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섬 분리 이야기는 꿈이 투영된 ‘원초적 비극’”
“소섬 분리 이야기는 꿈이 투영된 ‘원초적 비극’”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8.0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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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거짓투성이 설문대할망 신화 <13> 본론(本論) ⑫

구전으로 전해져온 ‘설문대할망’을 제주 창조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제주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가는 데 대해 관련 전공자인 장성철씨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취지의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실제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현승환 교수도 지난 2012년 ‘설문대할망 설화 재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연재 기고를 통해 설문대할망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14. <설문대할망 설화>의 본문 해석 ②

 

[전설Ⅵ] 성산 일출봉의 기암(奇巖)들 가운데, 큰 바위를 머리에 이고 있는 듯이 보이는 높직이 솟은 기암이 있다. 이는 설명두할망이 길쌈을 할 때에 접시불(또는 솔불)을 켰던 등잔이라 한다. 실은, 상부의 큰 바위는 애초에는 없었는데 하부의 기암만을 등잔으로 쓰기에는 얕아 보여서 얹어놓은 것이라 한다. 여하튼, 등잔으로 썼다 하여 이를 등경돌[燈檠石]이라 한다. - 『제주도 전설』(현용준, 서문당, 1976년) 29-30쪽에서.

 

[전설Ⅶ] 성산면(城山面) 성산리(城山里) 앞바다에 있는 소섬[牛島]은 본디는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다. 그런데 옛날 설명두할망이 한 발은 오조리(五照里) 식산봉(食山峯)을, 한 발은 성산리 일출봉을 딛고 앉아 오줌을 쌌고, 그리고 그 오줌 줄기의 힘이 어떻게나 세었던지 흘러나가면서 육지가 파였고, 결국 육지 한 조각이 떨어져나가 섬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소섬이다. (하략) - 위 책, 30쪽에서.

 

14.1. 전설은 증거물[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특정한 사물 또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증거물이 전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설이 증거물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즉, 증거물이 먼저 생겨난 것이고 전설이 나중에 생겨난 것이라는 말이다. 아울러, 증거물이 사라지면 전설도 그만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말이다. 물론 전설이 사라진다고 해서 증거물도 덩달아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전설Ⅵ]과 [전설Ⅶ]은 각각 선재(先在)하는 ‘등경돌’과 ‘소섬’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중에 생겨난 것들인 셈이다.

 

14.2. [전설Ⅵ]의 ‘등경돌’을 두고 한 신화론자는 추정한다. 설문대할망의 ‘땅에 대한 바느질’ 흔적일 거라고. 물론 이는 주변국 신화[여신이 하늘과 땅을 만들고 보니 하늘보다 땅이 커서 부조화를 이루었으므로 땅을 하늘 크기(넓이)로 줄이려고 바느질하는 바람에 땅에 산과 계곡이 생겨났다]를 염두에 둔 발언이리라. 하지만 그 추정은 한갓 억측, 아니, 흑심(설문대할망을 신으로 조작하려는 술수)의 발로에 불과하다. ‘땅 바느질’의 증거물은 한낱 등경(燈檠) 따위가 아니라 ‘오직 산과 계곡(또는 강)뿐’이니까. 내처 말하면, 설화는 민중 삶의 소산이라 조작된 것이 아닌 한 거짓일 수 없다. 그러니, 위 추정이 참이 되려면 ‘[전설Ⅵ] 등경돌’이 ‘길쌈용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만일 그 입증을 못한다면, 도리어 그 추정은 설화 조작을 위한 허튼수작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첨언하면, 추정은 억측(논리 비약)이 아니라 타당한 논리에 의거해야 한다.

 

