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03:47 (금)
스크린 돌아가자 드리워진 '기억'
영화상영 내내 상념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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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영 내내 상념 '눈시울'
  • 한애리 기자
  • 승인 2007.07.25 20:5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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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화려한 휴가' 주인공 오용태씨와의 영화데이트

25일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는 1980년 5월 18일부터 10일간에 걸쳐 있었던 광주항쟁의 이야기를 사실적 묘사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그간 5.18민주항쟁을 '급비리'에 부쳐 금기시한 것은 아니지만 27년 전 전남도청 앞에서 무고하게 쓰러져간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광주시민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정면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기존 5.18을 소재로 한 '모래시계', 영화 '박하사탕' 등과 다른 점이며, 우리는 시민들을 초점에 맞춘 첫 영화라는 점에서 '화려한 휴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는 아무 이유도 없이 계엄군이 겨눈 총과 몽둥이에 맥없이 피흘리며 쓰러져가는 가족과 친구, 이웃을 보면서 자석의 이끌림처럼 스스로도 모르게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던 광주의 학생과 시민들에게 카메라의 렌즈가 옮겨졌다.

카메라의 중심에는 흑백TV 한 대에 도란도란 모여 '전설의 고향'을 보며 두려움과 공포를 함께 느끼던 순박하고 지극히 평범한 광주지역 한적한 농촌사람들과 짐 꾸러미를 이어든 할머니에게 차마 택시비를 달라고 하지 못해 사비로 사납금을 채우는 마음씨 고운 택시 기사,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백의의 천사' 간호사, 대학 진학이 최대 목표였던 학생들,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해 그들이 왜 거리로 나갔어야 했는지, 그럴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을 호소한다.

# 5.18 실존 인물 오용태씨와의 '화려한 휴가' 영화 데이트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를 바꾼 이 거대한 사건 속에는 제주출신 오용태씨(52)가 있었다.

오씨는 1980년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 전남대학교 건축공학과 4학년 졸업반이었다.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던 오씨는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광주 각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함에 따라 친구와 피신해 있었다.

그러던 중 오씨는 무고한 시민들이 힘없이 쓰러져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슴 속 깊이 솟구치는 뜨거운 무엇인가를 느끼며 5월 21일 오전 광주시민들과 함께 전남도청 광장으로 나가 시위에 가담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씨는 총격을 받은 시민을 부축하던 중 자신의 왼쪽 다리도 총격을 받고 쓰러지고 말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버린 왼쪽 무릎은 결국 절단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당시 총을 맞은 충격은 악몽으로 남아 그를 괴롭혔다.

더욱이 꿈많던 대학교 4학년.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그동안 준비했던 마스터플랜을 한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의 몸'이라는 위치에서 냉정히 짚어가야 하기에 당시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한다.

 

그런 그와 '화려한 휴가'가 개봉하는 25일 영화데이트 일정을 잡았다.

5.18. 이땅에 새로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뿌리내리는 중요한 역사의 단초가 됐지만 다시는 입에도 담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 응어리진 상처를 다시 들춰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민주화 역사의 산증인과 그해 태어난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의 교감, 즉 직접 5.18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들이 당시 얼마나 많은 희생으로 지금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직접 깨우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용기를 냈다.

"참 기대되네요. 어떻게 만들었을지... 사실 오늘 기회가 아니었으면  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볼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하고 있었으니까요."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그는 '화려한 휴가'에 대해 조심스럽게 기대를 해본다. 그러나 아픈 기억은 어쩔 수 없었는지 말한다. 그리고 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 스스로 일어나 공수부대와 맞서 싸웠던 민중의 힘에 대한 믿음도 강조한다.

"'다스림'과 '지배'는 천지차이입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각계 각층의 특성을 잘 잡아주면서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것이죠. 억지스럽게 바꾸려는 것과는 다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연두색 포니 택시와 그림 같은 가로수 길, 바람에 넘실대는 푸른 보리밭 등의 초여름 미풍.

이때만 해도 오용태씨는 한 때 아름다웠던 대학시절 추억에 희색을 띠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대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무차별한 몽둥이질에 피를 토하는 학생들의 장면이 나오기 시작하자 거친 한숨을 토해냈다.

