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원이 폭력 연행되도 팔짱끼고 '강건너 불구경'
지난 4월13일 제주특별자치도 청사는 '도민의 시대'라는 큼직한 슬러건이 무색했다. '국방장관의 행차'에 제주도민이 공권력의 이름으로 짓밟힌 날이었기 때문에 '도민의 시대'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정작 사태가 발생하자 경찰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요청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공권력을 행사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도당국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현관문 앞을 차지하고 앉아 조치를 취하게 됐다'는 어설픈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가 발생하기 전 과정을 지켜본 취재진의 마음은 제주도 당국에 1차적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폭력적 강제진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다분히 도당국이 그러한 상황을 유도했다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사실 이날 상황은 돌발적으로 발생했다. 오전 10시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해군기지 반대 기자회견을 했던 남원읍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마친 후 도청으로 발걸움을 옮겼다. 김태환 제주지사를 면담하고 국방부 장관의 제주방문을 취소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로봇같이 움직이는 공무원...도청은 '정신병원'보다 더해
이들이 도청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청원경찰과 도청 총무과 소속 공무원들은 이들을 현관밖으로 모두 몰아냈다. 그리고는 청사내 모든 출입문을 봉쇄했다. 이들이 '도지사를 면담하고 가겠다'는 말을 수차례 했지만, 도청 공무원들은 '행정서비스'를 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로봇같이 움직이는 '친위대'처럼 행동했다.
처음 도청을 찾은 주민들은 고작 10여명이었다. 이 10여명의 주민을 제지하기 위해 커다란 도청 청사는 '정신병원' 보다 더 지독하게 출입문을 철저히 봉쇄했다.
11시를 전후해 굳게 닫힌 문은 점심시간이 되어도 열리지 않았다. 청사내에 있던 공무원들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비밀통로로 청사 밖을 빠져나갔다. 청사내 기자실에 있었던 취재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번 청사밖을 나온 사람은 다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도당국의 청사경비는 철통같았다.
이러한 상황을 전해들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속속 현관앞으로 모여들었다. 눈물로 호소하는 위미리 해녀들도 현장에 도착했다. 천주교 정의사회구제단 소속 신부들과 수녀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제주도의회에서도 김혜자 의원이 제일 먼저 도착해 주민들과 자리를 함께 했고, 이어 오옥만 의원과 문대림 의원도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그런데, 도당국이 한 일이라고는 딱 두가지다. 하나는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후 총무과장이 주민들 앞으로 가서 '자리를 비키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를 한 것이다. 두번째는 낮 12시가 조금 넘어서 역시 총무과장이 와서 똑같은 말을 반복한 것이다. 주민들이 뭐라고 항의했으나 총무과장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채 곧장 자리를 떴다. 마치 제 할일은 다했다는 표정이었다.
이어 오후 1시께 경찰력이 도청내에 속속 배치되고 있는 가운데, 의아스런 광경이 펼쳐졌다. 갑자기 청사내 있던 공무원들이 청내방송을 듣더니 한꺼번에 현관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연좌농성을 벌이는 주민들 옆에 버티고 서며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모두 끌어낼 것 같은 위압적 태도를 보였다. 이들 주민을 설득하려는 공무원은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폭력진압 지켜보는 공무원들 '팔짱', 도의원 실신에도 '강건너 불구경'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제일먼저 여경들이 농성장으로 달려들어 주민들을 연행하는 것에 항의하며 저지하는 김혜자 의원을 끌어내렸다. 이 과정에서 김혜자 의원이 경찰에 의해 질질 끌려가며 수모를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100명 남짓한 공무원들은 '남의 일'같이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문대림 의원도 경찰차에 실려 연행되는 광경이 목격됐다. 역시 공무원들은 침묵했다. 한 국장급 간부공무원은 경찰과 얘기를 나누며 여유있는 표정을 보였다.
김혜자 의원이 실신하면서 도청 앞 땅바닥에 쓰러져있는데도, 공무원들은 누구 하나 뛰어가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 예산안과 안건 심사 때 그토록 도의원들에 대해 각별한 예우를 보이던 그 마음은 모두 거짓이고 위선이었단 말인가.
신부님들도 치욕스럽게 자리에서 끌려 나왔고, 수녀님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모든 광경을 그렇게 지켜본 공무원들. 그들은 무엇을 했나. 경고메시지 두번 한 것 이외에 그들이 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툭하면 출입문을 봉쇄하면서 속좁은 내를 드러내는가. 이것이 제주특별자치도가 추구하고자 하는 '뉴제주운동'의 본질인가.
