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의견접수] 제주 민주화운동 약사
[의견접수] 제주 민주화운동 약사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7.08.09 13:51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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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20년 특별기획 <타는 목마름으로> 책자발간
8월15일까지 의견접수...발간위원 모집

<6월항쟁 20주년 특별기획-타는 목마름으로> 연재 마무리에 따른 안내말씀

 미디어제주가 2007년 6월1일부터 연재보도하였던 [6월항쟁 20주년 특별기획-타는 목마름으로]가 7월29일 보도되고 있는 <16회-'김윤삼 부상사건'과 '제주국본' 결성>을 마지막으로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동안 사료 제공 및 의견 개진을 해주신 분들에게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미디어제주는 그동안 연재되었던 내용을 보완하여 책자 <제주민주화운동사-타는 목마름으로>를 2007년 8월말경 발간하고자 합니다. 이 책자 발간에 따라 폭넓은 의견수렴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의견을 접수받습니다.
 
▣ 내용 수정을 위한 의견접수
□ 기간 : 2007년 7월31일 - 8월15일
□ 의견접수 방법 : 미디어제주 홈페이지 해당기사 <의견쓰기>, 또는 이메일(mediajeju@mediajeju.com) 접수

▣ ‘타는 목마름으로’ 발간위원 모집
□ 기간 : 2007년 7월31일 - 8월15일
□ 대상 : <제주민주화운동사-타는 목마름으로> 책자 발간에 동의하시는 분은 누구나(단체명의 참여도 가능)
□ 참여방법 : 미디어제주로 전화신청

▣ 책자 발간 일정
□ 의견수렴 및 내용 보완 : 2007년 8월15일까지
□ 책자 발간위원 모집 : 2007년 8월15일까지
□ 책자 발간완료 : 2007년 8월31일 전후

문의> 미디어제주 편집국(담당 원성심 팀장, 전화 725-3456)



1985-1987년 제주 민주화운동 약사

1985년


2. 9 제주대 4학년 장은심 김옥임 오옥만 3명, 제12대 총선 후보자 연설회가 열리는 제주시 광양초등학교에서 반정부 유인물 뿌리며 시위하다 경찰에 연행(장은심 구류 5일, 김옥임 구류 3일, 오옥만 구류 3일-유언비어유포죄)

5. 14 제주대 학생회관 앞에서 학생 3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5.18 광주사태 진상규명대회’ 개최. 집회 후 교문 밖으로 진출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과 투석전.(김계완, 강수경, 한연희, 강양희, 강정희 등 소위 ‘언더 5인방’이 시위 주도)

5. 18 경찰 수배 중이던 김계완 강수경, 제주시 중앙로 중앙양과점 4층 옥상에서 ‘광주사태 규명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횃불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경찰조사 후 각 구류 15일 처분-유언비어유포죄)

5. 23 제주대 학생들, 오후 6시부터 제주대 학생회관 앞에서 ‘구류학생 석방하라’ 구호 외치며 자정까지 농성을 벌이다 자진해산.

12. 2 제주대생 2백여명, 총학생회장 소견발표회가 끝난 후 ‘민주화투쟁실천선언문’이라는 유인물 배포하고 ‘독재정권 퇴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목석원 남쪽 남국사 입구까지 진출해 경찰과 투석전.(오만식 등 6명 경찰에 연행)

12. 9 제주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운동권진영과 연대해 출마한 박희수 군 당선(운동권진영의 학생회 진출 본격화. 이후 ‘언더’ 진영에서 추천된 정광훈 양용혁 황인호 3명 총학생회 집행부로 인선)


1986년

4. 8 제주대 학생회관 앞에서 ‘민주헌법쟁취투쟁위원회’ 발족. 위원장에 김영산, 부위원장에 현맹수. 집회 후 교문 밖으로 진출해 경찰과 투석전.

4. 9 제주대 총학생회 발대식이 끝난 후 민주헌법쟁취투쟁위원회 주도로 ‘4.19 탐라선언’이란 유인물을 뿌리며 학내시위.(김영산 현맹수 홍순자 양진혁 4명 경찰에 연행돼 구류 처분)

4. 16 제주대 총학생회 주최로 4.19 제26주년 기념식 개최. 집회 후 교내시위를 벌이다 자진 해산.

