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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말한다 “그림을 그리면 행복해지죠”
여성으로서 말한다 “그림을 그리면 행복해지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9.09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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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마추어에서 프로 작가가 된 서양화가 강은희씨
성안교회내 성안미술관에서 9월 12일까지 두 번째 개인전

여성들이 제 삶을 찾는 시기는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게는 자녀들이 다 컸을 때가 아니었을까. 우리 여성들은 자식을 위해 매달리다보면 제 삶을 잊고 지내는 게 현실이다. 서양화가 강은희 작가(52)도 한때는 그랬다. 그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찾은 건 얼마 되지 않는다.

 

“큰애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삶의 여유가 생겼어요.”

 

이 한마디다. 우리나라 어머니의 모습이다. 강은희 작가는 주부로, 대한민국의 아줌마로 살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억누르며 살아왔다. 그는 큰애를 대학에 보낸 뒤 공허함이 밀려왔다고 한다. 그 공허함을 채운 건 미술이었고, 지금의 강은희 작가를 만들어냈다.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평생교육원 회화반이 생겼다는 겁니다. 그 전에 소묘를 배우긴 했으나 색을 접하게 됐고, 강사 선생님이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려보라는 거예요. 어려울 것 같았어요.”

 

자신의 두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강은희 작가. 미대 출신은 아니다. 아줌마에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는 프로 작가가 돼 있다. ©미디어제주

 

그는 미대 출신도 아니다. 미대를 나와야 그림을 그리는 걸로 알았다. 색을 접한 건 2013년 가을이다. 그런데 뭔가가 그를 끌어당겼다. 미친 듯이 그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제주시 인화동에 있는 공동작업실을 출근하다시피 했다. 토·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벌써 5년째다.

 

“화실에서 살았죠. 처음엔 힘들었죠. 내일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도 어느 순간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림이 나아지지 않아 울어보기도 했어요.”

 

붓을 놓고 싶었다. 아니 놔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림에 더 빠져들었다. 정말 미친 듯이 그렸다. 결과물도 나왔다. 프로 작가들도 힘들다는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특선의 영예도 안았다. 그림을 그린지 2년째, 아니 만 1년만에 국전에 출품해 입선도 아닌 특선을 받는 게 믿기질 않는다.

 

“그림을 갓 배울 때였죠. 10호와 20호를 그리기도 버거운데 선생님이 100호 작업을 해보라는 겁니다. 1년 걸렸어요. 매일 목탄작업을 하며 지우기를 반복하고, 조금씩 그림이 되기 시작했어요. 제목은 ‘설레임’인데 스페인 여행 때 미술관을 갔다 와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죠. 고야의 작품을 직접 본 느낌을 얘기하는 그런 풍경입니다. 국전은 생각지도 않고 그렸죠. 나날이 좋아지는데 내가 봐도 됐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선생님이 어느날 저를 부르는 겁니다. 국전에 내보자고요.”

 

두세 번 사설미술관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출품한 경력만 있을 때였다. 2년차인 아마추어에게 국전 얘기는 어찌보면 황당했다. 그는 감당이 되질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리는 건 아니었어요. 제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릴 뿐이었어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출품을 해보자는 겁니다.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으나 해보자고 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해준 말씀이 있어요. ‘잘 그렸습니다’는 칭찬을 받는 게 좋은 그림이 아니라 ‘좋습니다’는 칭찬을 받는 게 좋은 그림이라고요.”

 

강은희 작가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의 영예를 안긴 '설레임'이라는 작품 앞에 서 있다. ©미디어제주

 

그의 첫 100호 작품이면서 첫 국전 특선을 받은 작품은 그런 그림이다. ‘좋습니다’ 칭찬을 받는 그런 작품이다. 강은희 작가의 작품은 다 그렇다. 느낌이 좋다. 일상을 그린 그의 작품은 사람을 편하게 대해준다.

 

그는 여행을 좋아한다. 좋은 풍경이 들어오면 사진에 담는다. 그걸 꺼내들고 캔버스에 옮긴다. 작품이 된다. 그의 작품엔 자전거가 꽤 등장한다. 자전거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겨 있다.

 

“어릴적 제가 몸이 불편하니까 아버지는 늘 자전거로 저를 태워줬어요. 소풍가는 장소까지도 태워줬어요. 그 기억이 옛날 자전거만 보면 사진을 찍게 만들고, 그림을 그리게 하네요.”

 

그는 아마추어라고 하지만 당당한 작가이다. 매일 그림에 매달리는 시간이 그를 프로로 만들고 있다. 5년간 그가 그림에 투입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수천시간이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그림에 대한 열정이다. 그럼에도 그는 국선 특선이 버거워서 처음엔 프로필에 담지를 못했다고 한다.

 

“1년간은 프로필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을 쓰지 않았어요. 심적 부담이 컸거든요. 그런데 전시회에 오는 사람들은 제 프로필을 보는 게 아니라 그림을 보는 거예요. 보는 사람들은 프로필에 상관없이 그림을 봐준다는 안도감이 생겼어요. 그때부터는 특선 프로필을 담고 있어요.”

 

강은희 작가는 대한민국 아줌마다. 애들을 키우느라 힘겹게 사투를 벌인 대한민국 아줌마다. 이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삶을 마음껏 살고 있다. 더구나 그림을 그릴 때 그는 행복해진단다. 그러면서 이 말은 꼭 전해달란다. ‘군사부일체’라고 스승을 잘 만났단다. 기사에서 ‘선생님’으로 불린 스승은 제주출신 한용국 화백이다.

 

강은희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은 지난 6일부터 성안교회에 있는 성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2일까지 열리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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