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6 17:57 (화)
“원룸 들어설 바에야 땅을 사들여 어린이 공간으로”
“원룸 들어설 바에야 땅을 사들여 어린이 공간으로”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11.07 0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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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간이 우선이다] <13> 뎃토히로바

개인이 땅을 매입해 플레이파크로 변신시킨 사례
고령화 가속화되는 지역에 어린이 웃음소리 가득
실내공간 있어 소문 듣고 멀리서 버스타고 오기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철탑이 도심을 관통한다. 흔하지 않은 모습이다. 고압의 전류를 보내는 송전철탑이 도심을 지난다면 용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 일본에는 있다. 기자들이 찾은 일본 도쿄의 세타가야구(世田谷区) 노자와 지역은 눈에 보이는 게 철탑이다. 어쨌든 낯선 풍경이다. 우리 같으면 철거 얘기가 나왔을텐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낯설다.

세타가야구 노자와 일대에 위치해 있는 뎃토히로바. 바깥 놀이시설 북쪽으로 송전철탑이 지나고 있다. 미디어제주
세타가야구 노자와 일대에 위치해 있는 뎃토히로바. 바깥 놀이시설 북쪽으로 송전철탑이 지나고 있다. ⓒ미디어제주

 

철탑이라는 낯선 풍경을 지닌 노자와 일대는 매우 조용하다. 주택단지라고 보면 된다. 시끄러운 곳이라곤 전혀 없다. 만일 조용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노자와 지역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이다. 철탑만 뺀다면 더 없이 살기 좋은 마을이다.

높은 건물도 눈에 띄질 않는다. 높아야 2~3층이다. 공동주택도 종종 눈에 보이지만 많지 않다. 단독주택은 한 눈에 봐도 부동산 가치가 높아 보인다. 그만큼 재정적인 여유가 있어야 노자와 지역에 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다만 활력은 없는 곳이다.

# 개인의 의지가 만든 플레이파크

노자와 지역에도 플레이파크가 있다. 노자와 지역이 포함된 세타가야구엔 단순한 놀이시설을 제외할 경우 플레이파크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모두 6곳이다. 구별로 따지면 많은 편이다. 세타가야보다 플레이파크가 많은 곳은 신주쿠 일대이다. 세타가야 일대에 플레이파크가 많은 이유는 도쿄도 구 지역 가운데 세타가야구 인구가 가장 많은 이유도 한몫을 하고 있다. 아울러 플레이파크가 시작됐던 곳이 세타가야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할테다.

조용한 이곳. 그래서인지 노자와에 있는 플레이파크도 앞서 소개했던 곳과는 사뭇 다르다. 도심에 있는 공원에 플레이파크를 두는 게 일반적이지만 노자와는 다르다. 한 개인의 의지가 작용했다.

뎃토히로바는 야마가타씨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오른쪽 원이 뎃토히로바이며, 왼쪽 원은 원룸이 될 땅을 사들여 어린이 공간을 만든 야마가타씨 집이다. 뒤로 송전철탑이 보인다. 미디어제주
뎃토히로바는 야마가타씨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오른쪽 원이 뎃토히로바이며, 왼쪽 원은 원룸이 될 땅을 사들여 어린이 공간을 만든 야마가타씨 집이다. 뒤로 송전철탑이 보인다. 미디어제주ⓒ
뎃토히로바는 고압전선이 통과하는 송전철탑이 지나는 곳임을 ‘송전선 주의’라는 푯말이 말해준다. 미디어제주
뎃토히로바는 고압전선이 통과하는 송전철탑이 지나는 곳임을 ‘송전선 주의’라는 푯말이 말해준다. ⓒ미디어제주

 

우선 그 이야기를 해야겠다. 노자와에 있는 플레이파크 이름은 ‘뎃토히로바’다. 다른 곳과 달리 ‘플레이파크’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다. 뎃토히로바는 철탑을 뜻하는 ‘뎃토’와 광장의 뜻을 담은 ‘히로바’를 합친 말이다. 우리말로 굳이 해석을 한다면 ‘철탑광장’ 혹은 ‘철탑이 있는 곳’쯤으로 부를 수 있다. 어찌됐건 여기의 상징은 철탑이다. 수십 개의 철탑이 도심을 관통하지만 뎃토히로바에 있는 철탑만 모양새가 독특하다. 하얀 색상의 거대한 철탑이 마치 전신주처럼 세워져 있다. 때문에 멀리서도 이곳 플레이파크를 인지할 수 있다는 의미가 뎃토히로바에 담겨 잇다.

뎃토히로바가 들어선 땅은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일본의 아파트는 우리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뎃토히로바에 계획된 아파트는 원룸이었다. 남북으로 길게 난 이 땅의 바로 서쪽에 살고 있던 야마가타(山縣)씨는 원룸이 들어오는 걸 막고, 아예 이곳을 아이들이 놀 공간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뎃토히로바는 개인의 의지로 만들어졌다. 다른 곳과 달리 실내공간도 잘 구축돼 있다. 미디어제주
뎃토히로바는 개인의 의지로 만들어졌다. 다른 곳과 달리 실내공간도 잘 구축돼 있다. ⓒ미디어제주

 

야마가타씨는 계획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 200평에 달하는 땅을 사들였다. 야마가타씨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은 아니다. 그는 세상에 없지만 조용하던 마을에 어린이들의 소리가 오가는 공간을 만들어준 은인인 셈이다. 야마가타씨는 돌아가셨지만 현재 그의 일가는 뎃토히로바 바로 곁에 살고 있다.

