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대할망 전설 속 외세의 핍박에 맞선 탐라 민중의 한계
설문대할망 전설 속 외세의 핍박에 맞선 탐라 민중의 한계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8.02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거짓투성이 설문대할망 신화 <12> 본론(本論) ⑪

구전으로 전해져온 ‘설문대할망’을 제주 창조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제주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가는 데 대해 관련 전공자인 장성철씨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취지의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실제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현승환 교수도 지난 2012년 ‘설문대할망 설화 재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연재 기고를 통해 설문대할망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설문대할망 이야기 속에는 탐라 민중의 꿈과 좌절이 투영돼 있다. 결국 설문대할망 설화는 전설의 전형(典型)이며, 이상(理想)인 ‘꿈 있는 비극’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미디어제주

 

13. <설문대할망 설화>의 본문 해석 ①

 

[전설Ⅰ] 옛날 설문대할망은 두 발은 관탈섬과 마라도에, 엉덩이는 한라산에 두고 소섬을 팡돌(빨랫돌) 삼아 빨래를 했다. / [전설Ⅱ] 설문대할망은 늘 헐벗고 굶주린 탓에 배불리 먹는 것과 명주 속곳 한 번 입어 보는 것을 소망했다. / [전설Ⅲ] 한라산 기슭의 오름들은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를 때에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흙이 조금씩 흘러내려서 된 것이다. / [전설Ⅳ] 설문대할망은 하루는 명주 백 통으로 속곳을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의 속곳 만들기를 시작했고, 그리고 그녀도 다리 놓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문(下門) 부분에 댈 명주 한 필’(즉, ‘처지 한 조각’)을 구하지 못하여 속곳 만들기를 중단했다. 이에, 그녀도 다리 놓기를 중단했다. 신촌·조천 해변의 빌레·코지·여 등은 바로 그녀가 다리를 놓던 흔적이다. / [전설Ⅴ] 한라산 기슭에 물장오리가 있다. 설문대할망은 그 수심을 알아보려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가 그만 빠져 죽었다.

 

13.1. 위 전설 5편은 『제주도 전설』(현용준, 1976)의 ‘<선문대할망 전설> 19편’(27-32쪽) 중에서 ‘유의미(有意味)한 것들’(정신·역사 등을 함축하고 있는 것들)을 엄선하여 간추린 것이다.

 

[전설Ⅰ] : ‘관탈섬·마라도·한라산·소섬’은 설문대할망(탐라 여인들)의 생활 영역 표지(標識)다. 이는 탐라 민중은 이 표지 안에서 소위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삶을 영위했다는 말이다.

 

[전설Ⅱ] : 탐라국호 폐지(1105년) 이래 탐라 민중은 늘 외세의 수탈 탓에 헐벗고 굶주렸다.

 

[전설Ⅲ] : ‘한라산·오름들’은 탐라 민중이 화전 일구고 땔감 구하고 우마 기르던 곳이다.

 

[전설Ⅳ] : ‘신촌·조천 해변의 빌레·코지·여’가 이 설화에 등장한 것은 어쩌면 지난날 이 일대 해산물이 민중의 기아 해소에 단단히 한몫할 정도로 아주 풍부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설Ⅴ] : ‘물장오리’ 자의(字義)는 ‘물長[수심(水深)] 5리(五里)’(≒1965m)이다. 그런데 그것의 함의(含意)는 ‘그 수심이, 키가 한라산(1950m)만한 설문대할망을 익사시킬 만큼 충분히 깊다’이다. 그러고 보면, 한라산은 ‘(외세 핍박에 기인한) 탐라 민중 삶의 한계상황’의 한계점 이하에 대한 상징이고, 물장오리는 ‘그 한계상황’의 한계점 이상에 대한 상징인 셈이다. 이는 탐라 민중은 한라산은 감당할 수 있었으나 물장오리는 감당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즉, ‘물장오리의 수심을 알아보려다가’(그 한계점 이상에 맞서다가) 끝내는 비장한 패배(좌절)를 맞았다는 말이다.

