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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은 상처 … 70년 지난 4.3이 현재진행형인 이유
아물지 않은 상처 … 70년 지난 4.3이 현재진행형인 이유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8.03.18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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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생존희생자‧후유장애인 정책토론회 18일 제주4.3평화기념관
주요 내빈‧토론자들 “국가 차원의 의료비 지원 이뤄져야” 한목소리
제주4.3 생존희생자와 후유장애인 정책토론회 방청객 토론 순서에서 한 노인이 발언권을 얻어 후유장애인들이 제주 뿐만 아니라 전국 어느 병원에서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의를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제주4.3 생존희생자와 후유장애인 정책토론회 방청객 토론 순서에서 한 노인이 발언권을 얻어 후유장애인들이 제주 뿐만 아니라 전국 어느 병원에서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의를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저는 4.3 생존희생자 신청을 했는데 불인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제 그냥 땅 속에 묻혀야 되는 겁니까?”

18일 제주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생존희생자‧후유장애인 정책토론회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이 끝나자마자 80세를 훌쩍 넘긴 것으로 보이는 한 노인이 발언권을 얻어 힘겹게 꺼낸 얘기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생존희생자 신청에 대한 불인정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하는 문제를 비롯해 국가 차원에서 치료비가 전액 지원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트라우마센터 설립보다 생존 희생자와 유족들의 접근성을 감안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등의 현안에 대한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생존희생자 신고에 대한 불인정 문제는 이날 토론회의 1부 인사말 순서에서부터 제기됐다.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4.3의 아픔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사례가 여기 오신 후유장애인 분들”이라면서 이 분들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덜어드릴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생존희생자로 신고한 사람은 234명인데 이 중 70명이 아직 생존희생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분들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정부와 제주도 차원의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제주4.3 후유장애자 결정 상황. /제주4.3희생자 후유장애인 정책토론회 자료
제주4.3 후유장애자 결정 상황. /제주4.3희생자 후유장애인 정책토론회 자료

실제로 후유장애자 결정 현황을 보면 4.3위원회 심의 결정을 통해 후유장애자로 인정된 사람은 234명 중 164명으로 70명은 아직 공식적으로 4.3 후유장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불인정 70명 중에는 총상을 입은 사람도 7명이나 된다. 고문 후유증을 호소하는 49명도 아직 후유장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날 인사말을 대신해 ‘문재인 대통령에 드리는 건의문’을 읽은 고태명 제주4.3생존희생자후유장애인협회 회장도 후유장애 인정을 받지 못하고 4.3 당시 형무소에 끌려갔었다는 기록이 확인돼 4.3 수형인으로 일부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다.

고태명 제주4.3 생존희생자 후유장애인 협회 회장이 인사말을 대신해 '문재인 대통령에 드리는 건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고태명 제주4.3 생존희생자 후유장애인 협회 회장이 인사말을 대신해 '문재인 대통령에 드리는 건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고 회장은 협회 차원의 건의문을 통해 “생존 희생자들의 평균 나이가 87세의 고령자들로 80%가 심각한 통증을 살아가고 있고 낙상 위험, 치매 치료, 요양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위험군이 60%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대다수가 4.3으로 인한 신체 손상으로 일상생활이 어렵고 4.3의 기억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특히 그는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들은 고통 속에 마지막 생존을 이어가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치유 프로그램은 전무하다”면서 “4.3특별법 제9조에 ‘정부는 희생자들에게 치료와 간호에 드는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정부는 이를 제주도에 떠넘겨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4.3 실무위원을 맡고 있는 김동만 제주한라대 교수의 진행으로 이어진 지정토론 순서에서도 후유장애 신고 불인정에 대한 문제와 국가 차원의 의료비 전액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집중 제기됐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연로하신 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의료비인데 그걸 왜 재단에서 하고 있느냐”면서 국가 차원의 의료비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5.18의 경우 생존희생자들과 유족들이 모두 100% 국가에서 의료비 지원을 받고 있다”면서 “국가에서 시행하는 1종 의료보험 혜택이 주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국 어느 곳에서도 의료카드만 있으면 무료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세금을 안 내면 다 지는 것까지 모두 소급해서 내야 하는 것처럼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분들에게는 지금까지 모든 아픔을 소급해서 적용시켜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갓난아이부터 10대에 부상을 당한 후유장애인들은 대부분 아무런 죄도 없이 다친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이었다”면서 “지금까지 소외된 상처를 안고 살게 한 이들에게 국가가 마지막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현혜경 제주학센터 연구원은 4.3에 대한 치유는 과거를 치유해서 빨리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 미래에도 치유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상처는 그 상처가 지속되다 보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그 상처가 다음 세대까지 전승되기도 하기 때문에 미래 세대에 대한 치유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아울러 그는 독일의 반나치 법안의 사례를 들어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활동을 금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4.3 생존희생자 삶의 질 실태와 개선과제’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가 18일 오전 제주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 미디어제주
‘제주4.3 생존희생자 삶의 질 실태와 개선과제’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가 18일 오전 제주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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