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4.3은 혁명이다. 정명(正名)을 위해 백비(白碑)를 세우자”
“4.3은 혁명이다. 정명(正名)을 위해 백비(白碑)를 세우자”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4.05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까마귀의 죽음>, <화산도> 김석범 작가 특별 강연
4.3을 폭동이라 부르는 이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경고
4월 4일, 북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화산도>의 저자 김석범 작가의 특별 강연이 열렸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4.3의 아픔을 견뎌내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함성을 지르며 그때의 고통을 토해내고, 누군가는 가슴 깊이 묻고 다시는 꺼내지 않는다.

평생을 걸쳐 4.3의 실상, 당시 제주 사람들의 한으로 응축된 응어리를 문학을 통해 승화시킨 소설 <화산도>의 김석범 작가가 북초등학교를 찾았다. 이날 자리에는 이석문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을 비롯해 김동현 문학평론가, 화산도를 번역한 김석희 작가도 함께해 자리를 빛냈다.

강연 전, 김석범 작가와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연에 앞서 김석범 작가는 4.3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4.3이란 이승만 정부가 자신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제주도를 말살하려 했던 사건입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4.3봉기를 혁명이라 생각해왔습니다. 제주 너머, 태평양 건너 넘어온 외세의 침입에 대해 제주 사람들이 저항했던 것이죠.”

4.3을 ‘봉기’라는 단어로 수식한 그는 제주도민이 긴 시간 동안 침묵을 강요당하며 ‘기억의 말살’을 당했다고 했다.

“기억의 말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권력에 의한 말살입니다. 이는 ‘기억의 타살’입니다. 예를 들면 이승만 정부의 억압이죠. 죽음을 보고, 고통을 겪었는데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던 제주도민들은 막강한 권력에 의해 기억이 살해당한 것입니다.”

이어 그는 ‘기억의 자살’을 이야기했다.

“기억을 스스로 잊는 것이 기억의 자살입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기억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힘이 드니까. 말도 못 하고 듣지 못했던 시절이니까. 이런 역사가 세계에 없습니다.”

김석범 작가는 "4.3 항쟁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4.3평역사공원의 백비(白碑)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엄청난 희생 뒤, 그래도 삶을 견디고 살아온 제주도민들의 자세가 바로 ‘항쟁’이라고 말했다. 또한,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짓밟힌 제주도민이 일어났던 4.3봉기야말로 역사적인 일이며, 그 증거로 백비(白碑)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4.3평화공원에 백비가 있지 않습니까. 이 백비를 세워야 합니다. 십수 년 전 만들어진 백비가 지금은 그대로 실내에 누워있는데, 비석이란 것은 실내에 안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외에서 햇볕을 쬐고, 비바람 맞고 하면서 꿋꿋하게 서 있어야 하는 거예요. 4.3의 정신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비석을 세워야 합니다.”

<화산도>의 저자 김석범 작가의 특별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학생, 주민 등 많은 사람이 북초등학교를 찾았다.

4.3의 완전 해결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4.3 해결이라는 말이 요즘 많이 나오는 것 같다. 해결의 깊은 뜻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우선시해야 될 것은 진실에 기초한 진심 어린 사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정명(正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신적인 고통,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도 아픈 사람들,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 모두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4.3의 정명(正名)이 곧 해결입니다. 4.3이 왜 일어났고, 어떤 경과를 밟아 지금에 이르렀는지, 어디서 누가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모두 밝혀내야 합니다. 이것이 4.3의 완전 해방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이어서 그는 4.3을 폭동이라 부르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했다.

“4.3이 무슨 폭동입니까. 평화롭게 살고 있던 제주도 사람들을 짓밟고 괴롭힌 사람들의 만행이 폭동이죠. 이 폭동이 학살로 확대된 것입니다. 원인이 제주도 내부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들, 그들이 4.3의 원인입니다.”

잠시 흥분한 듯 이야기하던 그는 “자꾸 혼자 말해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분위기를 전환했다.

김석범 작가의 열띤 강연에 이어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계기 교육의 중요성을 말했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계기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30년 전, 4.3 채록을 다닐 때 어르신분들께 당시 자세한 사실관계를 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이 중요한 거였죠. 그 분노, 억울함, 끊임없이 되새김질했던 그 마음. 당시 느꼈던 감정을 우리가 함께 느끼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계기 교육’이라고 하는데, 계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공감하고 있는지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4.3 이후 상처받은 이들, 현실이 힘겨운 이들에게 김석범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극복 방법을 이야기했다.

김석범 작가는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설명했다.

“저 역시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철없이 20대 때 몇 번이고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했죠.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사람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이런 고민을 했어요. 그러나 나는 현실을 살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람을 만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긍정이 필요한데, 그걸 하려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소설 <까마귀의 죽음>에 이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김석범 작가의 소설 <까마귀의 죽음>에서 주인공은 허무주의에 빠진다. 한국과 제주도 안에서의 여러 상황 속에서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잘못된 현실을 긍정하면 안 됩니다. 그릇된 것이 있다면 부정하세요. 부정하는 것이 내일을 사는 것입니다. 나는 현실과 싸우는 상상력으로 문학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상상력입니다. 여러분도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대정고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4.3 배지를 건네받는 김석범 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