14.3. 신화론자들은 하나같이 다 [전설Ⅶ]은 ‘골계미(희극미)를 자아내는 설화’ 또는 ‘신화의 비속화(卑俗化)에 따른 민담’이라고 단언한다. 소위 문학(구비문학) 연구가라는 위인(爲人)들이 ‘설문대할망 배뇨(排尿) 행위로 말미암은 소섬 분리’를 두고 ‘우스갯소리’ 또는 ‘비속화한 이야기’라며 히죽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 ‘생존을 위한 배뇨’가 웃기거나 비속화한 이야기라니! 정말이지 유치하기 그지없는 단견이며 인생에 대한 안목 없는 편견이다. 사실, ‘식음’(食飮)과 ‘배변·배뇨’는 신화시대에는 성스럽고 위대한 인간 삶의 필수불가결한 양대 조건이었다. 이는 설화 해석에는 작금의 눈이 아니라 당대(설화 생성 시대)의 눈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14.3.1. 신화의 비속화 : 신화는 실은 역사다. 한 종족(씨족·부족·민족 등)의 주체성·정체성·자존심 등의 발로니까. 따라서, 신화의 비속화는 종주국이 종속국을 유린하기 위해서나(또는 전장에서 상대방 곧 적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서나) 자행될 법한 만행이며 작태다. 그러고 보면, 설문대할망 배뇨 행위를 두고 한반도인이 비속화 운운하는 것은 탐라 후예를 무지몽매한(신화 비속화의 함의도 모르는) 섬놈(제줏놈)이라고 욕하는 것과 진배없는 가증스러운 짓이고, 탐라 후예가 그러는 것은 ‘누워 침 뱉기’인 동시에 ‘선조를 희롱해대는 패륜적 행위’인 셈이다.

 

14.3.2. [전설Ⅶ]의 ‘생성 배경’[성산 주민 공동체 ‘삶의 자리’(Sitz­im­Leben)] : 성산 마을은 지형이 바다로 돌출된 곶(串)이라 본디 농지(農地)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지난날 탐라인들은 반농반어(半農半漁)가 아니면 삶을 영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산 사람들은 고성(동남)까지 나가서 농사 곧 소작(小作)을 부쳤다. 한편, 성산 여자(해녀)들은 물질을 하러 바다로 향하다가 저 멀리 보이는 소섬 곧 ‘주인 없는 무인도’를 두고 이따금 넋두리 같은 혼잣말을 늘어놓곤 했다. “저 섬이 이레 딱 붙엉 잇이민 ······, 후유!” 그러면, 때로는 농담 아닌 농담이 꼬리를 물기도 했다. “예펜네들이 물질허멍 오좀덜 좍좍 갈겨 부는디 어떵 그냥 붙엉 잇어지크라.”

 

내친김에 말하면, 이 한담(閑談)에는 짙은 비애감[‘염원과 한(恨)’ 곧 ‘꿈과 좌절’]이 서려 있다. 이는 [전설Ⅶ]은 골계미가 아니라 비장미를 불러일으키는 전설이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전설Ⅶ]은 전설의 전형이며 이상인 ‘꿈 있는 비극’(말초적 비극이 아니라 원초적 비극)인 셈이다.

 

14.3.3. 설화이론에 의하면, 민담은 증거물은 ‘없어야’(있다면 ‘포괄적 증거물이어야’) 하고, 전승범위는 ‘세계(世界)여야’ 하고, 미적 범주는 ‘골계미여야’ 한다. 그런데 [전설Ⅶ]은 증거물은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소섬·식산봉·일출봉)이고, 전승범위는 ‘일정 지역’(제주도)이고, 미적 범주는 비장미[소섬 분리는 비극(손실, 좌절 등)임]이다. 고로, [전설Ⅶ]은 결코 민담일 수 없다.

 

15. 한담설화(閑談屑話)의 허상(虛像), ‘설문대하루방’

 

“(전략) 설문대하루방은 어느 날 설문대할망을 만난다. 결혼을 하면 고기를 실컷 먹게 해 주겠다고 청혼하여 둘은 부부가 되었고 (후략)” - 『남국의 민담』(진성기, 형설출판사 6판, 1982) 85-87쪽에서.

 

신화론자들은 위 인용문을 두고 ‘설문대할망 신화가 민담화(民譚化)한 것이다’라 한다. 하지만 이는 한심스러운 처사다. 그것은 한낱 ‘한담설화’(심심풀이로 하는 실없는 잡담)에 불과하니까.

 

사실, ‘설문대하루방’은 <오백장군 전설>의 ‘어떤 어머니’를 ‘설문대할망’으로 조작한 장본인이 그 조작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모순[설문대할망의 두 번(물장오리 / 죽 솥)의 익사]을 해소시키려고(설문대할망은 물장오리에, 설문대하루방은 죽 솥에 익사하게 하려고) 만든 허상(虛像)일 뿐이다.

 

 

<프로필>
- 국어국문학, 신학 전공
- 저서 『耽羅說話理解』, 『모라(毛羅)와 을나(乙那)』(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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