# 27년 전 자신의 모습에 '뜨거운 눈시울'

1980년 5월 21일 상황을 담은 씬에서는 그는 숨 쉬는 것 조차 멈춘듯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의 왼쪽다리를 잃게 한 그날이었다.

 

계엄군이 곧 철수할 거라는 도지사의 시위해산 종용 방송에 금남로에 모인 시민들은 계엄군이 물러갈거라는 반가움에 "잘 가세요~ 잘 가세요" 노래를 부르며 안도하는 찰나 확성기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진다.

시민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따르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는 시민들에게 총부리가 겨눠졌다. 그리고 이후 선두에 서있던 시민, 학생들은 무차별적으로 쓰러져가고 남은 시민들은 총을 피해 정신없이 달린다.

4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한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한 대학생이 40대 남자를 일으켜 부축하려는 순간 총알이 대학생의 왼쪽다리를 관통한다. 대학생은 안간힘을 다해 피흘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높은 포복으로 기기 시작했다.

이 장면이 묘사될 때 오씨는 좌석에 편안히 앉지도 못하고 엉덩이만 의자 끝에 걸터앉아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름아닌 바로 오용태씨를 재연한 장면이었다.

깊은 한숨을 토해내던 그는 결국 감정이 복받쳐 상영관을 나와 세수를 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당시 내 모습과 정말 흡사하네요. 차마 못보겠어요. 이내 마음을 다 정리한 줄 알았는데..."

말을 다 잇지도 못할 정도로 울컥한 마음이지만 끝까지 담담한 모습을 보이려는 그의 모습에 더욱 슬퍼짐을 느낀다.

오씨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영화를 보겠다며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 "이 땅에 또 다시 그런 비극은 없어야 하죠"

오용태씨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너무 잔인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라고 말한다.

당시 현장에 없던 사람들이 봤을 때는 더없이 참혹하고 잔인했음직한 상황들인데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고 잔인했는지 상징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그의 말이었다.

오씨는 "나름대로 현실적으로 묘사가 잘 돼 있어서 그때 장면들이 생생히 떠오른다"면서 "비극적이고 잔인한 아픔들을 유쾌하게 해학적으로 풀어내서 지루한 느낌은 없었는데, 지난 역사에 대해 지나치게 감성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자녀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피력했다.
"아이들 스스로 알아야 한다. 부모가 역사 억압에 의해 장애를 갖는 아픔을 겪었노라고 하면 우리 아이들은 또다시 편견의 색안경을 끼고 우리 역사와 우리 사회를 바라보겠죠. 그것이 가슴 아픔 우리의 기억을 치유하는 길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역사가 있는 곳 아프지 않은 상처가 없는 곳이 없다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정치권력에 이용당해 대규모 학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죠. 그런 비극은 또 다시 없겠죠."

함께 동행하는 동안, 그는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서면 작은 바람도 피력했다.
"이땅에 또다시 그런 비극은 없어야 합니다. 저도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데 잘 되지 않네요. 요즘 개혁, 혁신 얘기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의식수준이 함께 높아져야 만이 개혁과 혁신도 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요즘은 대중의 의식수준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 언론매체들이라고 할 수 있죠. 미디어제주도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매체로 자리잡아가길 바랍니다."

어렵게 잡은 동행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걸음은, 27년전 일이 악몽처럼 다시 떠오르는 듯, 무겁게만 느껴졌다. 


*<타는 목마름으로> 책자 및 기사의 1차적 저작권은 저자인 윤철수, 그리고 기사 및 책 속에 담긴 사진콘텐츠는 서귀포6월항쟁기념사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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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2007-07-26 22:02:29
한 편의 숨막히는 소설을 보는 듯 합니다. 기사가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소리입니다.
민주주의 역사는 그래서 피를 먹는 나무라고 한것 같습니다.

귤림 2007-07-26 21:53:15
큰 이야기를 작은 이야기로 다루어 다시 큰 이야기가 되게 하는 기사입니다. 제주에서 상영되는 광주의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가 되고, 다시 우리 이야기는 광주의 이야기가 되고, 온 나라의 이야기가 됩니다. 한 개인의 작은 이야기가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정의감을 샘솟게 하고 아릿다운 심성을 울릴 수 있게 합니다. 인터뷰 기사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