. 하나를 걸쳐 놓으면 집주인이 금방 돌아온다는 것, 2개가 걸쳐져 있으면 금일 내로는 돌아온다는 것, 세 개가 걸쳐져 있으면 주인이 멀리 나가 며칠 지나야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파사이트 입구에 있는 세 개의 정낭은 모두 내려져 있었다.

모두 내려진 정낭처럼, 파파사이트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처음엔 동네책방이 아니라, 갤러리를 오픈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2013년 파파사이트 오픈 당시,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만 갤러리가 총 네 곳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차별화를 두고자 북갤러리라는 형태의 동네책방을 기획했습니다.”

홍 대표는 저지리 지명의 유래가 지대가 낮기 때문에 붙은 별명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종이 원료 나무인 닥나무 저(楮) 자를 써서 저지(楮旨)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자 “종이와 관련된 것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현재 제주에는 책방이 40개 넘게 있어요. 저만의 독창성이 없는 책방은 매력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책과 연계해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해보니 전시와 종이책의 결합이더군요.”

홍 대표는 자신 특유의 감각으로 책방을 꾸몄다.

제주로 이주하기 전, 그녀는 전시 디자인 기획 일을 10년 넘게 해왔다. 대학로에서의 연극 기획 경험도 있다.

“파파사이트의 책 권수는 많은 편이 아니에요. 점차 잊혀 가고 있는 보물 같은 책을 재발견할 기회. 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걸로 족해요. 비싸고, 희귀한 도서보다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소장 가치 있는 책을 소개하는 동네책방이 되고 싶어요.”

홍 대표는 과거에 조명을 받아 빛났던 경험을 간직한 좋은 책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렇게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조명하고,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북갤러리를 생각했다.

“출판시장이 침체하면서 많은 출판사가 문을 닫았어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흐름이겠죠. 저 역시 육지에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제주동네책방을 운영하며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좀 더 모험하고 싶어요.”

‘검증된 책방 운영방식’에 대한 조언을 접했던 책방 초창기, 그녀 역시 솔깃했던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동네책방이 아닌, 책방사업을 진행했더라면 ‘허둥지둥’이란 단어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을 테니까.

“2014년 파파사이트 개장했을 당시엔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어서 서울과 제주를 왕복해야 했어요. 그래서 책방에 신경을 많이 못 썼죠. 서울 사업체를 다 정리하고 아예 내려온 건 2016년 2월이에요. 북갤러리로서 파파사이트가 자리 잡기 시작한 때죠. 처음엔 힘들었어요. 안정된 삶과 모험이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고민했던 적도 있고요. 하지만 책방이라는 공간이 안정을 취한다면, 그 순간 생기가 없어질 거란 판단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모험하는 쪽으로 해보자고.”

파파사이트 카페공간 옆 건물에는 따로 북갤러리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녀의 책방운영원칙은 ‘가치 있는 삶을 살자’이다. 모험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 도전에 대한 설렘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현재를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역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돼요. 책방 운영이 쉽지 않아 오래 못 버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제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키워드는 ‘가치’에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뒤돌아봤을 때 ‘무모했다’고 판단되더라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전시기획을 죽 진행하고 싶어요. 서울에서의 전투적인 삶에서 벗어난 지금, 아직도 저는 스스로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 노력 중입니다.”

 

# 손잡고 같이, ‘위드유’의 가치를 외치다

홍 대표는 청력이 좋지 않다. 그녀는 보청기에 의지해서 듣고, 말한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서는 ‘남들처럼’이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저에겐 늘 삶의 기준이 ‘남들처럼 사는 것’에 있었으니까 나중에는 잘 안 들려도 들리는 척, 눈치만 늘어나게 되더군요.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이젠 온몸으로 듣는 법을 배웠어요. 상대의 눈빛, 행동, 말할 때의 표정 등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면서 말의 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거죠.”

파파사이트의 태권브이 나무모형. 제주도의 높은 습도가 아이(?)의 몸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 중인 홍 대표다.

손님 중 상당수는 책방지기와의 진솔한 대화를 기대하며 파파사이트를 찾는다. 홍 대표는 손님과의 대화가 즐겁기는 하지만, 때론 두렵기도 하다”며 고백했다.

“제주라는 섬은 마음을 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나 봐요. 보통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대화는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제주에서는 갑자기 ‘훅’ 깊은 대화로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러한 밀도 높은 대화를 기대하며 파파사이트를 찾아오시는 분들께 혹시 제가 실망을 안겨드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돼요. 혹시 잘 듣지 못해 제대로 대화를 잇지 못할까 봐 말이죠.”

그녀는 늘 고민한다. 상처를 말하는 이에게 어떤 위로를 전할 것인지. 타인의 상처를 공감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어떤 식으로 이해시킬 것인지.

최근 미투(METOO)를 외치며 용기 있는 고백을 전하는 사회현상을 보며 홍 대표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홀로 아파할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추행, 성폭행 등으로 겪은 상처를 홀로 안고 살아가는 분들께 ‘왜 진작 말 안 했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일 수 있어요. 상처를 드러내는 방법을 배운 적도, 누군가가 알려준 적도 없었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위드유X제주동네책방> 프로젝트를 통해 파파사이트가 추천하는 페미니즘 도서는 노유다 작가의 ‘코끼리 가면’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더욱 절절히 와닿는 미투라는 외침이다.

파파사이트의 추천 페미니즘 도서는 노유다 작가의 ‘코끼리 가면’이다.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살면서 한 번쯤 뉴스나 기사 속에서 접했을 법한 이야기죠. 그런데도 이 책을 꼭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는 책 속에 등장하는 ‘엄마’라는 캐릭터 때문이었어요. 주인공의 어머니는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테니스 강사를 하면 아이를 키우는 생활력 강한 어머니죠. 그런데 주인공이 20대 중반이 되어 큰 오빠와 작은 오빠의 만행을 고백하자 어머니는 말합니다. ‘오빠들 기죽여서는 안된다. 그런 말 어디서 하지 말아라’. 평범한 가정 속에서도 이렇게 폭력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홍 대표는 세상 사람 모두가 서로 삶의 방식을 응원해주고, 존중해주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파파사이트가 그러한 시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 땅의 소외된 이들에게 조명을 비추는 이야기를 북갤러리에서 전하겠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인 세상인지 알아야 합니다. ‘삶이 힘들고 바쁘다’는 이유에서 야기되는 우리의 무관심이 어쩌면 이 사회의 부조리함과 폭력성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러한 변명도 이해하고, 공감해요. 하지만 용기 내 미투를 외친 이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두고 ‘위드유’라고 말해준다면 그들은 큰 용기를 얻을 거예요. 권력, 성, 자본, 인종 등에서 비롯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대해 모두가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파파사이트 북갤러리 전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40주년 기획전

2018.3.27 - 5.12

월요일 휴무 / 화~토요일 오후1시-7시 / 일요일 오후2시-7시

난쏘공 전시 북콘서트 (5/12 오후6시)

페이스북, 인스타 통해 4/20 공지예정, 선착순 40명, 참가비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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