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라
척하라
  • 홍기확
  • 승인 2018.01.0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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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52>

이제 나도 마흔이다. 어색한 중년이다.

며칠 전 아내와 서점에서 책을 뒤적거리는데 예전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마흔 관련 책들이 유난히 돋보였다. 손을 살짝 뻗다가 움츠러들었다. 사무엘 율만의 시 『청춘』에 나온 글귀가 생각나서다. ‘청춘이란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내 신조는 명함을 1년마다 새로 만든다는 것이다. 명함에는 내 이력과 능력이 깨알같이 새겨져 있다. 나는 매년 이 명함에 한 줄을 추가하고, 시시한 것은 한 줄을 지운다. 내 명함은 내 얼굴이며, 내 인생의 요약본이다. 보이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렇게 나는 매년 적절한 긴장감을 스스로에게 지운다.

한 해의 끝과 다른 한 해의 시작에는 항상 창조를 위한 여러 성장통(成長痛)이 따른다. 가령 연말에는 안 만나던 사람도 만나고 불필요한 모임도 하게 된다. 음주가무로 복통(腹痛)이 잦다. 또한 차분히 내년 계획을 세우며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기도 한다. 두통(頭痛)이다.

올 해는 연 초부터 나에게 두통을 안겨준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에게는 성장통이 되리라 믿는다.

박물관에서 사람을 채용할 일이 생겼다. 다수가 지원했는데 지원자 중 20대의 젊은 친구와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보는데 불만인 부분(그래서 떨어뜨렸다)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제가 부족한 게 많아서요.”

수필가다운 내 답변은 이랬다.

“00씨 부모님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부모님이 어떻게 00씨를 키웠을 건데요? 아시면 속상할 겁니다. 부모님은 지금까지 부족한 거 없이 키우셨을 거라 믿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부족한 게 있으면 저에게 말할 게 아니라, 앞으로 부족한 걸 채우시면 됩니다.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아도 되요. 본인만 알고 있으면 되잖아요?”

다음 답변도 불만이었다.

“할 줄은 알지만, 잘 하지는 못해요. 아직 직접 해본 경험이 없어서요.”

면접관의 입장에서 불필요한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잘 해서 대학교수할 것도 아니고, 잘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직접 해본 경험이 없으니 지금 경험하려고 오신 거 아닌가요? 혹시 겸손하게 말씀하신 거라면, 20대의 능력은 다 비슷합니다. 겸손은 나중에 큰 사람 돼서 하세요. 지금의 겸손은 제가 생각하기에 위선입니다. 못 하면 잘 한다고 먼저 뻥이라고 치고, 정말 잘하게 되기 위해 노력하시면 됩니다.”

면접에서 탈락할 분위기를 명확히 감지한 청년의 고개가 더욱 숙여진다. 미안하기는 하지만 다음 면접부터는 더욱 당당하기를 바랐다.

자기 홍보, 혹은 자기 PR(public relations)의 시대라는 말이 십여 년 전부터 유행이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회사가 요구하는 이력서가 아닌 자기소개서, 학교가 요구하는 성적표가 아닌 학생부종합이 그렇다.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 겸손이 미덕인 시대가 저물었다.

청년실업, 삼포시대(취업, 연애, 결혼을 포기한 시대)라 한다. 젊은이들의 패기가 없어지고 있다. 끊임없이 위축되고 초라해지고 있다. 현재이자 미래의 일꾼들이 자신감을 잃고 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있어 보이는 것, 잘난 척이 필요하다.

여러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똑똑한 신입사원들이 가끔 있다. 특출 난 재주와 눈부신 특기,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알게 된다. 바로 겸손하지 않다는 것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뛰어난 이는 주머니에 있는 송곳처럼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고사에 맹점이 존재한다. 송곳이 주머니를 뚫어봤자 바지 안이다. 드러나지 않는다.

적어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겸손(謙遜)’은 ‘위선(僞善)’이다. 겸손은 뛰어난 사람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뛰어나지 않다. 겸손할 게 없는 데 겸손한 척 하는 것은 위선이다. 젊은이들은 요란해야 한다. 빈 수레를 보자.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이동진의 『이동진 독서법』에 비슷한 말이 나온다.

“‘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라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허영이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허세일까요. 저는 지금이 허영조차도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척’해 왔다. 척 해 온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사회화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반가운 척. 함께 먹는 음식이 싫어도 좋은 척.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머리는 똑똑하다는 척. 현재가 부족해도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위로 척. 행복하지 않은데도 SNS에서의 사진에서는 행복한 척.

그런데 왜 잘난 척은 금기시되는 것일까?

잘난 척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다. 원래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겸손이라는 위선을 택한 거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척에 익숙하다. 척하면 척이다. 척하다가 들통이 나면 쪽이라도 팔리지만, 겸손하다 들통이 나면 아무 것도 안 팔린다.

난데 없지만 유명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주인공인 신짱구 아빠 신형만 씨의 대사 두 개를 인용하며 마친다. 나를 비롯한 청춘들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다.

이제부터 당당하게 세상과 대척하고, 사람에 척하며 살자.

“꿈은 도망가지 않아. 도망가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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