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촌스러운 학문이 되기를”
“페미니즘이 촌스러운 학문이 되기를”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3.19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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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들의 외침 “위드유”] <3> 돈키호테북스 김보경 대표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우리 사회를 넘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미투(Me Too)’ 운동을 응원하는 마음이 제주의 동네 책방에 닿았다. 공감의 취지를 넘어 ‘너와 함께 하겠다’는 ‘위드유(With You)’라는 이름으로.
<위드유X제주동네책방> 프로젝트로 뭉친 책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서호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돈키호테북스'. 아이들을 위한 간식메뉴도 판매한다.

# 버림의 미학을 아는 책방, 돈키호테북스

서귀포시 호근동, 서호초등학교 인근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작은 책방. 얼핏 보면 평범한 카페처럼 보이지만, 일단 문 앞에 서는 순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일반적인 카페라고 하기엔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

'장르문학 소식지'를 증정하는 독특한 이벤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랜 친구처럼 편안한 미소로 맞이해주는 ‘돈키호테북스’ 김보경 대표가 있다.

“작년 8월 초에 오픈했어요. 원래는 샌드위치와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로 운영했는데, 현재는 샵앤샵 개념으로 동네책방을 겸하고 있답니다.”

돈키호테북스의 내부.

꿈과 이상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돈키호테를 동경했기 때문일까 싶어 책방 이름의 근원을 물었다.

“돈키호테북스에서는 ‘하몽’을 판매하고 있어요. 하몽은 스페인어로 ‘햄’이란 뜻인데, 꽤 고급 요리에 속해요. 돼지의 뒷다리를 소금에 절이고 천장에 매달아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건조해야 하거든요. 스페인 요리 하몽을 판매하기로 했으니 이왕이면 스페인과 관련된 것으로 가게명을 짓자고 생각했어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뭘까?’ 생각해보니 소설 ‘돈키호테’가 떠오르더군요.”

판매 중인 최고급 스페인산 하몽.

그렇게 덜컥 당첨된 이름이 ‘돈키호테북스’다. 괴짜지만 우스꽝스러운 가면 뒤에 현실을 비판하는 날카로움이 있는 인물 ‘돈키호테’는 김 대표의 책방운영 가치관과 똑 닮았다.

“제주로 이주하기 전, 육지에서 약 2년 동안 ‘인생전환학교’라는 독서 모임을 했어요. 모임의 큰 주제는 ‘탈(脫) 경쟁, 탈 소비’였는데, 이를 몸소 실천하려면 서울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제주로 왔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원하지 않아도 경쟁 사회 속 일원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 분명 있기에, 김 대표는 서울에서의 삶이 꽤 고통스러웠다.

“나름 괜찮은 회사에, 괜찮은 직급까지 올라갔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열심히 일은 했지만, 소모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엔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독서 모임의 이름처럼 제 인생을 전환하고 싶었나 봐요.”

돈키호테북스의 서가에는 다양한 장르의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돈키호테북스에서 판매 중인 페미니즘 관련 서적.

삶의 터전과 방식을 한순간에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보다 그간 쌓아온 경력,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일종의 압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 압박감을 어떻게 떨쳐냈을까?

“아무리 개인이 노력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직장을 가질 순 없어요. 자원은 한정적이니까요.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공장 자동화 시스템의 발달 등에 따라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늘어날 거예요. 타인과 경쟁해서 얻은 자리, 자원은 온전한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어요.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위태로운 자리죠. 그래서 저는 경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김 대표는 ‘남을 밟고 올라가야 내가 산다’는 무한경쟁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며 경쟁의 소모성과 덧없음을 알았다. 경쟁의 욕구를 버리자 버림의 미학,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가 더욱 와 닿기 시작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지구를 위해 실천하려 합니다. 조금 덜 쓰고, 덜 소비하고, 덜 만들고. 경쟁보다는 포용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요. 그런 ‘착한 책방’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 “페미니즘이 촌스러운 학문이 되기를”

돈키호테북스 김보경 대표.

<위드유X제주동네책방> 프로젝트를 통한 돈키호테북스의 페미니즘 추천도서는 ‘이갈리아의 딸들’이다. ‘남자가 사회적 소수자라면 어떤 세상이 될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책은 불합리한 성차별 및 성억압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김 대표는 20년 만에 개정된 이 책이 아직도 ‘인기도서’에 속해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1977년에 처음 발간된 책이에요. 20년 전 읽었던 책인데, 올해 인기도서로 급상승하면서 개정판까지 나왔어요. 페미니즘 도서가 잘 팔린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테니, 슬픈 현실이죠.”

김 대표는 중학교 시절 경험했던 일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남녀 합반이었는데, 체육 시간 옷을 갈아입는 문제를 놓고 토론을 한 적이 있어요.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이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것인가. 탈의실은 좁고 불편하니 남자와 여자아이들이 편을 갈라 열띤 논쟁을 벌였죠. 싸움의 양상이 점점 감정적으로 치달으니 한 남자아이가 그러더군요. ‘우리 엄마나 누나는 나에게 다 양보해주는데, 왜 너희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니?’ 하고요. 정말 화들짝 놀랐어요.”

여자를 ‘희생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듯한 남자아이의 발언은 어린 여중생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러 가지 성 문제에 대해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여름, 더운 날씨 탓에 남자아이들이 윗옷을 벗고 다녔는데 학급회의 시간에 여자아이들 측에서 얘기가 나왔어요. 맨몸으로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으니 셔츠를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고요. 남자아이들은 이를 거절하며, ‘너희도 벗고 싶으면 벗고 다녀!’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래, 나도 벗고 다닐 거야!’”

호기롭게 선언했지만 막상 옷을 벗으려 하니 몸이 따르지 않았다는 김 대표. 그녀는 자신이 옷을 벗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이유를 알 수 없어 복잡한 감정이 들었단다.

“이렇게 미묘하지만 풀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이 세상에 참 많아요.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추행, 성폭행 등의 문제도 바르지 못한 성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기에 한순간에 바꿀 수 없겠지만, 그래도 오늘날 바로잡아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죠. 여성과 남성이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올바른 성 인식이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돈키호테북스의 페미니즘 추천도서 '이갈리아의 딸들'

성차별, 성 관련 문제가 사라진다면, 아마 페미니즘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 없는 촌스러운 학문이 될 터. 이것이 바로 김 대표가 꿈꾸는 세상이다.

“페미니즘이 구시대적 산물이 되는 그 날까지, 이 땅의 모든 페미니스트를 응원하겠습니다.”

 

<위드유X제주동네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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