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무장대는 왜 경찰관서를 습격했을까?”
“4월 3일, 무장대는 왜 경찰관서를 습격했을까?”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3.26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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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과 함께하는 4∙3역사순례> 4∙3 현장 방문한다
선착순 접수, 4월 8일 9시 제주시 신산공원에서 출발
붉은 동백꽃은 차가운 땅으로 소리없이 스러져간 4∙3 영혼을 상징한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나라는 해방됐다. 이제 곧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희망으로 제주는 물론, 온 나라가 들썩이던 날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시절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제주에 남아 있던 6만 6000여 명의 일본군은 여전히 제주도민을 괴롭게 했다. 일제 강점기때 공출을 독려했던 총독부 직원은 그대로 면직원이 됐다. 20만 남짓이던 제주 인구는 26만으로 불어나 일자리 부족 현상까지 덮쳤다. 오늘 하루 먹고사는 일에 급급했던, 착취와 수탈로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제주 사람들의 삶은 어렵기만 한데, 일제강점기 관리들은 그대로 관직에 앉아 부정부패를 일삼는 현실은 1년이 넘게 계속되었다. 그런 와중에 발발한 것이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다. 이는 1년 뒤, 4∙3의 도화선이 됐다.

1948년 4월 3일 새벽, 무장자위대는 제주도내 24개 경찰관서 중 12개의 지서를 습격한다. 서북청년회로 구성된 경찰의 횡포 등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제주인의 정서적 반감이 비로소 분출된 것이다. 이날 12개 지서 중 유일하게 전소된 지서가 화북지서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오는 4월 8일, <도민과 함께하는 4∙3역사순례>를 통해 화북지서를 포함한 4∙3발발 현장을 방문한다. 오전 9시 제주시 신산공원에서 출발해 화북, 삼양, 조천, 세화 등 지서소재 마을의 4∙3 유적지를 순례하며 무장대가 지서를 공격한 이유, 4∙3봉기의 실상, 이후 주민들이 입은 희생 등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4.3도민연대는 “이미 잘 알려진 4∙3 유적지들에 비해, 4∙3이 시작된 경찰관서인 지서는 비교적 조명받지 못했다. 이번 순례에서 현존하는 지서들이 4∙3과 관련된 의미 있는 역사현장으로 인식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참가신청: 전화 (064-755-4343) 또는 E-mail(jeju4343@hanmail.net)

선착순 모집 / 참가비 1만원 (어린이, 학생 무료) / 자료집 및 점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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