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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축물을 숨쉬게 하면 도시재생 이뤄져”
“오래된 건축물을 숨쉬게 하면 도시재생 이뤄져”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9.07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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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배우다] <6> 신구 건축 조화이룬 마르세유
홍광택 대표 “건축가들이 참여하는 시스템 마련돼야”
바다에서 바라본 마르세유항. 유럽에서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도시재생인 '유로메디테라네'가 진행중이며, 유럽문화수도가 되며 더욱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바닷가에 위치한 일대는 도시재생으로 새로운 힘을 얻고 있다. ©김형훈

 

유럽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따내려는 타이틀이 있다. 바로 ‘유럽문화수도’이다. 유럽문화수도는 1985년 그리스 아테네를 시작으로, 각 도시마다 유치에 뛰어들고 있다.

# ‘문화’에서 ‘경제’가 된 유럽문화수도

유럽문화수도는 유럽연합(EU)의 탄생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유럽문화수도 첫해인 1985년은 EU가 구성될 때는 아니다. EU의 전신이던 유럽공동체(EC) 시절이다. 1985년 1월 그리스 문화부장관인 멜리나 메르쿠니가 아테네 공항에서 프랑스 문화부장관인 자크 랑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온 게 유럽문화수도라고 한다. 그리스와 프랑스. 서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여서인지 유럽문화수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실천했다는 게 믿기진 않는다.

유럽문화수도는 문화를 내건 대규모 이벤트이지만 태동 배경엔 정치와 경제 중심으로 나가는 유럽통합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EU의 공식탄생 조약인 ‘마스트리히트조약(유럽연합조약)’ 128조엔 문화의 중요성이 들어 있다. “유럽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회원국에 있어서 국가적·지역적 차원의 문화 다양성 및 유럽인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회원국 고유의 문화유산을 존중한다”는 내용이다.

유럽을 이야기하면서 문화는 뺄 수 없다. 유럽문화수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 강력한 힘을 얻고 있다. 유럽통합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소외되곤 하는 문화를 표면으로 끌어올리자는 게 유럽문화수도였는데, 지금은 유럽문화수도가 경제와 결부되며 강력한 에너지가 되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문화가 곧 돈을 끌어들이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이다.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면 그에 따른 지원이 이뤄지고, 관광객을 끌어들임으로써 부를 창출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통합에서 소외됐던 문화가 부를 창출하는 일등공신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 리옹을 누르고 유럽문화수도로

유럽문화수도는 초창기엔 매년 개최되다가 지금은 격년제로 열린다. 신청절차도 까다롭다. 신청서는 개최 6년 전에 제출해야 하며, 2년의 기나긴 절차를 거쳐 선정된다. 프랑스의 두 번째 도시라는 마르세유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면서 도시재생에 더욱 힘을 받은 사례가 되고 있다. 2013년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된 마르세유는 2008년 후보도시였던 리옹 등을 제치고 선정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유럽문화도시를 꿰찼다. 마르세유는 1995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유럽 최대규모의 도시재생 프로그램인 ‘유로메디테라네’에다 유럽문화도시를 함께 가져가며 도시에 변혁을 줄 수 있었다.

‘유로메디테라네’로부터 시작된 마르세유 도시재생은 죽어가던 항구에 어떤 변화를 주고, 슬럼화된 지역에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다. 여기서 빠져서는 안되는 게 건축이다. 도시재생 프로그램으로 대형 건축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있는 걸 살려내는 방식도 있다.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도시재생을 완성하는 사례가 바로 마르세유라는 도시이다.

마르세유 졸리에트 지구에 있는 부두창고를 재생시킨 '레독'. ©김형훈

 

부두의 창고로 쓰이던 곳이 대규모 쇼핑몰이 되고, 국제비즈니스 지구로 되살아나고 있다. 주목할 풍경은 졸리에트 지구에 있는 ‘레독(les docks)’이다. 말 그대로 ‘부두창고’다. 마르세유는 2009년 이 일대 재개발 계획을 잡고, 설계경기를 통해 연면적 2만1000㎡에 달하는 레독에 변화를 심는다.

# 부두창고를 그대로 살려 최고 상품으로

레독은 4개의 안뜰이 존재한다. 각각의 안뜰의 모습은 다르다. 건물 내부는 예전 창고 모습을 보여준다. 레스토랑도 있고, 카페도 있고, 다양한 상점도 있다. 예전 건물에 와 있지만 새 옷을 입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우리라면 어땠을까’라는 느낌이 든다. 건축물을 와장창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지 않았을까.

도시재생은 눈에 보이는 걸 어떻게 하면 허물지 않고 잘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 마르세유는 왜 레독을 부두창고 그대로 놔뒀을까. 다 허물고 새로 지어도 될텐데 말이다. 그건 바로 역사성이다. 레독은 마르세유 사람에겐 기억의 장소가 되고, 방문객들에겐 부두창고로서의 기능을 했던 곳임을 쉽게 이해되도록 만든다. 예전 부두창고엔 배에 실릴 각종 물건이 쌓였다면, 이젠 사람으로 넘쳐나는 게 좀 다르다.

부두창고였던 레독 안뜰의 모습이다. ©김형훈
부두 창고였던 레독은 창고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곳으로 바뀌었다. 레독 곳곳에 있는 안뜰의 모습. ©김형훈
빨간색으로 두른 곳이 마르세유 졸리에트 지구의 레독이다. 옛 건물을 그대로 살려 도시재생을 완성했다. 4개의 안뜰도 확인된다. ©구글어스

마르세유의 도시재생을 바라본 건축사사무소 홍건축의 홍광택 대표는 신구의 조화가 잘 이뤄진 도시 이미지를 설명했다.

“마르세유를 높은 곳에서 올려보면 통일성 있는 공간에 몇몇 눈에 띄는 건축물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마치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있는 ‘쿤스트하우스’처럼요. 그런 걸 받아 줄 수 있는 건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죠.”

# 홍광택 대표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 있어야”

마르세유는 레독처럼 있는 걸 그대로 살린 건물도 있지만 뮤셈 등 눈길을 주는 뛰어난 건축물이 많다. 기존 건축물 사이사이에 그런 건축물이 힘을 보태고 있다.

“우리는 독특한 디자인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지역에서 받아줄 수 있느냐의 문제죠. 독특한 건축물이 옛 도심에 들어갈 경우 도시에 활력을 부를 수도 있어요. 아울러 오래된 건축물을 숨쉬게 하다보면 도시재생도 이뤄질 것이라고 봐요.”

도시재생에 건축가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홍건축의 홍광택 대표. ©김형훈

 

홍광택 대표는 그러면서 지난 9월 2일부터 열리고 있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얘기를 꺼냈다. 당시 개막식 자리에서 박원순 시장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박원순 시장이 축사를 했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젠 건설이 아니라 건축이다. 개발이 아니라 재생이다. 성장이 아니라 성찰이라고 말이죠. 토목 일변도가 아니라 목적의식을 가진 건축의 중요성을 설명한 겁니다. 제주도의 도시재생도 그걸 고민하는 이들이 장기간에 걸쳐서 생각을 모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건축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돼야 하고요.”

그렇다. 개발의 시대는 아니다. 화두가 되고 있는 도시재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마르세유와 같은 신구조화는 필수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홍광택 대표의 말처럼 건축가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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