상황이 종료된 후 청사내에 있는 공무원, 심지어 사업본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까지 총 동원해 현관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게 도열해 서서 국방부 장관을 보호하는 공무원들의 행동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방부 장관의 '행차'는 중요하고, 도민들이 폭력적 공권력에 유린당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제주도정의 문(門), 선택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나
얘기를 돌려, 그럼 사태의 원인이 되었던 현관 앞 농성만 놓고 보자. 해군기지 문제는 제주현안이다.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도민 누구도 찬성입장이나 반대입장을 내놓을 수 있다. 어느 쪽이 다수이건, 소수이건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은 모두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찬성입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면 도청 현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 조차 제지했을까?
걸어 잠궈진 문에 제주 민심은 들어갈 곳이 없었다. 제주도당국은 공무원과 청원경찰을 동원해 도청 문을 걸어 잠그고 면담 요청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대화의 손길을 뿌리쳤다. 지난 4일 위미1리를 방문해 "도민들이 대화를 원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대화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는 김태환 제주지사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제주도당국의 이러한 행태는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제주본부 사무실 폐쇄를 위한 행정대집행 후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을 제지하기도 했다.
지난 11월에는 현직 국회의원인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경찰의 제지로 제주도청 내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FTA저지 도민운동본부도 도청에서는 달갑지 않는 조직 중 하나다. 이 단체가 수차례 도청 현관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현관은 커녕 정문 내에도 들어서지 못하게 도당국은 그렇게 공권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제주도청이 잠겨 있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지난 3월26일 한미FTA 협상 타결을 앞두고 감귤 사수를 위한 삭발투쟁에 돌입한 제주지역 농업인단체 대표들에게 제주도청 2층 회의실을 사용토록하는 배려(?)도 있었다.
이런 제주도의 이중적 잣대, 도정에 호의적인 단체와 인사들에게는 상당히 개방되는 반면, 힘없고 소외된 이들에게는 고압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태발생 후, 제주도정은 뭘 했는가
세번째, 사후조치를 생각해도 도당국은 너무 했다는 생각밖에 달리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태 당일 부상자도 잇따라 발생했다. 연행 과정에서 두통을 호소하는 여성이 있었는가 하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버스에서 추락해 얼굴에 철과상을 입기도 했다. 제주경찰서에 연행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 부위원장은 경찰조사 후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며, 위미1리 주민2명도 경찰 항의 과정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공무원 누구하나 이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국방장관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을 뿐이다.
60여명이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는데도, 도당국은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않았다. 물론 도당국의 요청으로 강제진압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도당국이 그들에 대한 사후 배려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일런지 모른다.
위미리 해녀들만이 연행자에 대해 몸무림쳤다. 위미리 해녀들이 제주경찰서에서 14일 저녁까지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연행자 석방을 위해 고군분투했을 뿐이다. 김혜자 의원과 오옥만 의원, 현우범 의원 등도 경찰서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국방장관에 대한 예우만 있었을 뿐 정작 제주도민들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틀에 걸쳐 전 과정을 취재하면서,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제주특별자치도'인지 찾아볼 수 없다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제주도정의 양면성. 마치 '마녀사냥'을 하듯, 해군기지 반대 도민들을 편향적 시각으로 배척하려는 공무원들. 그리고 김태환 지사와 일부 도의원들.
선거 때만 되면 도민 한명 한명을 찾아다니며 악수를 권하고, 사소한 얘기도 흘러듣지 않겠다는 듯 결연한 의지를 보였던 단체장과 지방의원. 그들의 그런 초심은 다 어디로 갔는가.
자그마한 얘기도 흘러듣지 않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정책도 펴 나가겠다던 그 약속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제주병(病)을 치유하겠다던 뉴제주운동의 그 외침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국방장관의 행차'가 제주도민의 절규 보다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제주특별자치도에는 도정에 반하는 의견을 가진 도민들은 발붙일 곳이 없는 것인가.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수렴해 반영하고, '뉴제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도정, 이것이 우리 도민들의 바람은 아닐까?
차렸으면 좋겠는 데... 종잣돈 좀 마련하게 취직 좀 시켜줘...근데 얼마전에 도청에서
허드렛 일 한 적이 있는 데, 그래도 도청공무원이 기자들 보다는 훨씬 청렴해...
똥묻은 개야 겨묻은 개보고 그러지 마. 정말 배고파 죽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