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잘 아는 중학생들이 있던가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잘 아는 중학생들이 있던가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12.26 1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봉개마을 아이들] <9> 내가 생각하는 봉개동이란

고권영 “시간만 준다면 봉개동 소개 해드릴게요”
고권유 “우리 마을은 넓고 아름다운 경관 많아요”
홍수혁 “이번 프로그램 하며 많은 것을 알게 돼”
이진혁 “봉개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몰랐어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동아리 ‘봉개마을 아이들’은 아주 작다. 대단히 규모 있는 조직이 아니다. 동아리가 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작더라도 어떤 생각으로 움직이느냐가 중요하다.

봉개마을 아이들은 4명이 아이로 굳혀졌다. 1주일에 한차례 약속을 정해서 만나는 건 사실 어렵다. 중학생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라면 단박에 “아니오”라는 말이 나올 법한데, 봉개마을 아이들은 그러지 않으니 참 다행이기도 하다.

봉개동은 5개 마을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봉개마을 아이들이 둘러보지 못한 마을이 있다. 바로 용강이다. ‘용강동’이라고도 부르지만, 이 마을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1월 겨울방학이 오면 용강마을을 들를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봉개마을 아이들이 봉개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뭘까. 4명의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봉개동을 소개해보라고 했다. 진솔한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행운도 준다. 한번 읽어보시라.

명도암의 고이지 무덤과 김진용 부인의 무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봉개마을 아이들. 미디어제주
명도암의 고이지 무덤과 김진용 부인의 무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봉개마을 아이들. ⓒ미디어제주

 


고권영

우리마을 ‘봉개’는 1통부터 7통까지 있다. 1통부터 7통까지 각 통마다 그 통의 장점과 특징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마을 ‘통’을 소개하려고 한다.

우선 1통은 봉개의 시작이다. 제주도의 인재들이 모인다는 대기고등학교가 있다. 대기고등학교에서 우리 마을 애들이 모여 주말마다 놀기도 한다. 1통에 대해 할 얘기는 많지만 이만 마치고, 2통으로 가겠다.

2통은 봉개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봉개초등학교가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재미있게 뛰어놀며 성장한다. 3통으로 가보자.

3통은 지금 우리가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 봉아름작은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무나 손쉽게 참여할 수 있다. 3통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힘든 피로를 푸는 목욕탕도 있다. 이젠 4통을 소개한다.

4통은 명도암이라고 불린다. 명도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계기는 김진용이라는 사람의 호이다. 이 사람이 봉개에서 교육을 부흥시키고, 더 나아가 제주도의 교육도 부흥시켰다. 김진용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몇 십분동안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5통으로 넘어간다.

5통은 서회천이다. 서회천은 예전에 ‘ᄀᆞ는새’라고 불렸다. 이 마을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살고 싶은 동네이다. 너무 작고 조용하다. 그리고 당산목이라는 서회천에서는 가장 큰 나무가 있는데, 매년마다 이 나무 밑에서 제를 지낸다. 이제는 5통의 형제마을 6통으로 가보자.

6통은 동회천이라 한다. 동회천은 예전에 ‘새미마을’이라 불렸다. 이 마을은 작은 분교가 있는데, 예전까지만 하더라도 잘 있었는데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렸다.(ㅠㅠ) 그리고 동회천에는 역적수월이 있는데 이를 ‘새미숲’이라고 한다. 이 새미숲을 산책로로 개발하여 산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새미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당연히 샘이 있다. 서회천에 당산목이 있다면 동회천에도 당연히 당산목이 있다. 동회천도 마찬가지로 당산목 아래에서 제를 지낸다. 아~ 동회천 하면 4.3희생자 위령비, 태양광발전소가 있는데 소개를 못해 아쉽니다. 이제 7통으로 가보자. 7통은 용강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통이랑 제일 가까운데 먼나라 이웃나라처럼 잘 모른다. 하지만 조금 아는 정보로 말하자면 용강이 우리 7개 통 중에서 가장 크다.

이처럼 우리 마을에는 불 것들이 정말 많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 마을에 있는 걸 40% 밖에 소개를 하지 못한 것 같다.

주요 명소로는 절물자연휴양림, 노루생태공원, 4·3평화공원이 있다. 나중에 더 많이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좋겠다.
 


고권유

봉개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이다. 나는 봉개 1통에서 태어났다. 지금 나는 중학생이다. 봉개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좀 고생한다. 나는 어린이집 다닐 시절에는 봉개동 전체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몰랐다. 봉개동을 유치원(7세) 때부터 알기 시작하여 봉개동 전체를 알게된 건 초등학교 5학년때 즈음이다.

