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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집단희생자들의 '흔적찾기'
60년 전 집단희생자들의 '흔적찾기'
  • 한애리 기자
  • 승인 2007.08.21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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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대규모학살지, 옛 정뜨르비행장 학살터 발굴작업
21일 오전 용담동 어영마을서 개토제 개최
제주를 들고 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제주국제공항은 제주의 관문으로써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열린 공간'이다. 그러나 제주국제공항은 제주4.3 당시 최대 학살터이자  잊지 못할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옛 정뜨르비행장, 제주국제공항에는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인 1949년 제2차 군법회의 사형수 249명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8월 예비검속자 등 총 800여명이 집단학살돼 암매장된 '아픈 상처의 땅'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뜨르비행장을 '4.3 사형장'으로 기억한다.

"사변(한국전쟁) 전이었다. 총소리 '팡팡'나서 보니까 뒤로 포승을 묶은 사람들이 보였다. 3~4분 간격으로 열 명씩 세워서... 그때, 도두리, 어영 일대 전부 군인들이 통행 금지시켰다. 비행장이 4.3때 완전 사형장이었다" 김모씨(71.제주시)

"당시 우리 집이 비행장 옆 몰래물이었는데, 지금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바로 옆이다. 그때 당시 활주로에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들어 서더니 한참 있다가 총소리가 ‘팡팡’났다. 그때가 전쟁 나던 해 7, 8월경이었다. 그 당시 내가 군 입대를 해서 날짜는 확실하다"  문모씨(77.제주시)

"동서로 구덩이를 길고 깊게 팠다. 구덩이 남쪽 지점에서 사람들을 총살시켜 밑으로 떨어뜨렸다. 몰래물 동산에서 봤는데, 흰 천으로 사람들 눈을 가리는 것까지 봤다. 지금 어영 마을 부근에 일제 때 심어놓은 소나무 방풍림 흔적이 있는데, 그 곳과 사라봉 중간 지점 사이에서 서북 방향으로 들어가다 보면, 도두봉 방향과 일직선으로 구덩이가 길게 파여져 있었다"  김모씨(74.제주시)

"몰래물 엉물 동산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밤이었는데, 자정 다 돼서 총소리도 들리고, 사람 우는 소리도 많이 들렸다. 한 1시간 정도 그런 소리가 들렸는데, 2~3일은 그렇게 와서 죽여 놓고 갔다"  문모씨(81.제주시)


당시 목격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죄없는 무고한 일반 시민들이 소리없이 어둠 속에서 무더기로 쓰러져간 모습들이다.

60여년 전 억울하게 쓰러져간 희생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대대적인 유해발굴 사업이 이뤄진다.

제주4.3연구소와 제주대학교는 21일 오전 11시 제주시 용담동 어영공원에서 '제주4.3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를 열고 본격적인 발굴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옛 정뜨르비행장은 제주4.3의 실체적 규명을 위해 유해 발굴 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역사적 현장으로 벌써부터 이번 유해발굴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유해발굴 작업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고충홍 제주도의회 부의장, 김두연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김재윤 국회의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개토제는 헌화 및 분향, 추진 경과 및 계획보고, 제주사, 추도사, 시삽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주제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이 사랑하고 보고싶어하는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드리기 위함"이라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부끄럽게 하는 제주4.3의 역사도 바로서는 날이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여기까지 오는데 60년이 걸린 이유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조상들 앞에서 진정으로 화합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양대성 의장을 대신해 추도사를 한 고충홍 제주도의회 부의장은 "제주4.3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유해발굴사업은 유족만이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업"이라며 "영령들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제주공동체가 회복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국제공항 내 유해발굴사업은 오는 2009년 4월까지 1, 2차에 나누어 진행된다.

국제공항내 유해발굴사업은 제주4.3의 실체적 규명을 위해 유해 발굴 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시설 가급'이라는 점에서 발굴사업이 어려웠지만 오는 12월까지 진행되는 남북활주로 보수공사와 맞물려 예상보다 쉽게 추진됐다.

4.3유해발굴팀은 1차적으로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 희생자들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남북활주로 동서쪽 지점을 대상으로 내년 6월 8월까지 유해발굴 활동을 전개하고 2차적으로는 군법회의 관련 희생자들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남북활주로 동북쪽 지점을 대상으로 2009년 4월까지 발굴작업을 한다.

고고학 전문가 등이 동원돼 학살 현장도 재구성되며 사인을 분석하기 위한 체질인류학과 법의학 전문가도 동원되는 점도 이번 발굴사업에서 눈 여겨 볼 만한 사항이다. <미디어제주>

옛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는 1949년 제2차 군법회의 사형수 249명,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예비검속자들이 집단학살된 뒤  암매장 당한 제주4.3당시 최대 학살.암매장지로 알려진 곳이다.

최대 집단학살지였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졌지만 접근은 사실 쉽지 않았다.

제주국제공항이 '국가보안시설 가급'이라는 점에서 발굴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찬식 제주4.3연구소 상임이사는 "한국공항공사에서 때마침 남북활주로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유해발굴사업을 서둘러 진행하게 됐다"며 "그만큼 학살.암매장 규모가 예상보다 광범위하고 매장된 유해와 유류품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 정해진 시간 내 발굴작업을 종결지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박 이사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역주민이나 유족 등에 의해 당시 희생자들이 매장된 위치를 확인하고 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라며 "군법회의 사형수 249명의 명단과 유가족 등을 통해 예비검속자들의 명단 등 70%이상 명단을 확보하고 있는 점도 이번 발굴사업에 희망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의학 전문가, 기획, 발굴, 채혈 등에 투입되는 인원만 60여명이며, 4.3과 관련한 가장 큰 발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며 "의미있는 발굴인 만큼 유해발굴팀은 최선을 다해 희생자들의 유해를 찾아서 가족들의 품에 돌려 보낼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인간답게 사는 삶이란 살아있는 사람들만의 삶이 아니라 죽은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4.3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에 참석한 제주도의 역사와 4.3항쟁 전후에 발생한 비극을 소재로 한 소설 '순이삼촌'의 저자 현기영 전 한국예술문화진흥원장은 인간의 진정한 삶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제주국제공항 유해발굴 개토제에 참석하기 위해 일부러 제주를 찾았다는 현 전 원장은 "옛 정뜨르비행장은 4.3희생자들이 대규모 암매장돼 있은 곳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아주 중요한 발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 전 원장은 "기성세대들은 참혹한 사건, 4.3후유증을 앓고 있다"며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에 그들은 피해의식 속에서 그 사건을 직접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으며 정서적으로도 왜곡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4.3에 대한 역사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일이며 잊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기억해야 한다"며 "지금 젊은 세대들은 4.3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4.3을 기억하는 일은 정서적으로 왜곡이 없는 젊은세대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고, 영령들을 위로하는 것은 인간의 삶이 살아있는 자들만의 삶이 아니라 죽은 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제주의 최대 비극 4.3영령들을 위로하고 달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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