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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名)의 모두를 응원합니다”
“무명(無名)의 모두를 응원합니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3.15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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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들의 외침 “위드유”] <2> 무명서점 정원경 대표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우리 사회를 넘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미투(Me Too)’ 운동을 응원하는 마음이 제주의 동네 책방에 닿았다. 공감의 취지를 넘어 ‘너와 함께 하겠다’는 ‘위드유(With You)’라는 이름으로.

<위드유X제주동네책방> 프로젝트로 뭉친 책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 무명(無名)에서 비롯된 자유, 무명서점

이 서점의 이름은 ‘무명(無名)’이다.

'이름 없음'이 바로 이름이라는것. 왠지 동네책방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조금 성의 없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을 ‘서점원’이라고 소개한 무명서점의 정원경 대표는 ‘무명서점’의 탄생 비화를 털어놓았다.

자연스레 건물 안에 녹아든 무명서점 간판

“책방 자리를 이곳으로 결정한 후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건물 밖에서 책방을 바라보며 고민했어요. 그런 중 아래층의 ‘유명제과’ 빵집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고딕체로 쓰인 네 글자가 너무나 강렬해서 그 어떤 이름도 어우러지기 힘들어 보였어요. 그래서 별다른 고민 없이 ‘무명’이라 지었습니다. 주변에 녹아들지 못하는 이름이라면, 아무리 좋은 이름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건물의 2층에 위치한 무명서점 아래에는 한경면 고산리의 터줏대감 같은 17년된 오랜 빵집 ‘유명제과’가 있다. 빵집 자체가 마을의 역사이자 랜드마크인 셈이다.

“마을에 온전히 깃들고 싶은 소망이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것 같아요. ‘유명’에서 자음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죠. 유명한 빵집과 무명의 서점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는 것. 도민과 이주민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을 꿈꾸는 저에겐 운명 같은 이름입니다.”

무명서점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옛 가구들이 눈에 띈다. 정 대표의 우아한 취향인가 싶어 물으니 놀랍게도 모두 기증받은 폐가구란다.

“학교 도서관에서 20년 남짓 쓰이다 어느 창고에서 잊혀가던 책장, ‘폐기 예정’ 딱지를 달고 나와 있던 푸른색 소파 등 모두 사연이 있는 가구예요. 서점에 있는 모든 가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증에 대한 감사 표시로 제작한 엽서들

‘서점원의 줍줍 대모험’이란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진행한 기증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정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이야기가 있는 서점을 만들기 위한 정 대표의 노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무명서점은 ‘무규칙 협동 큐레이션’을 통해 운영돼요. 말 그대로 규칙이 없는 협동 큐레이션이에요. 특정 분야, 규칙에 제한을 두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판매할 책을 추천받고 있어요.”

‘어떤 책을 판매할 것인가’는 모든 동네책방 주인들의 영원한 과제다. 정 대표는 이를 ‘추천’을 통해 결정한다. 쏟아져나오는 베스트셀러와 신간을 보며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인기’라는 유명의 타이틀만 보고 판매할 책을 선정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린 책을 판매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책방의 서가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고민할 당시,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책을 읽고 있었어요. ‘철학자는 시 애호가이자 뜨거운 연인이어야 하고, 열렬한 투사이자 누구보다 뛰어난 과학자여야 한다’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서점의 슬로건을 만들고, 이에 맞춰 서가를 구성했습니다.”

시, 사랑, 정치, 자연의 주제로 구분한 서가

무명서점의 슬로건은 ‘시, 사랑, 정치, 자연’이다. 알랭 바디우가 말한 ‘과학’은 ‘자연’으로 보다 폭넓게 정의했다.

“시, 사랑, 정치, 그리고 자연. 이 네 가지 주제라면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포괄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합니다. ‘무명’이라는 이름처럼 어떤 것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운 서점을 꾸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름 없음’에 익숙지 않다.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을 넘어 실체가 없는 감정도 이름을 가졌다. 정 대표는 “이름이 없는 상태,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면 자유롭기 그지없다”고 말하며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어쩌면 존재를 틀 속에 가두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고, 유동적이기에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존재다”라고 덧붙였다.

 

# 진실을 마주할 용기, 앎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위드유X제주동네책방> 프로젝트를 통해 무명서점이 추천하는 페미니즘 도서는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 정희진 작가는 성정치 여성학자예요. 성정치란,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지배계급에 유리하게 조작된 성억압 문제를 포괄하는 학문인데, 우리나라에 그 개념이 생소할 당시 성정치를 이야기한 대표적인 학자죠.”

‘평화학 연구자’라고도 불리는 정희진 작가는 여성주의를 단순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여성주의자가 지향하는 세계, 여성주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빈틈없이 설명한다.

무명서점 추천도서 '페미니즘의 도전'

“’페미니즘의 도전’은 2005년도에 발간되었는데, 당시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규칙 협동 큐레이션’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13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작가의 시선은 다시 봐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 대표는 <위드유X제주동네책방>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도 별다른 이벤트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단다. 평소 페미니즘, 성 관련 문제를 다룬 책을 꾸준히 입고해왔기 때문이다.

“책방 연합의 흐름에 발맞춰 페미니즘 추천도서 선정을 하긴 했지만, 특별한 이벤트는 없어요. 언젠가 문득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때도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진행하고 싶습니다.”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돌려놓은 책은 언젠가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정 대표는 ‘성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며 다룰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미투’에서 ‘위드유’로 발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께서 겪으신 고통 역시 권력의 그릇된 사용으로 만들어진 비극이자 인권유린의 결과입니다. 성 문제는 생각보다 많은 현상과 맞물려 있어요.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앎에는 보고도 모른 척 할 수 없는 책임이 따릅니다. 용기 내 ‘미투’를 고백한 이름 모를 무명의 그대들을 응원하며, 무명서점도 함께 ‘위드유’를 외치겠습니다.”

 

무명서점 낭독회 소식

<임솔아 시인 낭독회> 3월 17일 오후 6시

임솔아 시인이 직접 자신의 책,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낭독한다.

참여신청: 인스타그램(untitledbookshop) 혹은 전화번호(010-6390-3136 / 정원경 대표)

참가비: 2만원 (임솔아 시인 시집 포함)

 

주1회 책 낭독회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무규칙 협동 큐레이션'을 통해 추천받은 작가 중, 지역작가 도서를 우선 선정하여 낭독한다.

책을 소리내어 읽는 시간을 통해 색다는 독서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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