6학년 때 난 깨달았다. 나는 봉개동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봉개동을 나가면 몸과 마음이 위축됐다. 그리고 난 봉개동을 사랑한다. 착한 사람들과 숲과 오름도 많고, 깨끗한 환경 덕분에 좋다.

봉개동은 대기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개발을 촉진시키고 있다. 나는 그것을 멈추면 좋겠다. 왜냐하면 봉개등의 매력은 사람들이 적어서 서로 거의 다 알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개발을 막 해버리면 그냥 땅값이 싸다며 들어오고는, 봉개동에서는 아무 의사소통을 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분위기도 깨진다.

아파트를 막 지으면 한라산 풍경을 막아버려서 안좋다.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안했으면 좋겠다.

현재 나는 봉개동에 대해서 좀 실망이다. 그 이유가 봉개동에 중학교가 없어서 제주제일중으로 간다. 근데 반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유명한 대기고는 알고 봉개동을 모르는 것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럴만하다. 솔직히 많이 알려지지도 않아서 그럴 법도하다.

이제부터 본론이다. 봉개동은 행정규역을 1~7통까지 나눈다. 일단 1~3통인 본동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산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마트, 식당 등 여러 가지 가게가 있다. 그렇다고 규모가 큰 것도 아니다. 밖으로 좀 나가면 거의 과수원과 밭, 그리고 숲이 더 많다. 하지만 본동에는 봉개초, 대기고 등 교육시설이 있다. 본동은 유명한 관광명소 등이 없다.

유명한 관광명소가 많은 곳은 명도암이다. 명도암에는 10개 이상의 오름과 그 중에는 절물자연휴양림이 있다. 또 4.3을 기리는 4.3평화공원이 있다. 봉개동에 처음 거주했다는 고이지 무덤도 있다. 4통(명도암)이 좀 봉개동의 자랑인 것 같다.

5통과 6통은 둘이 합쳐 회천동인데 5통을 서회천, 6통을 동회천이라고도 한다. 5통과 6통에 각각 당산목이 있고, 사람도 적다.

마지막으로 7통은 뭐…. 모든 통보다 크다고 보면 된다. 7통은 원래 용강동인데, 행정구역으로 봉개동에 속한 것이다.(5통과 6통도 마찬가지) 거기는 공동묘지가 있는데 더 이상 소개할 것이 없다. 그치만 숲이 엄청 많다.

봉개동은 겉으로는 살짝 촌동네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아주 넓고 아름다운 경관이 많은 곳이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겠지만 잊지 않을 것이다.
 


홍수혁

봉개동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사는 곳이고, 봉개에는 오름이 많아 다른 지역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봉개에는 중학교가 없어 적어도 삼양까지는 가야 한다. 여학생들은 더 힘들다. 봉개에 사는 여학생들에게 가장 가까운 학교는 신성여고이다.

4.3평화공원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간다. 1통부터 7통까지 있어 사람수가 적지는 않다.

학교는 초등학교, 고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적다.

봉개에 당산목이 있는데 서회천이라는 마을에 있다. 팽나무인데 둘레가 약 8m이고, 봉개마을 아이들 세 명이 둥글게 손을 잡아야 하는 크기이다.

예전에 명도암에 김진용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덕분에 명도암에 교육이 발달되어 4.3전까지도 함덕에 있던 사람들도 명도암까지 와서 교육을 받았다.

명도암에 고이지라는 사람이 살았다. 고이지는 봉개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이고 무덤은 명도암에 있다.

아파트가 많이 지어지고 있다. 봉개에 아파트를 많이 지어 지금보다는 잘 살 것 같다.

이 활동을 하기 전에는 고이지라는 사람과 당산목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런 걸 잘 알게 되었다.
 


이진혁

화북에 살다가 할아버지 덕분에 봉개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봉개동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봉개에 대해 알게 된 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봉개동을 알 기회가 더 많아졌다. 봉개동을 알아보거나 조사를 해보라는 숙제가 있어서, 봉개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 기회가 생겼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봉개의 명소 같은 것을 조사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버스를 타고, 봉개 근처가 아닌 봉개 밖에 있는 곳을 알게 됐다. 봉개 밖의 풍경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봉개 관련 기자 프로그램, 드론으로 봉개를 찍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봉개를 더 깊이 알게 됐다.

한마디를 더 붙인다면 봉개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몰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