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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부끄러운 ‘민의의 전당’
<데스크논단> 부끄러운 ‘민의의 전당’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5.06.08 16:5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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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입장과 집단적 입장의 차이 때문이었나.

지난 7일 행정계층구조 개편문제와 관련해 제주도의회가 보여준 태도와 입장은 ‘이중적’이라는 표현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날 도의회에서는 같은 사안을 놓고 2건의 일정이 있었다. 하나는 오전에 열린 전체의원 간담회이다.

이 간담회에는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도청 관계공무원도 참석해 추진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다른 하나는 오후에 이뤄진 기자회견이다. 간담회 결과를 바탕으로 의원들간 입장을 조율한 후 행정계층구조 개편문제에 대한 도의회의 입장을 밝힌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의회의 일정이 알려지면서 관심은 당연히 기자회견에 쏠려있었다. 행정계층구조개편문제와 관련해서는 시장.군수 및 시.군의회가 혁신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천명한 상황이고, 시민.사회단체도 도의회에 주민투표 유보건의를 한 터라 이제 남은 것은 도의회의 입장이었다.

항간에서는 도지사와 같은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결국 제주도당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었다. 또 현역 도의원의 경우 내년 지방선거를 현체제로 치르나, 아니면 혁신안처럼 광역화해 치르나 크게 손해볼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군수나 시.군의회와는 입장이 다르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었다.

#잇따라 터져나온 ‘책임론’
그러나 시민.사회단체가 주민투표 유보건의를 강력히 요청했고, 혁신안에 대한 위헌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도의회가 마냥 제주도 당국의 입장을 두둔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대두됐다.

실제 이날 오전 전체의원 간담회 때만 하더라도 전망은 설득력을 갖게했다. 도지사가 참석한 전체의원 간담회는 마치 행정사무감사를 벌이는 자리인 마냥 의원들의 질타성 발언은 생각외로 날카로웠다.

‘책임론’도 고개를 들었다. 몇몇 의원들은 ‘주민투표까지 실시된 후 투표율이 3분의 1을 넘지못해 무효처리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도지사에게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3년동안 논란이 이어져왔고, 막대한 혈세가 투입됐는데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며, 책임지는 사람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터져나왔다. 도민들이 선택했으니까, 마치 책임이 없다는 듯이 해서는 안되며, 도민선택만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는 의원도 있었다.

제주도 당국이 혁신안을 추진하고 싶어하는 것은 제주도민이 모두 알고 있는데 왜 자꾸 속내를 숨기며 추진하려 하느냐며 채찍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도민 여러분 혁신안을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용의를 묻는 의원도 있었다.

계속된 책임론 추궁에 김태환 지사는 “책임지지 못할 바는 아니며, 일단 최선을 다해 업무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간담회 답지 않게 의원들의 질문이 ‘성토’수준으로 격앙되가는 듯 하자 제주도 관계자들은 크게 곤혹스러워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서 시작된 기자회견에서 도의회가 밝힌 내용은 간담회 때의 얘기와는 전혀 달랐다. 한마디로 제주도가 추진하는 주민투표 실시방침을 존중한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주민투표는 가장 공정하고 투명하게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도민 여러분은 제주도의 미래를 결정지을 두가지 안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해 선택하고 투표결과에 대해서 존중해주시길 바란다. 행정계층구조개편으로 인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도정에 맞서 충실한 견제와 균형, 동반자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특별자치도법 제정에 의회의 권한을 강화시켜 지방자치의 본질을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제기되는 위헌의 소지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도민갈등을 최소화해 주민투표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도의회는 각계각층을 망라한 워크샵을 개최해 도민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자 전부이다.

#소신 저버린 ‘이중적 태도’
올바른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위한 도민연대 준비위원회에서 주민투표 실시건의를 보류해달라는 건의에 대한 답변성 입장도 전혀 없었다. 마냥 제주도당국의 방침대로 주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도록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오전 간담회에서 열변을 토했던 그 열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도의회가 도민들의 의견을 대변해줘야 할 책무를 안고 있는 대의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역이슈에 대한 신중한 검토 정도는 촉구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오죽했으면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는 아무리 흝어봐도 ‘입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한 시민단체 회원은 왜 기자회견을 했는지, 차라리 주민투표가 끝나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게 나았다고 핀잔을 하기도 했다.

도의회가 이날 보여준 ‘이중성’은 두고 두고 비웃음을 살게 뻔해 보인다. 반나절 사이에 ‘줏대’와 ‘소신’을 저버린 것인지, 아니면 간담회에서의 강도 높은 발언은 한낱 ‘제스처’ 또는 ‘이중성’에 의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선거때만 되면 단골문구로 활용하는 ‘주민의 심부름꾼’은 아니더라도, 저들이 진정 우리 주민들의 의견을 대표해 민의를 처리하는 지방의원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윤철수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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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짱구 2005-06-08 17:17:04
도의회가 너무 간사하지요.
자기네 밥그릇 이상없다고, 도지사가 같은 한나라당이라 해서 주민투표 뜻 존중한다는 발언이나 해대고.
참 한심합니다.
이런 사람 왜 뽑았는지.

민의 2005-06-08 17:19:07
기자회견 안했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텐데, 적어도 시민단체들로부터 도의회 입장 뭐냐는 촉구정도 받으면 그만일텐데.
기자회견 자청하고, 욕먹어, 쪽팔려, 얻은게 뭐 있남.
김태환지사 흐뭇하게 해준 것 말고는.
강씨 성 가진 의원 두분은 간담회서는 지사에서 독하다 싶을 정도로 맹공 퍼붓더니, 기자회견에는 잘 참석하셨네요.

2005-06-22 00:00:31
자폭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