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6 17:57 (화)
“‘화산도’, 언젠가는 민주화된 북의 독자들 손에도 닿을 것”
“‘화산도’, 언젠가는 민주화된 북의 독자들 손에도 닿을 것”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7.09.18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호철 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김석범 문학심포지움 ‘화산도와 나’ 기조강연
“<까마귀의 죽음> 이후 <화산도>까지 60여년,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제1회 이호철 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한 김석범 선생이 18일 열린 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화산도>는 단지 주어진 일본어로 쓰인 소설이 아니라 ‘민족어’로서의 구속에서 이미지가 형성되는 허구 세계로의 비약과 동시에 변질시키는 상상력의 힘, 그리고 주어진 사실에의 의거가 아니라 없어진 역사를 허구, 소설로 재생하는 상상력에 의해 산출된 작품입니다”

 

제1회 이호철 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2년 반만에 다시 모국을 찾은 김석범 선생(93)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 <화산도>에 대해 어렵사리 꺼낸 얘기다.

 

그는 18일 오후 2시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 숲속극장에서 열린 ‘역사의 정명(正名)과 평화를 향한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을 통해 <화산도>를 일본 문학도 한국 문학도 아닌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규정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쓰지 못했을 <화산도>가 이제 한국어로 번역돼 출판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작가가 직접 강연도 하고 있는 이 현상이 한국 민주화 사회의 올바른 모습”이라고 자신이 이번 통일로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의미를 부여한 그는 “언젠가는 민주화가 된 북에서도 <화산도>가 독자들의 손에 닿는 일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본어로 조선을 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일본 문학계는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일본어로 ‘조선’을 쓰지 못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를 그만둬야 했다. 주로 조선, 고향 제주도에서의 미증유의 대학살 4.3을 테마로 글쓰기를 시작한 나에게 일본어로 조선을 테마로 글을 못 쓸 경우 글쓰기에서 물러나야만 했다”고 지금까지 감내해야 했던 그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그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일본어의 외피를 벗기고 그 언어의 보편성으로의 변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언어 이론의 구축이 요구됐고, 일본어로 조선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지금까지 <화산도>를 써온 것”이라면서 변질된 일본어가 <화산도와 자신의 통로인 동시에 일본어 독자와의 통로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문학이 언어에 의해 언어(일본어의 구속)를 초월했다는 의미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디아스포라인 나의 문학적 자유를 얻기 위한 무기가 바로 상상력에 의한 소설(허구) 공간의 구축이었다”면서 제주도를 테마로 소설을 쓰면서 오래 살아보지 않았던 낯선 제주 현지에 가서 취재와 답사를 못 한다는 것이 가장 괴로웠으며 더구나 일본 근현대 문학의 사소설, 순수문학이 주류인 일본 문단과 문학계의 흐름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었음을 고백했다.

 

청년기 시절 허무와 니힐리즘의 깊은 늪에서 몸부림치면서 그 탈출구를 혁명에서 구하고자 일본 공산당 입당, 조총련 조직에 가입했다가 도중에 탈퇴해 문학세계에서 초극의 길을 찾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자신의 인생 역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최초로 4.3을 다룬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한국어 완역 <화산도>를 모두 합친다면 그 걸어온 길이 60여년이 된다”면서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 있지만 제주도민 오랜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 하에서 기억 상실자,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눈을 떠서 봐도 안되는 인격 상실의 허수아비 신세였다. 이제 정말 세상이 바뀐 거다. 고맙기 짝이 없다”고 격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는 “김석범 문학은 일본 문단에서 뿐만 아니라 조국의 남과 북에서도 대립, 협공을 당하는 오랜 세월이 계속 됐다”면서 “그래도 점차 일부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시작, 일본 문학에서는 찾을 수 없는 눈을 번쩍 뜨고 눈여겨 읽어야만 알 수 있는 <까마귀의 죽음>, 그리고 <화산도>가 일본 문학계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일본어 문학이라는 주장을 이론화하기 위해 상상력을 주역으로 내세운 자신의 언어론을 키 잡이로 <화산도>를 완성했다면서 “그 길은 험하고 외로웠지만 그것이 나의 작가로서 자유와 정체성을 지키는 무기였으며 외로움을 보편화하는 길이기도 했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이와 함께 그는 “<화산도>의 주인공 이방근의 살인과 자살은 4.3 학살터의 극한 상황을 한층 더 두드러지게 표출하는 문학적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살아남은 남승지와 한 대용이 이방근의 숨겨진 혁명 정신을 이어받아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지게 된다는 소설의 결말에 대해 “권력자들이 학살을 망각 속에 땅 속 깊이 처박아 없애려고 했지만 반 세기만에 지상으로 되살아난 것”이라며 “해방 공간의 역사, 은폐하고 왜곡된 역사, 5년간 신탁통치를 폐기하고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과정이 올바른 역사였던가를 밝히는 4.3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불가분의 역사적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고명철 광운대 교수의 ‘김석범의 문학과 해방/공간, 그리고 역사의 정명(正名)’, 김계자 고려대 교수의 ‘김석범의 문학과 재일조선인문학’. 제주대 김동현 박사의 ‘인민 주권의 좌절과 반공국가의 탄생’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역사의 정명(正名)과 평화를 향한 김석범 문학’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18일 오후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 숲속극장에서 열렸다. ⓒ 미디어제주
‘역사의 정명(正名)과 평화를 향한 김석범 문학’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18일 오후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 숲속극장에서 열렸다.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