5. 13 총학생회 주관으로 열린 ‘광주민중항쟁 제6주기 추모제’가 끝난 후 ‘제주대학교 민주화 투쟁위원회’ 발족. 위원장에 고창후, 홍보담당 부위원장에 강성순, 군사독재타도 투쟁담당부위원장에 김현실 선임. 제민투 발족식 이후 오후 3시부터 4백여명의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진출해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사과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과 투석전.(강성순 등 7명 경찰에 연행. 제주대 교문 옆에 있던 제주경찰서 K경감 학생들에 붙잡혀 억류됐다가 풀려남)

5. 27 제주시 제주칼호텔 앞 학생회관에서 아라가요제가 끝난 후 가두시위를 한 혐의로 제주대 고창후 김현실 김영철 현혜숙 등 4명 경찰에 연행.

5. 28 제주대 학생 80여명이 오후 7시35분 제주대 도서관을 기습 점거하고 ‘연행학생 석방’ ‘민주헌법 쟁취’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철야농성에 돌입. 29일 밤 9시45분께 농성 해제.

9월 제주대 고창후 변동하 이상희 3명, ‘애국도민에게 드리는 글’이란 유인물을 제작해 제주시내 배포한 혐의로 경찰에 연행돼 구류 처분.

11. 13 제주대 총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운동권 후보였던 현길호 강창봉을 비롯해 선거참모인 정원태 김종래 등 4명이 경찰에 전격 연행(반정부 선거홍보물 제작 혐의. 이 과정에서 학생운동권 진영 명단 등이 들어있는 노트가 경찰에 압수되는 일명 ‘노트사건’이 발생. 현길호와 정원태 등은 유언비언 유포혐의로 구류처분)

11. 17 제주대 총학생회장 운동권 후보의 연행에 항의하며 지경호 현맹수 유창부 현혜숙 김현실 황인호 모성룡 등 기습적으로 총장실 점거. 경찰 곧바로 학내로 투입돼 진압작전. 이 과정에서 학생 33명이 연행됐으나 총장실 점거농성자는 ‘비밀문’으로 모두 빠져나와 무사)

11. 19 제주대학교 긴급 학.처장 회의 열고 학칙 51조 1항4호 및 학생징계기준 11항을 적용해 운동권후보인 현길호를 비롯해 총장실 점거농성 관련자 7명에 대해 무더기 제명처분.(제명처분 학생=지경호 현맹수 유창부 현혜숙 김현실 황인호 현길호)

11. 19 오후 1시30분께 제주대 총학생회장 선거 유세장 주변에 있던 학생 150여명이 ‘제명처분 취소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 밖으로 진출해 경찰과 격렬한 투석전.

11. 20 제명처분된 현길호 후보 구류처분 받고 유치장 살이 하고 있는 가운데 실시된 제주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현길호 후보가 전체 유효투표의 42.7%의 높은 득표율을 보이며 당선.(당선이 됐으나 하루전 제명처분 받은 관계로 재선거키로 함. 앞서 열린 단과대학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인문대 황인호<제명처분>, 사회과학대 오용욱, 총여학생회 송영란, 써클연합회 김정열 등 운동권 후보들이 당선됨). 1987년 3월 실시된 총학생회장 재선거에서는 운동권후보인 송형관 당선.

11. 20-24 제주대 전 학과에서 수업거부. ‘제명처분 철회’ 요구하며 4차례에 걸쳐 비상학생총회 개최.

11. 24 경찰 수배 중이던 지경호 현맹수, 제주대 본관 2층에서 단식농성 돌입했으나 경찰이 곧바로 연행해 구속.(학생운동관련 첫 경찰 구속사건으로 1심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남)

12. 1 고창후 유창부 오경희 모성룡 문정혜 현혜숙 황인호 등 7명은 일련의 학내사태가 정치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며 제주시청 앞에 소재해 있던 민정당사 제주도지구당 앞으로 몰려가 화염병을 투척하고, 제주시청 앞 도로를 점거하고 ‘우리는 왜 민정당사에 화염병을 던져야만 했는가’라는 제목의 자필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모두 연행.<이 사건으로 고창후 황인호는 구속되고, 나머지 5명은 구류처분 ; 구속된 2명은 1987년 2월 각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항소했는데, 5월 광주고법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


1987년

1. 14 서울대 박종철군,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서 물고문으로 사망.

2. 5 오후 7시30분 제주시 광양성당에서 ‘인권회복을 위한 미사-박종철군 추도 및 고문추방을 위하여’ 집전. 제주교구가톨릭대학생연합회(회장 박성룡) 정권규탄 시국성명 발표.

