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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웃음소리 가득할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어요!”
“요란한 웃음소리 가득할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8.15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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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간이 우선이다] <2> 제주지역 놀이터 살펴보기 -‘놀이’의 관점에서

조합 놀이대, 그네 몇 가지…어딜가나 똑같은 동네 놀이터들

몇 가지 놀이시설 단조로운 공간에선 ‘육체발달’ 행위만 가능

다양한 체험 가능한 ‘인지활동형 놀이터’가 아이들 자라게 해

 

제주지역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를 검색하다보면 놀이터에 대한 부모들의 시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어떤 엄마들은 어딜 가나 똑같이 고무매트가 깔린 놀이터가 싫다며 모래와 물이 있는 놀이터를 수소문한다. 반면 어떤 부모들은 주변의 놀이터를 놔두고 돈을 내고 가야하는 실내 놀이터를 찾는다. 왤까.

 

# 엄마들의 이야기

 

한 엄마가 글을 올렸다.

“삭막한 도시의 아주 잘 정리된 놀이터들이 싫어요. 그나마 보이던 모래놀이터도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물과 모래가 있는 놀이터 좀 만들어주라고, 몸에 유해한 우레탄 고무 바닥재 좀 걷어달라고 외치고 싶어요.”

 

여기에 몇 엄마가 댓글을 단다. “맞아요” “지금 놀이터들 다 똑같아요! 왜 그럴까요?”라며.

 

또 다른 엄마도 모래가 깔린 놀이터를 찾고 있다. “아이가 모래를 갖고 놀고 싶어 하는데 구제주 쪽으로 모래 깔린 놀이터 어디 없을까요?”

 

흙과 모래를 찾을 수 없는 동네 놀이터. 바닥은 탄성 고무소재 일색이다. ©미디어제주

직접 사진을 올려 지저분한 놀이터를 꾸짖는 엄마들도 있다. “이 곳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맞을까요?” 이 엄마가 올린 10여장의 사진 안에는 어른들이 버렸을 음식과 음료 봉지들이 볼썽사납게 널려 있다.

 

엄마들의 카페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글은 단연 ‘실내 놀이터’를 수소문 하는 내용이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은 놀잇감이 많은 실내 키즈카페를 찾아 친구들과 잠시 말동무를 한다. 옷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교통사고나 낙마와 같은 대형 안전사고의 위험이 적으니, 이때라도 부모들은 잠시 아이를 놀이기구에 맡기고 숨을 돌린다.

 

그런데 실내 놀이터를 찾는 부모들의 글에서도 놀이 도구의 위생 상태나 공기 질, 놀잇감을 위주로 하는 놀이행위의 한계에 대해 걱정하는 글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모들이 오늘 자녀를 데리고 가는 놀이 공간은 제각각일지라도, 많은 부모들이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 만족하지 못 한다는 사실만큼은 다르지 않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 아이들이 없어요!

 

지난 주말 연동과 노형, 외도동의 놀이터 몇 곳을 찾았다. 바람이 불어 여름 치고는 비교적 선선한 날씨였다. 대부분의 학교가 방학 중이었고, 놀이터에 아이들이 가장 많다는 오후 3~5시 시간대를 굳이 골라 취재에 나섰지만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오히려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어른들이 더 많았다.

 

한 동네 어르신에게 다가가 놀이터에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이 언제인지를 묻자 “학원 차 기다리는 동안 잠깐씩 들를 뿐, 왁자지껄하게 노는 모습은 자주 보기 힘들다”는 말이 돌아왔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아이와 놀러갈 곳을 찾는 부모들의 질문이 넘쳐나는데, 왜 지자체가 돈을 들여 잘 가꾼 집 주변 놀이터들에는 아이들이 적을까.

 

# 똑같이 찍어낸 ‘공장표’ 놀이터들

 

제주시만 보면, 지난해 시청에서 관리하는 놀이터(어린이공원)는 모두 129곳이다.

 

1980년대 삼도동에 처음 세워진 놀이터를 시작으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노형동 아이파크 주변 놀이터에 이르기까지 놀이터는 늘고 있지만 어딜 가도 형태는 비슷하다.