야마가타씨는 땅을 매입한 걸로 그치지 않았다. 뎃토히로바에 실내 공간을 만들어줬다. 일본에 있는 플레이파크는 대부분 바깥놀이 활동 위주로 이뤄진다. 때문에 실내 공간을 갖춘 곳은 드물다. 하지만 뎃토히로바는 실내공간도 있기에 바깥놀이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부 시설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야마가타씨는 “아기들도 오지 않느냐”며 집을 지어줬다고 한다.

덕분에 갓난아이들도 땡볕을 피하고, 벌레의 습격(?)도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뎃토히로바가 모든 아이들에게 열린 공간은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여기에 와서 놀 수 있다.

뎃토히로바 중간쯤에 집이 들어서 있다. 집의 남북으로는 창이 나 있다. 내부시설 남쪽은 주차 공간이며, 북쪽은 아이들이 즐기며 놀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시설이 돼 있다. 부모들은 주택에 남북으로 난 창을 통해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엄마는 아이를 지켜보고, 아이들은 마음껏 즐기며 놀 수 있는 구조가 돼 있다.

# 주민 여론을 듣고 휴일 결정

뎃토히로바는 젊은 여성이 대표로 있다. 스기야마 요코씨가 대표이다. 기자들이 방문한 날은 뎃토히로바의 문이 닫힌 날이었으나 기쁘게 방문을 허락했다. 시설이 여느 플레이파크와 다르다는 점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을 맡기기에 좋아보였다. 그러나 스기야마 대표는 보육시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기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여기는 보육시설은 아니에요. 애만 여기에 맡길 수는 없어요.”

뎃토히로바 대표인 스기야마씨. 미디어제주
뎃토히로바 대표인 스기야마씨. ⓒ미디어제주
뎃토히로바의 바깥 놀이시설. 미디어제주
뎃토히로바의 바깥 놀이시설. ⓒ미디어제주

 

주택이 있는 플레이파크여서 내부 공간은 엄마들의 수다장소가 되고, 엄마들의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된다. 아이만은 맡길 수 없지만 엄마들에겐 최고의 플레이파크인 셈이다. 어쩌면 젊은 엄마들끼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최적의 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히로바’라는 말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노자와 지역은 고급 주택단지이기는 하지만 주민들의 평균 연령이 높다. 고령화가 지속된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뎃토히로바는 이웃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주민 대부분은 아이들의 웃음에 찬성을 했다. 그래도 다른 여론은 있을 수 있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을 듣기로 했다. 매일 문을 열 경우 아이들의 웃음이 오히려 방해요소도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찬성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죠. 주민 의견을 들었더니 토요일이나 일요일 하루는 쉬어달래요. 그래서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아요. 아울러 평일에도 하루를 쉬어달래요. 목요일도 문을 열지 않아요.”

기자가 뎃토히로바를 찾았을 때는 쉬는 날이었다. 미디어제주
기자가 뎃토히로바를 찾았을 때는 쉬는 날이었다. ⓒ미디어제주

 

# 보통 엄마들에게 용기를 주는 곳

기자들이 갔을 때 스기야마 대표는 5살 딸을 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집이라는 공간을 지닌 점은 이곳 플레이파크만의 강점이다. 그 때문일까. 버스를 타고 멀리서도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공원에 있는 플레이파크는 누울 곳이 없잖아요. 애를 눕히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곳이 많거든요. 뎃토히로바 소문을 듣고 버스를 타고 오는 엄마들도 있어요.”

뎃토히로바의 실내 공간은 갓난아기를 데리고 오는 엄마들에게는 최적의 공간이 되고 있다. 또한 플레이파크에 보내고 싶은데 고민을 하는 엄마들에게도 힘이 되는 공간이다. 스기야마 대표는 보통 엄마들이 오는 곳이라며 일본어로 보통을 뜻하는 ‘후츠~’를 강조하기도 했다. 바깥놀이만을 위주로 하는 플레이파크는 보통 엄마들이 다가서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점에서 부모들이 멀리서 여기를 찾는 이유를 알 만하다.

“보통 엄마들이 올 수 있어요. 처음 오신 분들에게 용기도 줄 수 있죠. 엄마들은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에 행복해하거든요. 그런데 이곳은 서비스하는 공간은 아니에요.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는지,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는지, 그런 걸 느끼고 가는 걸 원합니다.”

뎃토히로바 지도. 집을 중심으로 주차공간과 바깥놀이공간이 분리돼 있다. 미디어제주
뎃토히로바 지도. 집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간이 분리돼 있다. ⓒ미디어제주

 

# 남과 다른 뎃토히로바

뎃토히로바는 지난 2002년 문을 열었다. 2010년엔 비영리법인으로 등록,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좀 더 탄탄한 운영을 위해 개인과 단체의 기부를 받기도 한다.

알찬 운영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이들은 500엔을 내야 이용할 수 있다. 쿠키를 만들어 먹을 때도 100엔을 내야 한다. 이런 돈은 운영비로 충당된다.

뎃토히로바의 또다른 특징이 있다면 실내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는 점이다. 세타가야구청 주관으로 엄마와 아빠를 위한 강좌가 열린다. 아이를 키우는 요령 등의 강좌를 여기서 만날 수 있는 특징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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