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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건축을 부동산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문제”
“제주도는 건축을 부동산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문제”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9.28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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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배우다] <8>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
김정일 지맥건축 소장 “스타 건축가도 조심스레 접근”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 도시재생지구인 베르시 지구의 모습이다. ©김형훈

 

는다. 사람이 늘고, 덩달아 사람을 이동시키는 차량도 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현상을 반긴다. 왜냐, 자본의 활발한 이동을 동시에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꼭 반기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본에 의해 자신의 기반이 침식을 당하는 사례는 더 많다. 그런데 그런 사례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든 게 돈의 흐름만 좇는 자본에 매몰돼 보이질 않는다.

# 대도시처럼 성형수술 해버린 제주

제주를 바라보면 ‘진짜 제주’는 어떤 모습인지 헷갈린다. 제주시, 특히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진 지역은 제주도가 아니란다. 실제로 그렇다. 일부 제주시 동지역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도시는 변하기 마련이지만, 성형수술 하듯 변신하는 모습은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올 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모든 게 사람과 차량 때문일까. 솔직히 말하면 도시개발을 한 사람들의 잘못이다. 도시 가로는 사람을 위해 맞춰져야 하는데, 도시 가로가 거대한 간선도로를 맞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게 현실이다. 가로와 세로로 이어진 도로망은 차량에겐 쉼없는 혈관이 되지만, 사람들 입장에서는 격자와 격자 사이에 만들어진 섬에 갇힌 형국이 되고 만다.

제인 제이콥스는 교통흐름을 강조하는 이런 도시 간선 구조를 향해 “도시를 파괴하는 강력하고 끈질긴 도구이다”고 평가했다. 제이콥스는 교통 간선이, 결국 촘촘하게 얽혀 있던 동네의 모습들을 아무 생각없이 해체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다. 지금 제주도의 도심이 이런 해체의 과정을 밟고 있다.

렌조 피아노 작품인 ‘제롬 세이두 파데재단박물관’. 기존 건축물을 파괴하지 않고 잘 안착해 있는 모습이다. ©김형훈

 

어떻게 해야 해체되지 않고,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사람 위주의 정책만 펴면 된다. 그러려면 건축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지어올리는 행위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하면 인간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는 도심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무튼 도시계획에 건축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행정을 하는 이들의 생각보다는 건축가의 생각이 더 많이 담겨야 한다.

# 도시재생은 있지만 도시파괴는 없다

몇차례 기획을 통해 만난 프랑스는 그랬다. 유럽도 그렇지만 프랑스 역시 건축가들은 도시계획을 하는 이들이다. 공원을 설계하는 이들도, 도시 전체의 모습을 그리는 이들이 다 건축가들이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건축가들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체계가 갖춰져 있다. 더 나은 작품을 고르기 위해 공모라는 절차는 필수코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땅장사를 하는 이들이 도시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을 부수기를 반복한다.

프랑스엔 도시재생은 있지만 도시파괴는 없다. 파리에서, 마르세유에서 만난 도시재생은 어떻게 하면 오래된 건축물을 가진 상태에서 새로운 걸 입힐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러는 이유는 도시를 생각하고, 문화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나가서는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체득해 온 삶을 파괴하지 않으려는 능동적 행동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 우리식으로 다 부숴버린 뒤에 단지화를 했더라면 지금의 파리나 마르세유는 있을 수 없다.

건축사사무소 지맥의 김정일 소장도 프랑스에서 그런 모습을 봐왔고, 언젠가는 그런 모습을 우리나라에도 심고 싶은 의지를 지녔다.

# 층층이 쌓인 역사를 간직하는 나라

“외국이라고 해서, 프랑스라고 해서 대단하게 보이곤 합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해온 것을 행정가나 건축가나 도시계획가들이 부정하지 않았어요. 역사의 층층이 쌓여서 깊은 문화도시를 만든 거죠.”

 

김정일 지맥건축 소장이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 전환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형훈

 

건축은 파괴를 동반하지만 그가 본 프랑스는 우리와는 좀 달랐다. 렌조 피아노가 프랑스 파리에 내놓은 작품인 ‘제롬 세이두 파데재단박물관’을 보면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파격적인 건축물인데,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니 말이다.

“프랑스는 스타 건축가가 있다고 해서 도심을 엎어버리는 게 아니죠. 프랑스 유명 건축가들도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기존 건축물을 파괴하지 않고, 어우러지게 만드는 건축이라고 할까요. 우리처럼 기존에 있는 걸 파괴하고 다시 짓는 게 아니잖아요.”

도시는 성장한다. 그런데 굳이 파괴를 동반하는 게 성장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젠 제주도를 얘기해보자. 그는 현 시점의 제주도는 문제가 있다는 시선이다.

“자신들의 도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려면 성숙돼야 합니다. 그런데 제주도는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동산입니다. 이건 바꾸자고 해서 바꿔지는 건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회운동도 중요하고, 대중을 향한 교육도 있어야 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진행한 제주청소년건축학교와 같은 게 많아져야 하겠죠.”

제주청소년건축학교는 제주건축가회가 지난 8월 처음으로 가동한 프로그램이다. 김정일 소장의 얘기는 그런 게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는 얘기일테다. 그러면서 덧붙인 게 있다. 도시는 차량 위주가 아니라 사람 위주여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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