 

정사각형의 평면 대지에 조합 놀이대와 그네, 시소 등을 설치하고 그 아래 고무매트를 깔았다. 주변으로 나무를 빙 둘러 심고, 그 아래 벤치와 어른들을 위한 체육시설을 둔다.

 

벤치 주변을 제외하고는 흙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곳도 많지 않다. 형형색색의 놀이 기구들은 이제 막 세상 탐험에 나선 유아들에게나 사랑을 받을 뿐이다.

 

# 놀이터가 비슷한 이유

 

도내 놀이터(어린이공원)들의 설립 연도를 보면, 지역별로 순번이 몰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자체가 놀이터를 세우던 초창기에는 연동과 구도심 주변에 설치가 많았고 뒤로 갈수록 노형, 이도, 아라동으로 몰린다. 이는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 제주 역시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공급된 놀이터들이 대부분이라는 의미다.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관 주도로 이뤄진 놀이터의 시설은 아이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학원 차량이 오가는 시점을 전후로 잠시 들르는 것 뿐이다. ©미디어제주

관 주도의 개발사업에서 부대시설 격으로 들어선 놀이터들은 ‘아동기의 전인적 성장’에서 놀이가 갖는 의미 보다는, 행정의 시각에서 별 고민 없이 만들어지기가 쉬웠을 것이다.

 

책임을 두려워하는 행정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곳’보다는 다치는 경우가 적도록 바닥에 탄성매트를 깔거나 놀이기구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주민 생활 편의를 위해 아이들의 공원에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 더 많아진 곳도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오르면, 우리에게 놀이터는 애초 체육시설로 기획되기도 했다.

 

아동복지법은 어린이놀이터를 “아동에게 건전한 놀이, 오락 기타 편의를 제공하여 심신의 건강 유지와 복지 증진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린이 전용시설”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전한 놀이’라는 말이 인상 깊다.

 

지금은 주택법으로 이름이 바뀐 주택건설촉진법의 시행규칙(1973년)에는 어린이놀이터에 대해 ‘최소한 그네, 미끄럼틀, 철봉, 모래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명시해, 오늘날 ‘놀이터의 전형’을 굳힌 장본인이기도 하다.

 

# 작은 놀이터에서 이뤄지는 폭넓은 발달 행위

 

그렇다면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는 걸까. 우리는 왜 놀이터를 이렇게 깐깐하게 바라봐야 할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놀이터에서 행해지는 어린이들의 행위는 크게 △사회행위 △사회육체행위 △육체행위 △사회인지행위 △인지행위 등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회행위’는 단순한 대화, 휴식, 배회, 구경 등의 기본적인 행위를 말한다. ‘사회육체행위’는 축구, 농구, 숨바꼭질, 사방치기와 같이 다른 친구들과 몸으로 하는 행위를 뜻하고, ‘육체행위’는 미끄럼틀, 그네 등의 놀이기구를 타는 행위를 가리킨다. ‘사회 인지행위’는 연날리기, 구슬치기, 물총놀이 등 도구를 쓰는 놀이이며, 마지막으로 ‘인지행위’는 소꿉놀이, 모래성 쌓기, 곤충채집, 열매 따기와 같이 자연물을 활용한 놀이를 말한다.

 

아이들은 이 같은 여러 가지 놀이 방식을 연령대에 따라 골고루 행하며 그 과정에서 신체발달, 인지발달, 사회성 발달을 이룬다.

 

그러나 몇 가지 놀이시설로 단조롭게 꾸며진 주변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육체행위’를 통한 신체발달만 꾀할 수 있다. 많은 아동교육 전문가들이 신체발달 중심의 현행 놀이터를, ‘인지활동형 놀이터’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인지활동형 놀이터에서의 경험은, 아이들의 정신과 감성을 활력 있게 하고, 잠재된 파괴적 충동을 잠재우며, 아이들의 지각과 식별력을 키워주고, 타인의 위치에 자신을 놓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때문에 아이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더 나아가 주민 삶의 질에 관심을 두는 선진지역에서는 놀이터를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것은 놀이 기구와 놀이 재료의 다양성 확대는 물론 놀이터 대지 형태의 다변화까지 말 그대로 아이들을 놀이공간에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고민을 의미한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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