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옆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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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확
  • 승인 2017.08.2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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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46>

요즘 젊은이(나도 나름 그 언저리에 있긴 하다.)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사서 고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이는 난관에 일부러라도 부딪힐 수 있는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패기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90년대에 출생한 지금의 20대가 부모들에게 항상 들었던 말이 있다. ‘그런 거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부모 일 도와줄 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글자 하나라도 더 봐.’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려운 일들에 거세된 세대다.

고생을 모르고 산 것이 아닌, 고생에 절연된 세대다.

이유는? 경쟁 때문이다.

사서 고생하기에는 이미 격렬하게 고생을 하고 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다. 모든 현대인들은,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 철학, 패권, 국가 모든 부분들은 경쟁을 목도하고 또 경험하고 있다. 경쟁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고, 경쟁이 약하면 스스로를 경쟁이 강한 링으로 몰아넣는다.

 

한국은 누군가의 말처럼 ‘피로사회(疲勞社會)’다. 피곤할 수밖에 없다. 인구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국은 2017년 세계인구조사결과 27위를 차지했다. 반면 인구밀도는 방글라데시, 대만에 이은 세계 3위다. 인구밀도는 1k㎡ 면적에 사는 사람 수다. 한국은 513명이다. 쉽고 간단히 말해 30평 면적에 51명 정도가 살고 있다.

한편 서울의 인구밀도는 16,188명이다. 30평 면적에 1,619명 정도가 살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에 아파트가 많고, 집값이 비싼 건 다 이유가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지형은 64%가 산악지대라는 말을 첨가하는 것은 누군가를 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말이 있다.

‘나이키의 경쟁자는 닌텐도다’

 

풀어보면 닌텐도 게임을 하는 어린아이들은 운동을 하러 가지 않기 때문에 나이키 제품도 안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키는 퓨마나 아디다스가 아닌, 게임업체인 닌텐도와 경쟁한다.

 

때 아닌 경쟁을 얘기하는 것은, 사회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처럼 생각돼서다. 과거 최대의 노동시간을 요구한 빨래는 세탁기가 생겼는데도, 가정주부의 일은 많아지고 있다. 농사나 채집을 하지 않고, 마트에서 쇼핑만 하면 되는데도 먹고 사는 일이 팍팍하다. 컴퓨터, 로봇 등 각종 첨단기계를 통해 일이 편리해졌다고 하는데, 노동시간은 줄지 않는다.

더 편리한 환경, 더 좋은 제품. 분명 삶이 나아져야 한다. 그런데 왜 삶은 점점 팍팍해 지는 것일까?

자기계발을 하라 해서 열심히 했다. 딱히 바뀐 건 없다. 이제는 인문학을 공부하라 한다. 맘에 들진 않고 무슨 얘기인지 이해되지 않지만 흐름을 탔다. 하지만 남는 건 없다. 이제는 다 시끄러우니 단순하게, 느리게 살라 한다. 이랬다저랬다. 뭐가 맞는 걸까?

 

맞는 것은 없다. 틀린 것만 있다. 경쟁 때문이다.

자기계발은 자기를 위해 해야 하는 데 경쟁자를 만들어 자신을 학대해서 그렇다. 자기계발은 결코 ‘스펙’이 아니다.

인문학은 자기의 마음을 닦는 분야인데, ‘뇌색남(뇌가 섹시한 남자)’, ‘뇌색녀’ 등 다른 사람보다 잘나기 위해, 보여주기 위해 공부해서 그렇다.

단순히 살고, 느리게 사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각종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에 그런 삶을 보여주며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펴서 그렇다.

이렇게 우리는 불필요한 경쟁을 스스로 만든다.

 

경쟁에 대한 이단옆차기. 날린다.

유행(流行). 말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진리와 자연. 이 둘은 아주 쉬운 예다.

또한 고전(古典)을 보자. 유행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고전을 읽고 있다. 유행은 그 때는 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안 하거나 거의 안 하는 것이다.

알파고. 바둑을 생각해 보자. 알파고는 인간을 상대로 승리했다. 하지만 바둑은 없어지지 않는다. 알파고보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대다수의 바둑 애호가들은 알파고와 두기보다는 ‘사람’이랑 두니까. 바둑을 최고 잘 두는 알파고와 만나기도 어렵고, 만날 필요도 없다. 알파고는 유행이다. 사람은 영원하다. 바둑은 유행이 아니다.

또한 초고속의 비행기가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걷는다. 건강에도 비행기 타기보다는 걷기가 낫다. 걷기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경쟁에 대한 이단옆차기는 일단과 이단으로 나뉜다.

 

먼저 일단.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산티아고 길을 한 달 동안 걸을 필요 없이, 제주도 올레길을 일 주일동안 걷는 것도 좋다. 이것도 힘들다면 동네 한 바퀴를 자근자근 걷는 것도 괜찮다. 분명 걷는 동안 생각이 춤추고, 세상과 내가 절연될 것이다.

또한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 종일 집 정리를 하는 것도 좋다. 분명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설계하게 될 것이다. 물건들에는 의미가 있다. 『멈추고 정리』란 책을 쓴 루스 스컵의 말처럼, 잡동사니란 미뤄두고 아직 내리지 못한 결정이 물질적으로 나타난 것이니까.

 

다음으로 이단.

경쟁자와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필요한 대결구조를 지향(志向)하고 있다. 남보다 더 낫고,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야 된다는 생각을 놓지 않고 있다. 자기만족은 독약으로, 경쟁의 승리는 축배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남들이 걸으면, 자신은 뛰려고 한다. 남들이 뛰면, 자신은 더 빨리 뛰려 한다. 숨이 찰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명을 이기더라도 적어도 한국에는 오 천만 명 이상이 남아 있다. 어떻게 그들을 모두 이길 것인가?

빵 굽는 이가 밀가루 반죽을 아무리 빨리 해도, 반죽기보다 빠를까? 어떻게 노력해도 반죽기를 이길 수 없다.

빵을 만드는 즐거움은 경쟁에 있지 않다. ‘만들기’에 있다. 이것이 본질이다.

경쟁자와 상대를 제거하면 본질이 드러난다. 그 안에 즐거움이 있다.

 

마지막 사족. 작가 앤드류 매튜스의 말을 들어보자.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는데도 인생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경쟁(競爭)보다는 노력(勞力)이 낫지 않을까?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은 경쟁과 투쟁보다는, 그 이면에 가려진 노력과 자기만족이 아닐까?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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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3 13:54:27
지금 나의 삶과 내 주위를 한번 돌아보도록, 생각해보도록 해주는 글 감사합니다.

MJKIM 2017-08-23 18:09:32
평당 인원수를 다시 계산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