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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고다…듬돌들어 힘 겨루다
내가 최고다…듬돌들어 힘 겨루다
  • 강상돈 시민기자
  • 승인 2007.02.20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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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마을 힘의 상징 '듬돌'

제주는 돌문화의 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만큼 지천으로 깔린 것이 돌이기 때문이다.

돌은 훌륭한 건축자재가 되기도 하고, 돌하르방과 같이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친구도 된다.

무덤을 지키는 '동자석',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을 통하게 하는 밭과 밭 사이의 '밭담', 길목에 쌓아놓은 '올레', 죽어서는 말이나 소가 들어가지 못하게 무덤 주위에 쌓아 놓은 '산담', 마을 어귀마다 힘자랑을 하기 위해 놓아둔 '듬돌' 등 돌문화가 존재해 왔다.

이렇듯 제주 사람은 돌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돌에서 시작해 돌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돌문화 가운데서도 둥글둥글한 돌을 들어올리는 '듬돌'은 예부터 제주도에서 많이 성행했다.

듬돌을 들어올려 힘겨루기를 하는 풍습은 전국에 전승되고 있으나 제주도에서만큼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만큼 '듬돌'은 제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진 민속놀이기도 하다.

제주도 서부 지역에서는 '듬돌'이라 일컫고, 동부에선 '드름돌'이라고도 부른다.

또 '등돌', 'ㅤㄸㅡㅇ돌' 등 여러가지 용어로 부른다.

'듬돌'은 말 그대로 '들어올리는 돌'이란 뜻이다.

듬돌은 마을마다 50kg 정도의 둥근 돌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 놓고, 마을장정들이 평소에 힘을 기르거나 힘겨루기를 위해 들었던 돌이다.

듬돌은 둥글어서 들어올리기가 쉽지만은 않다.

듬돌은 마을 힘의 상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돌을 놓아두려 했다. 그러면 그 마을에 그 듬돌을 들 장사(壯士)가 반드시 난다고 믿었다.

큰 듬돌이 있는 마을은 힘이 센 장사가 있다고 믿어 외방인이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듬돌이 작아 들을만하면 외방청년은 비아냥거리며 그 돌을 집어던져 마을 청년에게 창피를 주기도 했다.

반대로 마을 청년들이 듬돌들기에 자신이 있을 땐, 외방 청년에게 들어보게 해서 못 들면 창피를 주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듬돌을 들어보고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기도 하고, 여러 장정들이나 마을 사람들 앞에서 듬돌들기 경기를 해서 시상하기도 했다.

동네 잔치의 여흥으로 듬돌들기가 이뤄지기도 했다.

뚜렷하게 성년의례가 없던 제주에서 '듬돌들기'는 성년이 됨을 인정하는 관례(冠禮)로 삼기도 했다.

소년은 무거운 돌을 들어올려 몇 발자국을 옮길 수 있을 정도의 탄탄한 힘을 보여줌으로써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인정받았던 것이다.

듬돌을 들어올리는 방법엔 두 손으로만 들어올리기, 가슴에 붙여 들기, 배에 붙여 들기, 들고 허리 펴기, 들어서 일어서기, 땅에서 조금만 들기, 돌을 들고 몇 걸음 걷기 등이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듬돌을 들고 가슴과 허리를 완전히 편 채 두 다리를 꿋꿋하게 딛고 서 있는 것을 제일로 쳤다.

이러한 듬돌들기는 언제, 어떤 이유에서 이루어졌고 어떤 성격을 갖고 있을까?

정확한 문헌 기록을 찾아보기 힘드나 마을 청년들의 듬돌을 들어올림으로써 힘자랑을 했던 것으로 보아 어떤 의식을 할 때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할 뿐이다.

성년의례 때나 음력 정월 초나 보름에, 당제를 치를 때, 당젯날이라든가, 유월유두, 칠월 칠석이나 백중 때, 추석 때에 듬돌놀이를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또 들돌 앞에 제물을 진설하는 지역도 있었다고 하니, 이것으로 봤을 때 듬돌들기는 주술성도 띠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듬돌은 민속설화에도 등장하는데 '한락댁이' 이야기가 그 예다.

여자이지만 힘이 장사였던 한락댁이는 남편이 듬돌들기 내기에 져 곤란을 당하게 되자 남장차림을 하고 괴력을 발휘해 남편을 구해준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각 마을에서 듬돌들기를 하던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드나, 들불축제 등 각종 축제에서 듬돌들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주자연사 박물관 야외 석물 전시장에 가보면 듬돌을 전시해 놓은 것이 보이고, 제주시 화북동 거로마을 등돌거리 등에 가보면 듬돌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로마을 등돌거리에는 지난 1984년 '등돌거리'라는 표지석을 세워놓아 오래전부터 듬돌들기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옆 팽나무 밑에  4~5개의 크고 작은 듬돌을 놓고 있다.  이 곳은 듬돌들기의 명소이기도 하다.

듬돌들기는 체험관광 상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만큼, 관광 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듬돌'은 하찮은 돌이 아닌 우리 민족의 얼과 채취가 묻어 있는 것이어서 전승하여야 할 문화유산이자 민속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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