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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4∙3을 공감하자”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4∙3을 공감하자”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4.02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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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단편영화 ‘4월의 동백’의 제작진, 대정고 학생을 만나다
대정고 자율동아리 ‘4∙3을 기억해’, 지난 1월부터 3개월 제작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4∙3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는 일순간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제주 4∙3을 알리고자 수십 년 동안 노력해온 유족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집념 덕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4∙3을 알리고자 하는 목소리는 지금도 여전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저마다 노력하고 있다.

4∙3으로 희생당한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을 형상화한 배지로 화제가 되었던 대정고등학교. 미디어제주에서도 <4∙3배지를 만든 아이들>이란 주제로 소개한 바 있다. 당시 2학년이던 학생들은 어느덧 3학년이 됐다.

선배의 마음을 이어받아 올해 2학년이 된 자율동아리 대정고 아이들도 4∙3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이번엔 배지가 아니라 영화다.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한 대정고등학교 전경.

이종찬: 선생님께 밤새 쓴 시나리오를 들고 갔는데, 전부 다시 써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단편 영화 “4월의 동백”을 만든 대정고 자율동아리의 부장 이종찬 학생은 힘들었던 당시가 떠오르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내 웃으며 덧붙인다.

이종찬: 4∙3으로 인해 발생한 역사적 사실들은 굉장히 광범위하잖아요. 그런데 저희 시나리오는 무장대와 군인 간 이야기에만 집중되어 있었거든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4∙3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 동네 사람들, 가족의 이야기를 다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선생님의 조언에 시나리오를 대대적으로 수정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지난달 30일 4∙3희생자유족회원을 초대해 진행했던 시사회에서 양윤경 4∙3희생자유족회장은 “4∙3에 대한 이야기는 이 영화 안에 다 담겨있다”고 극찬했다.

이석민: 기분이요? 당연히 날아갈 것 같았죠. 사실 영화를 제작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거든요. 저희가 만든 영화가 혹시라도 4∙3희생자유족회원분들께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열심히 공부해서 쓴 시나리오지만 사실과 다른 점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요.

영화 '4월의 동백'을 제작한 대정고 자율동아리 '4∙3을 기억해' 학생들. 

영화의 주연이자 나래이션을 맡은 이석민 학생은 시사회에 4∙3희생자유족회장이 온다는 소식에 엄청나게 긴장했단다.

이석민: 멀리까지 저희 영화를 보러 와주신 분들께서 실망하시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어요. 시나리오가 한 번 뒤집어져서 다행이에요. 고생은 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정말 뿌듯했어요.

영화 속 군인 역할을 맡은 이준호 학생은 “영화 제작에 대해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할 것들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며 말을 이었다.

이준호: 영화 속 배역 외에, 조연출을 맡았거든요.  따로 할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신경쓸 게 정말 많았어요. 카메라 렌즈 앞에서 어떤 소품이 불필요하고 필요한지, 카메라가 돌아가는 시작점이나 끝내는 컷 지점에 대한 주문도 제가 해야 되고요. 다음 찍을 장면을 미리 준비하는 것, 촬영이 지연되어 정해진 분량을 찍지 못하는 것 모두 제 탓인 것 같아 부담이 많이 됐어요. 그래도 엔딩 크레딧에 올라오는 제 이름 세 글자를 보니 그간 고생했던 것들은 싹 잊히더군요. 정말 값진 순간이었어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 때문에 힘들었다는 이준호 학생의 이야기에 함께 조연출을 맡았던 오현성 학생이 답했다.

오현성: 준호가 할 일을 알아서 다 하니까 처음에는 힘든 줄 몰랐어요. 뒤에서 놀았던 적도 있었는데, 준호 말을 들으니 미안해지네요. 촬영 마지막 날, 연출을 맡은 친구들이 연기해야 해서 제가 대신 연출을 맡았어요. 그런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배우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연기가 있는데, 모두 프로 배우가 아니니까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 점이 어려웠어요. 욕심은 나는데,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점이 있으니까요.

대정고등학교 본관 1층에 위치한 '대정고 역사관'에서 영화 '4월의 동백'이 상영되고 있었다.

전문 연출가나 배우에게도 영화 제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20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강수범: 4∙3에 대한 행사를 기획한다고 해서 동아리에 들어왔어요. 어떤 방법으로 4∙3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가 ‘영상’이에요. 처음엔 UCC 제작이 목적이었는데, 우옥희 교장선생님께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하셔서 영화 제작으로 판을 키웠습니다. 학교 측에서 지원해준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4∙3관련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동아리의 차장이자 영화의 총감독을 맡은 강수범 학생은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학교의 지원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했다.

대정고 자율동아리 '4∙3을 기억해' 학생들. 왼쪽부터 이준호, 이석민, 강수범, 오현성, 이종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인제야 제대로 조명받기 시작한 4∙3 정식 명칭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요즘. 영화 제작을 위해 지난 1월부터 3개월 동안 4∙3을 공부해온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종찬: 광주에서 일어난 5.18은 ‘항쟁’이라 불립니다. 실제로 그들은 독재에 항거하는 투쟁을 했으니까요. 제주는 조금 달라요. 무고한 사람들이 아무런 죄 없이 희생당했어요. 그것도 같은 민족의 군인에게 말이죠. 특정한 단어로 포장하기보다는 4∙3은 4∙3으로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와는 반대로 2003년에 확정된 4∙3진상보고서는 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3년 이후로 더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고 새롭게 발견된 역사적 사실이 많은데, 상당수가 반영되지 않았으니까요.

이석민: 군인에 의한 진압이나 폭동에 초점을 맞춰선 안 돼요. 일상을 살던 제주도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임을 당했어요. 4∙3이 왜 일어났고, 누구의 지시로 이러한 비극이 발생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나왔는지, 이후 유족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런 문제에 집중해야죠. 그런 의미에서 그냥 '4∙3'이라고만 불러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석민 학생은 4∙3 유족이다. 그의 고조부는 영문도 모른 채 군인에게 끌려가 서달오름에서 희생을 당했다. 미국 군정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판단했던 그의 친척 중 한 분은 미국에 건너가 소송을 걸어 1심 승소까지 했단다. 하지만 2심 진행 중, 소송을 진행했던 친척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4∙3 유족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정치와 이념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에게 어쩌면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석민: 2014년 제주도에서 개최된 전국체육대회에서 평화∙인권 성화봉송을 했었는데요. 이것을 반대하는 유족분들도 계셨어요. ‘아직 우리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고, 피해보상에 대한 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니 4∙3을 평화와 인권이라는 말로 마무리 지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분들의 주장이었어요. 저도 동의해요. 4∙3의 개념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 속에 올바르게 자리 잡으려면, 인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야 하잖아요.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벌써부터 ‘제주는 이제 평화의 섬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상처받은 이들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 해요. 이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날이 비로소 제주 4∙3이 평화로 자리잡는 날일 거예요.

4∙3으로 희생당한 이들, 그리고 그 유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묻자 5명의 학생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4∙3을 모르는 이에게는 4∙3을 알리고, 당신에게는 위로를 전하겠습니다.”

벚꽃잎이 흩날리던 날, 대정고 자율동아리 '4∙3을 기억해'의 10명이 모두 뭉쳤다.

이준호 학생은 “지금 4∙3을 알아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것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4∙3의 전국화가 기적처럼 실체화되고 있는 오늘, 더 늦기 전에 4∙3을 전하자. 4∙3을 공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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