2. 7 신민당, 제주시 고한준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고 박종철군 추모식.

3.3. 박종철 열사 49재. 제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주최로 학내에서 '박종철열사 49재 추모대회'가짐.

4. 3 제주대 총여학생회, 사회과학대학학생회, 인문대학학생회 등에서 일제히 ‘4.3 대자보’를 게재함.(당시 총학생회를 비롯한 5개 학생기구에서 4.3대자보 부착을 결의함)

4.13 전두환 대통령 '4·13 호헌조치' 발표(현행 헌법으로 정부를 이양하고 개헌은 88올림픽 이후로 미루겠다는 내용)

4. 15 경찰, 4.3대자보를 붙인 혐의로 송영란 총여학생회장, 김창옥 사회과학대학학생회 홍보부장 2명을 전격 연행

제주대학교 4.3대자보 관련 시위 일지(제대신문 당시 보도내용 참조)
▲4월15일(수)
-오후 5시경 : 학생 30여명 4.3사건 대자보관련 여학생회장.사과대 홍보부장 경찰연행 해명요구하며 학생과 유리창 등 기물파손
-오후 6시경 : 운영위원회 학생처장과 면담 연행해명.작년 부당징계 철회 요구
-오후 8시경 : 운영위원 6명 제주경찰서장과 연행학생문제 면담
▲4월16일(목)
-오후 1시경 : 총학생회 주최 4.19민주혁명계승대회 '연행학생 석방' '부당징계 철회' '학원자율쟁취' 주장 학생 2백여명 농성
-오후 3시경 : 학생 2백여명이 총장과 본관 앞에서 면담갖고 총장의 사태해결 노력 언약받음
-오후 7시경 : 운영위원회에서 '연행학생 석방' '총학생회장.사과대학생회장 지명수배령 철회' '부당징계철회' 요구관철 위해 중간고사 거부안 제시됨
▲4월17일(금)
-오후 1시경 : 제1차 비상학생총회 학생 5백여명 참석, 중간고사 거부결의, 중간고사 거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오후 6시경 : 비대위 학원민주화, 자율화투쟁 위한 중간고사 거부 강행 결의
-오후 9시경 : 연행학생 석방됨
▲4월18일(토)
-오후 2시 : 제2차 비상학생총회 학생 1천여명 참석 학원자율화투쟁 경과보고대회 가짐 '연행학생 완전석방 공식문서화 제출' '지명수배 철회' '부당징계 철회' '학원탄압 중지'요구 농성
▲4월19일(일)
-오후 6시30분경 : 중강당에서 전체교수회의 열어 중간고사 강행결의
▲4월20일(월)
-낮 12시경 : 시험거부투쟁 제1차경과보고대회 학생 3천여명 참석 교내시위, 7개 단대 전 48개 학과 중 47개학과 시험거부 돌입, 아라민주대학 개설
▲4월21일(화)
-오후 2시경 : 제2차 경과보고대회 학생 2천여명 교내시위
▲4월22일(수)
-오후 2시경 : 제3차경과보고대회 학생 1천명 교내시위
-오후 9시경 : 비대위 총장과 면담, 16일 총장의 언약 재확인 구체화 방안논의 의견차로 타협결렬
▲4월23일(목)
-오후 2시경 : 제4차 경과보고대회 학생 5백여명 교내시위
-오후 5시30분경 : '학원자율쟁취' '부당징계철회' '지명수배철회' 주장하며 학생 140여명 총장실 점거 철야농성 돌입
▲4월24일(금)
-오후 7시경 : 학생.교수.학교측 대표 각 2인으로 수습위원회 구성 타협안 모색
▲4월25일(토)
-새벽 3시경 : 수습위원회 부당징계 철회와 후속 복교 방안 및 시험거부 사후대책 타협봄
-오전 11시40분경 : 총장실 점거.철야농성 풀며 해산

5. 18 제주대 학생회관 앞에서 총학생회 주최로 ‘제7주기 광주항쟁 추모제’ 개최. 이 집회 도중 ‘언더’그룹의 한 진영에서 집회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총학생회 간부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빼앗아 투위 발족식 강행. 이 사건으로 ‘언더’진영 내부 갈등 심화.

