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1:13 (수)
“책책책을 읽읍시다”
“책책책을 읽읍시다”
  • 김명숙
  • 승인 2018.01.03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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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처방전] <1> 책 처방해 드립니다

책이란 무엇인가? 책에 대한 정의는 많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은 “책은 인간의 정신에 개입하는 물질이다.”라는 정의이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매체가 생겨나면서 책이 가지는 물성에 대한 발견이 새롭다. 얇고 가벼워서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라든가 흔히 벽돌책이라 불리는 두터운 책이 가지는 볼륨감이라든가 책이 가지는 물질성으로서 다양한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요즘처럼 시각적인 즐거움을 지향하는 이유는 경쟁 매체의 상승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타보면 안다. 책을 펼치는 사람은 확실히 줄었고 다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바쁘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독자들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서 표지 종이를 새롭게 하거나 후가공 인쇄에 공을 들여서 고급스런 멋을 내거나 손으로 책을 만졌을 때 접촉감을 높이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백 종 이상 쏟아지는 신간들 중에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책들의 분투가 눈물겹다.

이런 노고와 무관하게 지난해 출판계에는 큰 악재가 터졌다. 매출 2위 최대 도매상인 송인의 부도소식이다. 새해 벽두에 터진 사건으로 출판계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출판사 도산은 물론 출판물을 인쇄하는 인쇄소와 그밖의 거래처의 연쇄부도까지 이어지는 흉흉한 시절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송인에 거래처를 몰아준 ‘일원화’ 업체는 다른 업체에 비해 피해 정도가 심해 그야말로 ‘폭망’ 수준이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나무발전소 출판사도 일원화 거래업체라 어느 해 보다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보냈다기보다 버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더욱이 가슴 쓰린 일은 어음거래는 한국 출판계 뿐이라는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 어음 관행을 전파한 일본은 전쟁이 끝난 후에 현금 유통으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런 관행이 있다고 하니. 부끄럽게도 출판사를 경영하면서도 독자들은 현금을 주고 책을 사는데 왜 서점은 출판사에 어음을 결제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지 못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이런 불합리한 관행에 의문을 갖지도 않고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출판사를 꾸려온 것을 반성한다.

다른 나라에는 없지만 한국 출판계에만 있는 적폐가 또 있다. ‘사재기’와 ‘매대영업’이다. 사재기란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다시 사들여 베스트셀러 목록을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매대 영업이란 대형서점의 진열면을 출판사에서 돈을 주고 사서 책을 진열하는 것을 말하는데, 작은 서점이나 독립 서점에는 없는 광고방식이다. 매대 영업이 왜 출판계의 적폐인가 하면, 적당히 만든 책도 매대 영업을 통해 광고가 되면 많이 팔린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출판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생산자와 수요자의 의욕을 상실하는 대목인데, 이런 적당히 만든 책을 읽은 독자들은 책은 원래 재미없는 것, 무용한 것이라는 역효과를 양산한다는 사실이다. 어음관행, 사재기, 매대 영업의 합리화 이 세 가지는 우리 출판계가 중지를 모아 하나씩 해결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 ‘결심 리스트’ 중에 금연과 책을 꼽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결심을 하지만 또 잘 안 되는 게 ‘금연’과 ‘책 읽기’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책은 인간의 정신에 개입하는 문자 덩어리이고 대부분은 선한 영향을 끼친다는데 이의는 없겠지만 요즘처럼 바쁘게 돌아가면서 볼거리,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책을 펼치는 일이 쉽지 않다.

책밥을 먹은 사람으로서 책을 안 읽는 사람들에게 책 읽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어 칼럼을 시작한다.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책이라는 매체가 곧 사라질 것 같지만, 책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다양한 경로로 인간의 정신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책의 물성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가 있어왔지만 결국, 읽기 즉 가독성이라는 본질에서 한치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책이라는 제도는 그렇게 질긴 심줄을 지닌 채 존재해 왔다.

칼럼 제목이 책 처방전이다. 뭐 대단한 걸 처방하겠다는 소리는 아니고 내가 읽은 책과 책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워킹맘으로서 육아와 정밀함이 요구되는 출판일을 병행하면서 일을 위해서도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도 책을 읽고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효율적으로 책을 읽는 방법, 표지만 보고도 내게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를 바로 파악하는 노하우 등을 나눌 계획이다.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발견한 경구 ‘책 한 권으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인생의 문제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입니다’는 말에 동의한다. 인생의 문제가 그리 만만해서야 쓰겠나, 인간은 방황하는 한 노력하는 존재이다. 자기 앞의 놓인 문제를 두고 책을 펼치는 당신은 아름답다. 책책책을 읽읍시다!

 

김명숙 칼럼

김명숙 칼럼니스트

충북 단양 출신
한양대 국문과 졸업
성미산공동체 '저해모(저녁해먹는모임)' 회원
성미산공동체 성미산택껸도장 이사
나무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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