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0:27 (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구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구요?
  • 김명숙
  • 승인 2018.02.15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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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처방전] <4> 올림픽 남북 단일팀을 바라보는 시선들

스위스와 스웨덴 선수들을 상대한 한국의 골리 신수정은 유효슈팅 74개 중 58개를 막았다. 약 79%의 방어율이다. 대단한 기록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는 고개를 떨궜다. 무언가를 지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10대 0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세계적인 팀과의 수준차는 컸다. 느닷없는 결정에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겪었을 혼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잘 치른 선수들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든다. 기존의 국가대표 선수 23명에 북한 선수 12명이 합류했다. 게임엔트리는 22명. 매 경기 3명 이상의 북한 선수를 기용하게 되면 한국 선수 4명은 빙판을 밟지 못한 채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정부는 올림픽 개막 3주를 앞두고 단일팀을 급조한데다, 선수들과 사전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자 포털사이트는 들끓기 시작했다.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될 것'이란 긍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한국선수는 정치 들러리. 북한선수는 무임승차', '북한선수 3명을 무조건 기용해야한다는 게 민주주의인가' 등의 비난 댓글이 더 우세했다.

특히 2030세대들의 거부반응이 즉각적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정치가 해결 못하는 일을 왜 스포츠에 떠넘기나. ‘장남 공부시켜야 하니 너는 농사지어라’ ‘큰형님 대신 네가 3년 간 살다 나와라’랑 다를 게 뭐야” L시인의 혼잣말이 귀에 콕 박힌다. 한마디로 촌스러운 발상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성장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통일은 민족적 과제이거나 염원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할 지극히 전략적인 문제일 뿐이다. 소위 386세대에게 통일이 하나의 강령이었다. 대학의 학과의 설립 목적에 ‘민족 통일을 목적으로 함’과 같은 문구가 들어 있기도 했던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온도차가 다를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며 10대 시절을 보낸 세대들은 상황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고가는 남북 정황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어떠한 속임수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뉴스로만 남북 대치 상황을 접한 외국인은 한국을 상상할 때 공중에 폭탄이 날아다니거나 길거리에 총을 든 군인이 불시검문을 할 것 같은데 막상 한국에 도착해 보면 너무나 평온한 일상에 전개되고 있는 점을 놀라워한다. 내부인들도 이런 인지 부조화적인 상황이 몇십 년 간 지속되다 보니 무감각이 보편 감성으로 굳어진 듯하다.

불합리한 사회구조탓에 결혼, 취업, 출산, 내집 장만 등을 포기한 2030세대들은 또 민족을 내세워 개인이 희생을 강요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발적인 희생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고 존중하지만, 국가가 그것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반발한다. 통일이든 그 어떤 과제이든 평범한 개인에게 희생이 강요된다면, 남북 단일팀이 아니라 더 큰 무엇이라도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예선 3차전도 기적은 없었다. 일본을 상대한 우리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일본을 상대해 4-1로 패배했다. 이를 두고 실력없는 애들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남북 단일팀을 만들어서 세계적인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둥, 문재인 정부 역시 종북 좌빨이라는 둥 험한 말이 오가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요즘 젊은 애들은 지들의 잘못을 다 정부 탓으로 돌려~” 기성세대의 호통성 질책도 눈에 띈다. 우리에게 분단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라기보다 감각의 문제였다. 보편적인 상식에 기댄 문제조차도 북한이라고 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혼미해진다. “이건 잘못 됐어” 이렇게 외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북한이라는 영역으로 들어가면 블랙홀이 된다는 사실. 논쟁으로 향하지 못하고 감각의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우리의 통일, 통일의 길은 참 멀다.

 

김명숙 칼럼

김명숙 칼럼니스트

충북 단양 출신
한양대 국문과 졸업
성미산공동체 '저해모(저녁해먹는모임)' 회원
성미산공동체 성미산택껸도장 이사
나무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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