5. 18 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사실 폭로되면서 천주교 제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의 홍충수 신부 등 12명 제주교구청 회의실에서 무기한 단식기도 돌입. 같은날 오후 8시 중앙성당에서 ‘광주사태 7주기 추모미사 및 민주화를 위한 구국기도회’ 가짐. 카톨릭대학생연합회 학생 100여명 중앙성당 앞에서 ‘직선개헌’ 외치며 농성.

5. 23 천주교 제주교구 사제단 단식 해제. 단식을 마무리하며 직선제개헌 등 5개 요구사항 발표.

6. 9 '6·10대회' 출정식 도중 연세대생 이한열군 경찰의 최루탄 맞고 뇌사상태에 빠짐.

6. 10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 노태우 후보 확정.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과 호헌철폐 국민대회' 전국적으로 일제히 개최. 제주에서는 이날 오후 제주대 학생회관 앞에서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범도민 시국 대토론회’ 개최. 진희종 오만식 윤춘광 양영운 오근수 등 학외인사들 시국연설. 집회가 끝난 후 교문 밖으로 진출해 경찰과 투석전.

6. 10 송형관 제주대 총학생회장, 서창우 부회장, 송영란 총여학생회장, 김정열 써클연합회장, 오용욱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김동철 인문대 학생회장 등 6명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단식농성(13일 정리집회를 가지면서 단식 마무리)

6. 21 오후 1시경 제주대 야외음악당에서 제1차 출정식을 갖고 교문 밖으로 진출해 경찰과 대치하다 봉쇄망을 뚫고 제주시 남문로터리까지 약 8km거리를 평화적 가두행진 전개. 비슷한 시각 제주시 중앙로 현대약국 옆 동문시장 입구에서 송형관 제주대 총학생회장 등이 중앙로 도로를 점거하고 연좌농성 돌입. 연도 시민들 크게 증가하며 오후 3시께 남문로터리에서 제주대에서 가두행진을 하며 내려온 팀과 합류하고 수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범도민시국대토론회를 개최. '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 '독재타도' '비폭력 평화적 시위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청앞 민정당사까지 가두행진을 전개한 후 오후 6시50분경 광양로터리에서 자진 해산.

6. 22 오후 1시 제주대 전 학과에서 기말고사 거부하고 야외음악당에 2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제2차 출정식을 가짐. 경찰 저지선 뚫고, 오후 3시15분경 광양로터리에 도착후, 서사로.중앙로.동광양로방면 3진으로 나눠 가두행진을 벌임. 오후 4시30분경 다시 합류한 학생 2천여명 및 시민 1천여명은 중앙로터리를 점거하여 범도민시국대토론회를 개최. 밤 11시경 시위 농성자를 위한 시민모금 등 시민들의 대거 호응으로 연좌농성은 오후 11시30분까지 계속되었으며 학생 1백여명은 중앙성당에서 철야농성에 돌입.

6. 23 오후 1시30분경 성당농성자와 합류키 위해 3차 출정식을 마친 학생 4백여명이 교수아파트 부근 및 교문 앞에서 가두진출을 저지하는 전경 2개 중대와 대치하여 오후 6시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도심 가두진출에 실패하자, 개인별로 흩어져 제주시 중앙로에 모임. 송형관 총학생회장 등 30여명의 별동대가 중앙로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연행.
뒤늦게 집결지에 도착한 학생들이 도로를 점거해 연좌농성을 벌였는데,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강경진압. 계속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제주시 동문로터리 일대에는 차량이 전복되고, 드럼통이 구르는 등 격렬한 시위전개. 밤 9시경 동문로터리에서 중앙로 방면으로 학생 2천여명과 시민 1천여명이 전경과 대치하여 '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몸싸움으로 경찰 저지선을 뚫고 비폭력.평화적 행진으로 중앙성당 농성자와 합류. 밤 11시30분부터 1시간 40여분동안 중앙성당에 모인 학생 및 시민들은 범도민시국대토론회를 개최하고 '연행학생 석방'을 경찰측에 요구, 새벽 1시10분경 연행자 23명 전원이 석방되자 자진해산.

6. 24 오후 5시경 시민 및 학생 5백여명이 중앙성당에 모여 26일 열릴 범국민 평화대행진의 강행을 결정하고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범도민 민주화 투쟁일지'를 시내 각 곳에 부착한 후 해산.

