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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통일운동의 ‘격세지감(隔世之感)’
<데스크논단> 통일운동의 ‘격세지감(隔世之感)’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5.06.01 18:0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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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해야 할까.

사실 우리 사회에서 자유스럽고, 대중적으로 ‘통일’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6.15공동선언문이 발표된 2000년부터 ‘통일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조국이 분단된 1945년 이후 통일운동은 한시도 쉼없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6.15공동선언 이전까지 통일운동에는 언제나 정권의 통제와 억압이 가해졌다.

‘통일’에 대한 얘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무 민감하고 미묘한 사안이었다. 아무리 그 논의가 순수한데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공안당국에 의해 색깔론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한 한 국회의원이 수모를 당했던 일은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남과 북이 통일돼야 바람직한가를 모색하는 일명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는 극히 금기시됐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제시한 통일방안에 옳거나 그렇지 못하다라는 표현도 정권은 매우 두려워했다. 통일방안에 대해 비판하거나, 그 내용 중 일부가 북측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조금만 비슷해도 서슬퍼런 국가보안법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6.15선언실천 제주본부 결성
1987년 6.10항쟁 이후 통일운동도 거세게 일어나면서 공안당국과 통일을 염원하는 민중간 대립각은 더욱 극명하게 세워졌다. 그러나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했다. 범민족대회 등 통일관련 행사에 참가했다가, 아니면 지극히 당연한 통일의 필요성을 주창하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간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남북 정상이 분단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만나 손을 맞잡음으로써 통일의 역사는 새로 쓰이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도 발표됐다.

이에따라 어두운 창고 속에서 오랫동안 갇혀 있던 ‘통일’이라는 논제도 밝은 햇살 속에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그로부터 5년 후인 지난달 31일.

제주시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 5돌과 조국광복 60돌을 기념해 지난 3월 남과 북, 그리고 해외 대표들이 금강산에서 합의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추진결의에 따라 남측준비위원회 제주본부가 결성된 것이다.

남과 북, 해외 대표들은 6.15공동선언은 분열과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적 화해와 단합,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놓은 자주선언, 평화선언, 민족대단결 선언이며, 민족적 자주역량으로 평화와 통일로 가는 활로를 밝힌 민족공동의 통일이정표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남과 북은 금강산에서 채택한 6.15공동위원회 결성선언문을 통해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와 평화를 지켜내고 단합과 통일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자”고 다짐했다.
또 6.15공동선언에 천명된대로 나라의 통일문제를 남에게 의존해서가 아니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과 지혜를 합쳐 풀어나갈 것을 결의했다.

제주본부 결성식에서도 참석자들은 4.3항쟁 정신계승과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의 실현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제주본부는 6.15공동선언에 동의하는 제주도내의 각계각층, 정당, 종교, 시민.사회단체, 개별인사까지 포괄하는 제주지역 통일운동의 구심체로 승화시켜 나가기로 했다.

#통일운동과 평화실천의 연계
그런데 이날 행사에서는 ‘격세지감’이라 느낄 만큼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북측준비위원회에서 보내온 제주본부 결성 축하 글이 낭독된 것이다.

“력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 5동을 앞두고 겨레의 통일열기가 더 한층 높아가고 있는 속에 결성을 선포하게 되는 남측준비위원회 제주본부에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말미에 ‘주체 94년(2005년) 5월31일’이라고 적혀 있는 북측 준비위의 축하글에는 4.3항쟁의 역사를 지닌 제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의 특성이 적절히 감안된 듯 했다.

“지난날 외세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자주권을 무참히 유린당해온 제주인민들이 진정한 ‘평화의 섬’을 건설하기 위해서도 겨레의 거세찬 통일대행진에 마음과 뜻을 같이 하게 되리라고 굳게 믿으면서 귀 본부의 결성을 다시한번 열렬히 축하하는 바입니다.”

또 한가지, 이번 제주본부 결성식에는 제주도내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4.3단체 및 장애인단체, 민주노동당 제주도당,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대중적 통일운동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올해 1월 제주가 ‘세계 평화의섬’으로 지정된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분위기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오랫동안 짓눌려 온 억압의 힘이 컸기에 ‘격세지감’의 느낌도 컸을 수도 있다.

요즘 제주에서는 이러한 통일기운이 싹트는 것과 동시에 평화의 섬 지정에 따른 후속사업 추진이 한창이다. 이와 맞물려 한가지 바람이 간절하다. 그것은 순수 민간주도의 제주본부 통일사업과 평화의 섬 실천사업을 서로 연계해 추진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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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05-06-01 20:27:48
잘 읽었습니다...
건필 바랍니다

총협 2005-06-02 15:01:09
옛생각납니다.
제목보는 순간 글쓴이가 누군지 알았습니다.
전대협세대의 통일사고는 역시 남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