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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사라져버린 ‘마음의 여유’
<데스크논단>사라져버린 ‘마음의 여유’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5.05.17 17: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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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며 겸손해하던 해군본부가 갑자기 '조급함'으로 돌아선 이유는 뭘까.

최근 해군 관계자들은 다소 조급해하고, 신경질적인 과민함을 감추지 못한다.

화순항 해군기지가 제주 세계평화의 섬과 양립할 수 있는 사안인지, 아니면 절대적인 모순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해군측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도민대책위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

해군측의 과민반응은 우선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종교인단체 및 공무원노조까지 가세한 도민반대대책위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김동문 해군기지추진기획단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 "해군기지반대 도민대책위원회 주최의 토론회는 토론자 구성이 일방적이기에 추진기획단은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토론회가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공정한 입장에서 상호토론이 되기보다 반대 성토성격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 불참하기로 했다"며 "토론자 10명 가운데 9명이 반대쪽 사람들인데, 토론회가 어떻게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공공기관이나 언론사 토론회에는 적극 참여해 어느 것이 진실이고 제주도민을 위한 것인지를 밝혀 나가겠다"고 밝힌 후, 도민반대대책위원회와 대화를 하지 않을 생각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차차 해나가겠다"고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였다.

# '제주 문제'가 아니라 '화순리 문제'?

특히 그는 '지역반대 대책위원회'와 '도민반대 대책위원회'를 분명히 구별했다.

그러면서 "지역주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반대대책위원회와는 대화를 적극 하겠지만, 도민반대대책위원회와는 차차 토론을 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는 지역반대대책위는 '당사자'이고, 도민반대대책위는 당사자가 아니다는 식의 인식이 깔려있는 듯 뉘앙스가 전해졌다.

즉, 화순항 해군기지건설 문제를 평화의 섬인 제주 전체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 중에서도 안덕면, 그 중에서도 화순리로 국한해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편협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두번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

그럴리야 없겠지만 도민대책위에 대한 해군본부의 과민한 반응은 2002년의 ‘실패경험’이 재연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지역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를 분리시켜냄으로써 일방적 반대분위기를 차단하려는 일종의 ‘작전’차원에서 나온 듯 보인다.

지역주민들에게는 해군기지가 건설될 경우 ‘실’보다 ‘득’이 훨씬 많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며 반대분위기를 찬성분위기로 전환시키고, 도민대책위는 철저히 배제시키는 방법으로 홍보활동을 하려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17일 기자회견에서 김동문 단장과 해군 관계자들은 여러차례에 걸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소속언론사와 기자이름을 먼저 밝히고 질문하라”

“(한 기자의 질문이 잇따르자) 다른 사람도 질문하도록 질문 그만받겠다”

“혹시 시민단체 사람이 기자회견장에 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자 신분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다”

# 동의구할 때까지 무작정 추진한다?

이와함께 해군본부측은 “지역주민이 반대가 거세면 사업추진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의 내용이 유효한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제주도민이 이해할 때까지 동의를 구하겠으며, 도민들은 반드시 동의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특히 김 단장의 이러한 답변 속에는 일정한 시기를 놓고 도민들의 동의여부를 판단하기 보다는, 동의를 해줄때까지 막무가내로 기다리며 사업추진을 하겠다는 뜻으로 전해졌다.

이는 도민들의 동의를 얻을 때까지 계속 설득을 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당초 반대여론이 높으면 추진하지 않겠다는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물론 김 단장은 말미에 올해말까지 도민동의를 구한 후, 여론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지만, 해군의 입장이 ‘겸손’에서 ‘강경’으로 선회한 것 마냥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해군본부가 이미 ‘말바꾸기’에 들어갔다고 꼬집었다.

도민대책위에 대한 거부감, 토론회 불참선언, 동의 얻을때까지 지속적 추진 등 해군본부의 일련의 태도는 이 사업의 재추진을 처음 밝힌 3월의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달 1일 제주도청을 방문했던 해군본부 이창우 기획관리차장(준장)은 김태환 제주도지사에게 해군기지건설계획을 설명하면서 “제주도민들이 반대하면 강행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아직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필요하고, 제주도민의 이익도 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나가자”고 말한 바 있다.

그 때만 하더라도 해군측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이 때문에 사실 2002년 당시와는 뭔가 다른 방법으로 도민사회의 토론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컸다.

# '말 바꾸기'에 '사라져 버린 여유'

그러나 최근 해군본부의 모습을 지켜보면 이러한 기대는 한낱 기대에 불과했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도민대책위를 배제시키는 방법의 홍보전략과 일관성을 흐트러지게 하는 ‘말 바꾸기’는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해군측이 진정 제주평화와 안보를 생각한다면, 좀더 진지한 토론이 되도록 ‘열린 마음’을 보여야 할 것이다. 스스로 자기 입지를 좁혀나가게 하는 ‘편협함’은 오히려 제주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임을 해군본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해군측의 사라져버린 ‘마음의 여유’가 아쉽다.

<윤철수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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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2005-05-17 19:10:49
해군이
그것도 국민과 함께하는 해군이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그동안 표정관리하랴 얼마나 힘들었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