6. 26 서귀포YMCA 회원인 이영일 강방수 김창수 김두옥 오윤태 김성한 강현철 김성한 진희종 김경희 김미리 오영근 등과 서귀포민주청년회 윤춘광을 비롯한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오후 6시 경찰의 원천봉쇄망 속에서도 서귀포시 천주교 복자성당 앞에서 '독재타도'와 '민주헌법 쟁취'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 이들은 경찰력을 물리치고 동명백화점 일대를 가두행진하며 집회를 가짐. 이 사건으로 진희종 윤춘광 강방수 김창수 등이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그날 밤 11시 풀려남.

6. 26 학생 6백여명은 중앙로부터 광양로까지 사전 원천봉쇄된 경찰 저지선을 뚫고 중앙로.남문로터리를 점거해 농성시작.  오후 7시경 시위대는 1만명으로 불어나 중앙로터리에서 남문로터리까지 인파로 가득 메워짐. 참가자들은 시국대토론회를 열었는데 제주도내 3개 대학 성명서 낭독, '제주대 교수 양심선언서' 대독, '최루탄피해자 사후대책위원회 성명서' 낭독 등이 있었고 '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 '군부독재타도', '직선제 쟁취', '최루탄 추방', '장기집권음모 분쇄', '언론자유보장' 등을 주장하며 다음날 새벽 1시30분까지 농성 및 시국대토론회를 벌인 후 해산.

6. 29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시국수습을 위한 8개항을 제시하는 '6·29선언' 발표.

7. 5  시위 도중 경찰의 직격최루탄을 맞고 뇌사상태에 빠졌던 이한열 열사 끝내 숨짐.

7. 8 '민주헌법쟁취 제주대학교 추진위원회(위원장 송형관)' 주최로 민주광장에서 '고 이한열 열사 추도대회' 후 교내행진 진행, 분향소 설치 후 야당관계자 등 분향.

7. 9 제주전문대 총학생회 본관 1층 로비에 분향소 설치 후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분향.

7. 10 '애국학생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 거행. 서울시청 앞 노제에 100만여의 인파 운집. 전국적으로 300만 이상의 인파가 가두로 집결함. 시청앞 노제 후 청와대 진격투쟁 전개하다 경찰에 의해 해산.

7. 11 제주대생 200여명 광양보성시장 입구에서 '애국학생 이한열 열사 추도 및 살인정권 규탄 결의대회' 강행 중 공항경비대 소속 테러진압반을 투입하여 강제진압. 시위가 마무리될 무렵, 제주시 동문로터리에서 김윤삼양(제주대 법학)이 전경이 던진 돌에 맞아 오른쪽 얼굴부위가 함몰되는 부상 입음.

7. 13 <폭력추방 애국도민협의회> 명의로 [7.11 고 이한열 열사 추도 및 민주화실천 투쟁일지], [성명서], [투쟁속보] 등 제작 배포

7. 14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제주대학교 추진위원회> 명의 「청년학도, 애국도민께 드리는 글」 배포

7. 16 제주대 인권옹호위원회 김태완(당시 사학 4년) 등 7명이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김윤삼 부상사건'에 대한 경찰당국의 사과 및 현장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철야농성 돌입.

7. 17 '폭력추방을 위한 애국도민협의회' 소속 시민 11명이 중앙로 가톨릭회관 옥상점거 경찰당국의 사과 및 책임자처벌 요구. <폭력추방을 위한 애국학생대책협의회> 중앙로서 폭력추방 및 살인정권 종식을 위한 규탄대회 개최 가톨릭회관 앞 연좌시위
<재경제주도민 경찰폭력대책위원회> 결성 및 규탄성명서 발표

7. 18 <폭력추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이후 연동교회 농성 진행.

7. 19 민주헙법쟁취 제주대추진위원회, 애국도민대책위원회, 폭력추방 애국학생대책협의회 등이 연동교회에서 공동대책위원회 결성하고 제주도경국장 파면 등 5개항 요구 공동성명 발표.

7. 20 <폭력추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1차 폭력추방을 위한 규탄대회 개최. 소식지 「민주제주」 창간호 발간. 제주대 학생들 ‘폭력경찰 몰아내자’는 구호 외치며 제주시 중심가에서 시위.

7. 21 <폭력추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2차 폭력추방을 위한 규탄대회 개최. 폭력추방을 위한 제주도민 중재위원회 결성하고 경찰과 학생측에 중재 의견서 제출.

7. 22일 제3차 폭력추방을 위한 규탄대회 개최. 서귀포YMCA 회원 30명 농성투쟁 지지성명 발표 및 철야농성 돌입. 서울KNCC 사무실 단식농성 참가단 민주당 중앙당사 점거 단식농성돌입.  

