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또는 현안과 관련해 논의와 결정에 있어 '우선순위' 결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무엇을 우선으로 삼고, 뒤로 미루느냐는 문제는 단순히 일의 효율성 차원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순위기가 제대로 돼 있으면  여론을 집약시킴으로써 분열을 막고, 결과적으로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다.

우선순위가 잘못됐을 때는 효과가 반감됨은 물론 여론이 사분오열될 우려가 크다. 시기에 따라 어떤 현안을 최우선적 과제로 삼느냐 하는 문제는 행정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한미FTA협상 타결에 따른 위기와, 해군기지 문제는 논의의 우선순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4월2일 한미FTA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에 제주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감귤산업 기반 붕괴는 물론 자칫 제주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들 한미FTA협상 타결결과는 제주에 있어 그야말로 비상시국이다.

그런데 절박한 상황임에도 FTA는 최우선 과제가 아니라, 해군기지 보다 한수 아래의 현안으로 밀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4월2일 한미FTA협상 결과가 발표되고, 국회비준 이전에 협상내용을 수정토록 요구하겠다던 강경한 의지도 며칠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는 모습이다.

문제는 4월10일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김태환 제주지사가 제주도의회 군사기지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여론조사 방법으로 해군기지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밝히자, 제주사회 여론은 FTA에서 해군기지로 급선회했다.

여기에 김태환 제주지사가 4월12일 광주고법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것은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정국을 더욱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FTA는 수면 아래로 들어가게 하고, 해군기지를 제주사회의 최대 이슈로 부상시켰다. 제주도는 FTA협상결과에 따른 후속조치로 '특별기획단'을 만들어 운영하겠다고 밝혔지만 행정부지사를 단장으로 해 각 국장을 팀장에 배치해 운영되는 기획단은 확대간부회의를 몇번 더 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조차 이해가 안되게끔 했다. FTA는 시들해지고, 해군기지만 뜨고 있는 것이다.

#FTA타결 일주일만에 '해군기지 로드맵' 발표...도민여론은 '분열'

FTA협상 타결에 따른 대응책에 도민역량을 총 집중시켜야 할 제주도정이, 협상 타결 일주일만에 발표한 '해군기지 여론조사 실시방침'은 도민여론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어느게 우선인지조차 도민사회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허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제주도의 '해군기지 로드맵' 발표 후 도민사회 여론은 분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분열은 FTA논의를 수면아래로 가라앉게 하고, 해군기지 논의를 급부상시키고 있다. FTA 협상결과를 받아안고 큰 불안에 휩싸인 농가에서는 FTA협상에 따른 대응책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면서 '해군기지 로드맵'을 서둘러 발표한 제주도 당국에 많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설령, 제주도당국의 주장대로 FTA 협상타결이 있은지 8일만에 해군기지 로드맵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치더라도, 결과론적으로는 제주사회에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도당국은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FTA 통곡소리 터져나와야 할 제주에, '해군기지' 논쟁만 가득하니...

18일 열린우리당을 시작으로 해 앞으로 한나라당 등 국회 차원의 FTA피해실태조사에 나선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에서 제주 피해조사에 와서 과연 무엇을 느낄 것인지 궁금하다. FTA협상 타결결과가 발표된 후 지역단위로 최대 피해지역은 단연 제주다. 정부와 국회도 이점은 충분히 알고 있다.

감귤산업의 붕괴는 제주경제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제주에 내려와 피해실태조사를 하는 중앙인사들은 아마도 잔뜩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제주 농업인들의 원망과 항의를 어떻게 감당해낼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주에서 FTA에 대한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해군기지에 파묻혀 내면으로만 끙끙 앓고 있을 뿐이다. 물론 18일 대규모 집회가 계획돼 있기는 하지만, 해군기지로 갈라진 민심 때문에 FTA 반대집회에 얼마나 많은 역량이 집중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중앙정부와 국회에서는 제주를 어떻게 볼까, 한번씩 생각해볼 만하다. FTA 때문에 통곡소리와 원성이 터져나와야 할 제주에 '해군기지' 찬반논쟁만이 가득하니, 국면전환도 이런 국면전환이 없을 것이다.

#해군기지 로드맵 발표 한방에, FTA 여론은 수면 밑으로...

FTA때문에 잔뜩 달아올랐던 분노와 우려가 '해군기지 로드맵' 한방으로 날라가 버렸다. 혹자는 FTA 협상 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얘기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협상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제대로 된 대응책이라도, 그 협상내용에 상응하는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을 최대한 끌어오려면, 과연 지금처럼 FTA를 내팽겨치고 해군기지 논의에 불을 지피는 도정의 '작전'이 옳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제주에 직격탄을 줄 FTA 파고가 몰려옴에 따라 도민역량을 모아 총력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에, 제주도당국이 그 역량을 '해군기지'로 분산시켜 버린 꼴이 되어 버린 셈이다.

'해군기지 로드맵'이 왜 하필 FTA협상이 타결된 후 8일만인 4월10일이었을까. 차라리 1-2개월만 더 늦췄더라도, FTA에 대한 도민사회의 대응은 이렇게 무기력하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몇몇 의원들은 아직도 FTA 대응에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FTA 대응에 있어서는 제주도민 누구 하나 이견이 없이, '감귤산업 사수'라는 공통분모 속에 어깨를 매고 구호를 외칠 수 있다. 도민여론에 있어 FTA만큼 '의견 일치'를 보는 사안이 지금까지 몇 있었는가. 전 도민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도민역량 결집이 아닌가. 도민역량을 모으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좋은 사안을 '시기조절 실패'로 날려버린다면 이 또한 후에 평가를 받아야 할 일이다.

양대성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이 16일 임시회 개회식에서 해군기지 여론조사 문제는 도당국과 의회, 찬성측과 반대측이 서로 협의해 채택을 하자고 권고했다. 양 의장의 이러한 의견은 사실상 해군기지 여론조사 실시방침에 대해 도민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너무 급하게 달리는 것에 대한 제동의 성격으로 풀이된다.

#해군기지 로드맵 한두달 늦어진다고 미치는 불이익은 뭔가

의회의 시각도 해군기지 로드맵이 시이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대해 도당국도 해명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최근 2단계 제도개선안까지 제주가 중앙정부에 지나치게 요구만 해왔다는 것이다. 이제는 제주에서도 국책사업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정이 해군기지 유치 결정이든, 반대이든 상관없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는 점을 도당국은 강조한다.

하지만 이 또한 어부성설이다. FTA가 타결된 후 8일만에, 시기적으로  해군기지 로드맵을 발표할 수 밖에 없었다는 도당국의 변명은 여러번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왜 4월10일에 FTA 분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면 발표했을까. 5월10일은 안되고, 6월10일은 왜 안되는가. 한달 두달 늦게 결정됐다고 해서 제주에 오는 불이익은 무엇인가. 결정이 한두달 늦게 된다고 해서 제주에 미치는 불이익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면서, 단지 중앙정부와의 관계를 구실로 로드맵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것은 도민들을 설득시키기에 부족함이 있다.

#두마리 토끼 잡으려다 둘다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 현안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매우 중요하다. 해군기지 논의, 그리고 생존권과 직결된 FTA 대응에 있어 어느 것이 먼저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혹, 도당국은 2가지 모두 지금 풀어야 할 과제라고 주장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도당국은 2가지 현안을 동시에 풀어갈 수 있을지 모르나, 도민여론은 2가지를 한꺼번에 받아안고 논의를 하기에는 벅찬게 현실이다.

4월 제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잘 직시해야만 한다. 어느게 우선인지.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다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다.

<윤철수 / 미디어제주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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