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7 17:15 (수)
"암울했던 너븐숭이, 평화 꽃밭으로..."
"암울했던 너븐숭이, 평화 꽃밭으로..."
  • 한애리 기자
  • 승인 2007.02.06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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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북촌리 유적지 정비 '첫 삽'
4.3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 및 유적지 정비 기공식

"목이 매여서 말문이 막혀. 80평생을 살다보니 불쌍한 영혼들도 물 한 모금 떠먹는거 보기도 하네"

"한 애기 어멍(어머니)이 애기를 품에 꼬옥 안고 죽었더라고. 차마 눈 뜨고는 못봤주"

"그때 내 나이 20살, 그땐 울 시간도 없었다우. 집단 학살 당한 이들이 묻힌 이곳 일반사람들이 오르내리게 하지 못하게 급하게 울타리라도 만들어야 해야했지"

1948년 6월 어느 날 경찰관을 실은 소섬배가 제주시로 항해 도중에 풍랑을 만나 제주시 조천읍 마을 포구로 입항해 정박하던 중 불행하게도 당시 경찰관 2명이 희생을 당했다.

이 사고로 군경은 북촌리는 폭도마을로 지목하고 탄압을 시작했다. 그후 동짓달 열엿새 날에는 조직된 민보단원 중에서 젊은이 23명을 가려내 난시빌레에서 살해됐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월 17일 군인이 타고 가는 트럭에 무장대가 총격을 가해 2명의 군인이 희생됐다.

이 이유로 북촌 주민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돼 총살당했고, 그렇게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만 무려 300명이었다.

목숨을 부재하려고 산으로, 함덕으로 넘어가던 중 많은 사람들이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에서 집단 학살을 당했다. 꽃도 한 번 피우지 못한 어린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죽어간 아이들이 묵혀 있는 너븐숭이.

이곳에는 4.3때 무고하게 죽은 그리고 4.3이후 넋을 잃어 죽어간 어린 넋들이 묻혀있다. 총 17개의 애기무덤.

현덕선(80.조천읍)할머니는 "그 애들이 살아있으면 지금쯤 이 마을 이장을 하고 있겠지"라며 "키도 원칠하고 고운 6살 사내남이었는데..."하며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라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말없이 무고하게 죽어간 그들이 이제라도 편히 눈감고 쉴 수 있지 않겠어"

인천.광주형무소로 끌려갔다가 풀려났다는 강석수(82.북촌리)할아버지도 북촌 너븐숭이 4.3유적지 정비사업을 반갑게 맞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 11월까지 북촌초등학교 서측 너븐숭이 일대를 8564㎡부지에 총사업비 15억9700만원을 들여 위령탑과 기념관, 순이삼촌 문학기념비, 주차장 등을 조성한다.

60여년간 해원되지 못한 479명의 4.3희생자 영령과 유족들의 넋두리를 위한 사업이다.

제주시 북촌리(이장 김영수)와 4.3희생자북촌유족회(회장 김석보)는 음력 12월 19일인 2월 6일 제주시 조천읍 너븐숭이에서는 김태환 제주도지사와 김두연 제주4.3사건희생자유족회장, 김석보 북촌리 유족회장, 김영수 북촌이장,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479위의 희생자 영령을 모시고 4.3사건 북촌리 희생자 합동위령제와 유적지 정비 기공식이 열렸다.

이날 김석보 유족회장은 "2006년 병술년 음력 섣달 열 아흐렛날 4.3당시 처참하던 자리 정돈하고 억울하게 희생당하신 4.3사건 희생자 470위를 제단에 모시고 헌화분향하고 제향한다"면서 "이곳 너븐숭이 위령성지는 영령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고 영원불멸 평화의 상징이 될 것이며 아름답게 마련한 이 위령공원에서 가신님들을 위한 위안의 꽃밭을 훌륭하게 꾸미겠다"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김태환 제주도지사도 "북촌리 '너븐숭이'일대는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4.3의 '4'자도 금기시 했던 시기에 최초로 문학의 무대로 끌어올려졌던 '순이삼촌'의 배경이 되는 장소"라면서 "'무남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당했던 이 곳은 제주4.3의 비극과 인권유린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알리고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역사적 단초를 제공한 진원지"라고 소개했다.

김 지사는 "'너븐숭이'일대를 후대들에게 산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구천에 유랑하는 영령들을 위해 4.3위령비를 조성하고 당시 북촌리의 참혹상을 담은 기념관도 세우겠다"면서 "현기영 선생의 소설 '순이삼촌'문학기념비도 오늘 기공의 첫 삽을 뜨겠다"며 유적지에 대한 복원정비사업을 약속했다.

한편 1993년 박칠성 북촌리장 당시 원로회 회원들이 4.3피해상황을 조사한 결과 당시 323가구 중 인명 피해 207가구, 피해 희생자수 남자 298명 여자 141명, 소각 가옥 591동, 학교 7개 교실, 가축 522두, 선박 13척이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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