 

13.2. 일설(一說)에 의하면, 탐라는 정의로운 사회(예: 부자가 넘침 없고 빈자가 모자람 없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탐라국이 망하자 탐라는 점차 외세 핍박과 토박이 저항으로 점철되어 갔다. 이에, 탐라 여자들은 탐라국을 그리며 분연히 일어나 외세에 맞섰다. 그리고 갈수록 움츠러드는(패배감·좌절감·무력감 등속으로 빠져드는) 망국 남자들을 일으켜 세워 저항 일선으로 끌어들였고, 의협심 강한 남자를 장두로 삼았다. 하지만 번번이 저항은 실패했고, 장두는 참수되었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남자들은 뒷전으로 물러서게 되었고, 여자들은 앞장서게 되었다. 물론 탐라 여자들은 억척스럽고 거칠었다. 음성도 컸다. 하기야, 바람 거센 빌레왙·바다 등지에서 뒹구노라면 억척스러워지고 거칠어지고 음성이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렷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갈수록 커져만 가는 설움의 무게를 이겨내려고 바락바락 악쓰며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하튼, 한 떼의 여자가 바람 거센 빌레왙을 박차며 아우성치는 모습은 지난날 한때 탐라의 흔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때 탐라 여자들은 외세에게는 마치 바람이나 돌처럼 매우 거추장스럽게 여겨졌다. 참, 그래서 외세들은 ‘삼다’(三多)란 말을 더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각설하고, 탐라 여자들은 살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물질·농사일·집안일 등을 했다. 예컨대, 그들은 화전을 일구려고 오름에 올라 터진 치마로 토석을 날랐다.(←위 [전설Ⅲ]) 또, 그들은 빨래는 단숨에 발탕발탕 해치웠다. 그러니, 물이 사방팔방으로, 아니, 한라산이 다 젖을 정도로 마구 튀었다. 마치 발은 관탈섬 · 마라도에, 엉덩이는 한라산에 두고 소섬을 팡돌 삼아 빨래를 한 것처럼.(←위 [전설Ⅰ]) 그런데 그런 일상생활에도 불구하고 외세 창구인 관(官)의 수탈로 그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늘 모자랐다. 그래서, 그들은 ‘배불리 먹는 것’과 ‘명주 속곳 한 번 입어 보는 것’을 소망했다.(←위 [전설Ⅱ]) 하지만 특히 후자는, 터진 구멍으로 흘린 흙이 오름을 이룰 만큼 헌 옷을 입고 사는 처지이고 보면,(← 위 [전설Ⅲ]) 육지까지 다리를 놓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그 소망을 간직한 채 외세에게 제안했다. 명주 백 통으로 속곳을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마고. 이리하여, 외세는 속곳 만들기를, 그들은 다리 놓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외세는 ‘처지’(속속곳 맨 마지막에 대는 마름모꼴 천 조각)를 구하지 못해 속곳 만들기를 중단했다. 이에, 그들도 다리 놓기를 중단했다. 그런데 실은 ‘명주 백 통’의 ‘백’[<오백장군 전설>·<아흔아홉골 전설>의 ‘백’(百)과 같음]은 ‘완전함·주권·임금 등’을, ‘한 조각의 처지’(<아흔아홉골 전설>의 ‘한 골’과 같음)는 ‘설문대할망의 아들’을 뜻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의 제안(요구)은 탐라인(자신들 속곳으로 감싸 키운 사람)을 ‘탐라의 통치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 요구의 수락 없이는 비록 헐벗고 굶주릴망정 ‘육지(한반도)에 대한 순응’ 곧 ‘다리 놓기’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리 놓기’를 거부했던 것이다.(←위 [전설Ⅳ]) 아무튼, 지난날 탐라 여자들은 저항 운동에서도 일상사에서도 억척스러웠다. 죽음을 무릅쓰고 물장오리로 뛰어들 정도로 말이다.(←위 [전설Ⅴ])

 

13.3. ‘[전설Ⅳ] 앞부분’(다리 놓기, 속곳 만들기)에는 ‘민중의 꿈’이, ‘[전설Ⅳ] 뒷부분’(속곳 만들기 중단, 다리 놓기 중단)과 ‘[전설Ⅴ] 말미’(익사)에는 ‘민중의 좌절’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설문대할망 설화는 전설의 전형(典型)이며 이상(理想)인 ‘꿈 있는 비극’인 셈이다. 물론 이 비극은 말초적인 비극이 아니라 비장미(悲壯美)를 불러일으키는 미학적(美學的) 의미의 비극이다. 설문대할망이 죽음을 무릅쓰고 삶의 한계상황(물장오리)에 맞서다 좌절(익사)하니까.

 

한편, [전설Ⅴ]는 설문대할망 설화의 비장미를 심화·완성시켜 줌과 동시에 설문대할망(옛 탐라 민중)의 정신[소위 ‘장두(狀頭) 정신’, 저항·도전·개척 정신]을 단적(端的)으로 들려주고 있다.

 

 

 

<프로필>
- 국어국문학, 신학 전공
- 저서 『耽羅說話理解』, 『모라(毛羅)와 을나(乙那)』(소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