7. 23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7. 24 <민주당 진상조사단(단장 목요상)> 제주방문. <폭력추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대변인 제주경찰서장 면담.
7. 26 연동교회에서 농성에 들어갔던 시민 학생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폭력추방을 위한 제주도민중재위원회'의 경찰당국과의 협상결과(8월12일까지 진상조사 후 적정한 조치를 취하고, 치료비 일체 부담, 경찰당국의 유감표명 등 5개항의 중재내용)를 통보받고 농성 해제.

8. 19 충남대에서 열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범식에 송형관 제주대 총학생회장 등 제주 학생 참가.

8. 23 제주문화운동협의회 출범.

8. 31 제주시 동광성당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제주본부 발기인대회 개최.

9. 6 제주YMCA 강당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제주본부 창립. 500여명 참석, 김경수 목사 등 11명 공동대표 확정 및 6개항 결의문 채택.

9. 26 제주국본 동제주지부 결성대회(성산포 천주교회).
10. 17 제주국본 서귀포지부 결성대회(서귀포복자천주교회) 개최. 대회 후 평화대행진 진행 중 4명 연행,

10. 24 제주국본 서제주지부(모슬포천주교회) 출범.

10. 30 13대 대선을 50여일 앞두고 통일민주당 분열. 김대중 평화민주당 창당.

10. 31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제주본부 주최 「거국중립내각수립 및 양심수석방을 위한 범도민대회」제주YMCA서 개최, 가두시위 중 32명 연행.

11. 17 제주지구써클연합회협의회 주최 「공명선거를 위한 제주청년학생 대동투쟁결의대회」 제주대 민주광장서 개최.

11. 25 제주대, 제주교대, 제주전문대학, 제주간호보건전문대학 등 제주도내 4개대학 제주대 사회과학대학 중강당서 「제주청년학생공정선거감시단 발대식」 개최.

11. 28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전국 12개 지역에서 개최한 '광주학살 및 12·12쿠데타 진상규명 시민대회'를 경찰이 원천봉쇄하면서 157명 연행.

12. 14 민주쟁취국민운동공정선거감시 제주본부 주최 「공정선거 쟁취 범도민대회」 천주교제주중앙교회서 개최.

12. 16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 당선.

12. 21 민주쟁취국민운동공정선거감시 제주본부 주최 「공정선거 감시활동 보고회 및 부정선거 규탄대회」제주광양성당서 개최. 

12. 22 제주지역 청년학생 부정선거폭로 및 규탄대회 개최.

** 위 민주화운동 약사 및 본문내용에서 사실과 다른 점이 있거나 의견을 달리 하시는 분들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책자 및 기사의 1차적 저작권은 저자인 윤철수, 그리고 기사 및 책 속에 담긴 사진콘텐츠는 서귀포6월항쟁기념사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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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2007-08-20 22:21:24
기사볼대와 책볼때 느낌이 어떨러진 보고 싶네요.

lyw 2007-08-13 09:57:36
아래 글쎄요님의 댓글의 요지는 뭔지?
제목이 잘못됐다는 것인지?
그리고 학생운동진영에 자금을 지원해주었다는 건 또 무엇인지?
유인물배포와 단식투쟁을 했다면 그런 구체적인 사실들을 제보하시면 될것아닌지요?
그리고 그런 내용을 묶어서 책을 내시면 더 좋겠죠
제주민주정당운동사라고...
구체적인 자료가 있다면 제보하시고 책도 만드세요

글세요 2007-08-12 22:51:00
역사를 기록한다는건 아주 중요하겠지요 물론 그로인한 모든 과오역시..
좀더 많은 분들을 만나고 당시 자료들도... 한번 잘못 정리된 역사는 돌이킬수 없다는 사실 잘 아실겁니다..거듭 부탁 드립니다. 재목 만이라도 바꾸시던가..

글세요 2007-08-12 11:24:58
당시 일반인들과 정당인들은 학생운동진영에 크던 적던 자금을 지원했으며 또한 85년부터 당신 신한민주당제주도당에서는 학생들이 나서기 전부터 수없이 유인물 배포와 학원안정법 당시 단식등 수많은 투쟁을 했는데..물론 당시 학생운동진영의 가열찬 투쟁은 높이 평가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목은 ....걍 제주학생운동사로 정정하시는게 어떤지요

타는 목마름으로 2007-08-09 17: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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